기후는 사람의 활동능률뿐 아니라 성격, 체질이나 체구에(体軀)에도 영향을 준다. '베르그만'(Bergman)의 법칙에 따르면 인체도 더운 남쪽 사람은 작고 추운 북쪽사람이 크다. 유럽인의 체구를 보아도 남부의 라틴족보다 북쪽의 튜튼족이 크고, 그 북쪽의 슬라브족이 더 크다.
우리들 한국인의 체구도 예외는 있으나 대체로 이 원리에 맞는다. 해방 전의 도별 남녀 평균신장에 따르면 남녀 모두 함경북도가 최장신이며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점차 작아진다. 남자의 신장을 지역별로 평균하면 북부지방이 1백66.0cm, 중부지방이 1백63.4cm, 남부지방이 1백62.2cm로서 지역적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인근민족과 비교할 때 북부의 한족(漢族)보다는 작으나 일본인보다는 커서 일본인을 왜인(倭人)이라 부른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남한의 도별 평균신장의 차이는 거의 같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음이 알려졌다. 이것은 교통의 발달로 교류가 빈번해졌고, 지역간의 통혼, 환경의 통일화 등이 주원인이 되고 있다.
의복의 원래의 목적은 외부의 기온에 대하여 체온을 유지하며 보다 능률적인 생산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서 옛날에는 외기에 대한 인체의 기온조절을 의복에 의지하는 바가 컸었다. 우리 의복의 원형은 북방 호복(胡服) 계통으로 여겨진다. 우리의 의복은 계절에 따라 갈아 입어야 되며, 추위를 막고 더위를 이길 수 있는 구조로 발달하였다. 또 의복의 원료는 기후조건에 맞는 섬유작물을 재배하여 얻었으며 고도의 제직기술 (製織技術)이 발달하였다.
우리나라에 있어 일찌기 섬유작물로 재배된 것은 마 저마 면화 등을 들 수 있고, 동물성 섬유로는 누에를 길러 비단의 원료를 얻었다.
추위를 막는 옷으로는 북쪽지방의 갓옷(皮衣)이 있어 갓두루마기 갓저고리 등이 있었다. 이와 같은 갓옷은 목축이나 수렵생활에서 벗어난 후에는 솜을 넣어 솜두루마기 솜저고리 솜바지 등을 만들어 입었고 누비옷도 발달하였다. 남복에서 대님을 매고 저고리 위에 조끼 마고자 등을 겹쳐 입어 자유로이 추위에 대응했고 외출시에는 두루마기를 입었다. 거기에 다시 조바위 풍차 휘항 남바위 등으로 머리 부분에 대한 방한을 하고 목도리, 토수 등을 일상복 위에 보충하는 것으로도 추위를 이겨낼 수 있었다.
여복(女服)중, 조선시대 풍속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옷이나 쓰개치마는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유교적 내외 예절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나 방한의 기능도 크다.
삼복더위를 이겨내는 여름옷의 재료는 베와 모시로 통풍이 잘되는 옷감이다. 한복의 가장 큰 특성은 양복처럼 몸에 꼭 맞게 만들지 않고 몸과 옷 사이에 통풍공간을 두는 여유있는 구조이다. 더우기 여름옷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면 베 모시 등 식물성 섬유는 몸에 붙지 않고 까슬까슬 유리되기 때문에 한층 통풍공간을 만들어 선선하다.
지역마다 다른 김장철
식생활에 있어서도 우리는 기후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온대계절풍지대의 보편적인 농작물인 벼를 재배하여 쌀을 주식으로 하였고 남북의 기후차에 따라 작물의 북한계가 좌우되며, 토지이용도 달라진다. 밭의 돌려짓기는 북부(함경남·북도 평안북도)에서는 1년1작, 중부(평남 황해 강원도)에서는 2년3작, 경기도 이남의 남부지역에서는 2년4작이 가능하며 논의 그루갈이(이모작)는 남부지방에서만 할 수 있다.
