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성(性)을 관련시킬 필요는 없겠지만 구태여 관련지워 본다면 분명 과학활동은 지금까지 남성위주로 이루어져 온 것이 틀림없다. 과학사에 찬란히 빛나는 뉴튼이나 아인슈타인과 같은 큰 별들은 그만두고라도 수많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거의 남성과학자들인 것은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과연 과학이 남성만의 전유물이고 여성에게는 부적합한 학문인가?
'마리 퀴리'는 남편 '피에르 퀴리'가 죽은 뒤 그의 뒤를 이어 강인한 정신력과 놀라운 끈기로 방사능연구에 몰두해서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그 전통은 그녀의 딸마저도 과학의 길을 걷게 만들지 않았던가? 왕성한 체력과 끈질긴 근성이 과학자에 반드시 요구되는 요소라 할 때 과연 퀴리부인은 그점에서 남성들보다 부족했었는가?
사실 아직도 세계 물리학회 회원중에 여성의 비율은 대단히 적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다른 분야의 많은 연구개발 부분에서 여성이 활발히 참여하고 있음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과학과 과학교육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이 교단에 선 것이 벌써 햇수로 6년째이다. 다행히 그 기간동안 남학생, 여학생을 다 가르쳐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과학에대한 태도를 비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업시간에 어떤·과학적 원리 뒤에 숨어있는 내용을 이야기해 주고 싶어서 가끔씩 개별적인 질문을 해보면 대단히 쉬운 질문인데도 여학생에게는 어려운 질문이 되고 마는 경우를 여러번 경험했다. 이것은 물론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있어서 그런 개념을 자기 자신의 말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도 있겠지만 사실은 틀리게 답변함으로써 창피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자신있게 발표하지 않는 것같다.
남학생이 비교적 선이 굵고 경우에 따라서는 엉뚱한 질문을 한다면 여학생들은 교사가 설명해준 부분내에서 섬세한 면을 질문하는 경향이 있다. 또 여학생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가 모르고 있는가에 대한 판단이 선명하다. 그래서 약간 어렴풋이 아는 부분을 질문해 보면 아예 과장해서 전혀 모른다고 하게 되는 것이다.
여학생들은 노트 정리에 있어 철저하다. 교사가 설명하는 내용을 빠짐없이 잘 기록한다. 그래서 혹시라도 교재연구가 철저히 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교사가 상당히 긴장하게 된다.
여학생들은 또 그림이나 도표를 정교하고 깨끗하게 잘 그려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공간지각에 오히려 약하고 그래프 해석에 약하다는 사실이다. 전체적으로 여학생은 큰 과학적 논리의 흐름과 과학적 표현에 어려워하지만 예민한 직관, 감수성, 섬세한 시각, 그