긴 겨울의 저장식품인 김치는 우리의 빼놓을 수 없는 식품이다. 김장철은 서리나 기온하강의 시기에 따라 달라지므로 남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일찍 시작된다. 해에 따라 차가 있지만 평안도는 11월 초순부터 중순에 걸치나 경상도는 12월에 들어서 김장을 시작한다.
남한 각지의 평균 김장적기(適期)를 보면 강릉 12월 3일, 서울 11월 26일, 대구 11월 28일, 울산 12월 5일, 광주 12월 2일 부산 12월 24일로 남북이 약 한달의 차가 있으며 가장 남쪽의 제주도에서는 따뜻해서 김장이 별로 필요가 없다.
김치 담그기에 있어서나 기타 음식에 있어 무엇보다도 기후와 관련되는 것은 소금의 간과 맵기이다. 기온이 높은 남쪽일수록 쉽게 산화되므로 짜게 하고 맵게 하여 자극성있게 한다. 또 옛부터 전해오는 음식으로 계절에 따라 먹는 시절음식도 우리 식문화의 하나이다. 삼복더위에 지친 몸을 회복하기 위한 여러가지 보신음식이 있고 서양인에 비해 필수적으로 뜨거운 국을 먹으며, 전골 신선로 등으로 추위를 녹인다.
가옥의 경관이나 구조도 지역 기후를 잘 반영하는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중에서 살 곳을 택하는 복거총론(卜居總論)을 보면 무릇 사람은 양기(陽氣)를 받고 사는데 그런 곳이 어떠한 곳인가를 들고 있다. 산 사람의 집은 양택(陽宅)이라 하였으니 가옥의 향은 햇빛을 잘 받는 방향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집들이 모여 촌락을 이루는데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양지가 가장 좋은 조건이 된다. 우리나라 지명에는 양지와 음지를 뜻하는 것이 많다. 양지-음지, 양지말-음지말, 양달-음달, 양달말-음달말, 양지편-음지편, 양터-음터, 양지뜸-음지뜸, 양골-음골, 양향골-음향골 등 양과 음이 쌍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음에 비해 양이 훨씬 많다.
여기서 양이란 남쪽을 가리키며 양지바른 곳에 마을들이 있고 마을이름은 그대로 양지를 뜻하는 여러가지 표현으로 명명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은 음양사상에도 영향을 받았겠으나 마을의 입지조건으로 기후가 중요한 요인임을 뜻한다.
가옥의 구조도 지역에 따라 田자형의 겹집이며 정주간을 갖는 관북형, 一자 ㄱ자형이며 마루가 없는 관서형, ㄱ ㄴ ㅁ자로 대청마루가 있는 중부형, 一자형에 대청마루와 툇마루가 붙은 남부형 등으로 구분된다. 관북·관서형은 추위에 맞도록 가옥구조가 되어 있고 남부형은 더위에 맞도록 개방적이다. 중부는 추위와 더위에 맞는 이중구조를 갖는다.
차차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의 전통적 한옥은 자연적으로 우리 기후를 조절할 수 있도록 재료 구조 난방법이 발달하고 있다. 흙벽은 자연의 단열재로서 기온을 조절하고 또 습도조절에도 유효하여 추위 더위 가뭄 장마에 대처한다. 마루는 통풍이 잘되어 여름을 나기 쉽고 온돌은 추위에 대비된 것으로 이와 같은 이중구조는 한옥의 큰 특색이다.
눈이 많은 곳에서는 방설(防雪)에 맞는 집, 예를 들어 울릉도의 우데기집과 같은 구조를, 강풍이 부는 해안 도서지방에서는 바람막이 울타리담을 쌓는다.
지붕은 제주도와 같이 새(茅)줄, 육지에서는 새끼줄, 산간 너와집에서는 돌로 바람을 막는다.
하천변의 범람지역에서는 터돋움을 하여 약간 높인 대지위에 짓고 마을에는 홍수때 물을 피하기 위한 돈대(墩台)인 피수대(避水台)를 두었다. 서울부근 한강변에는 이러한 흔적이 많았고 돈대촌의 흔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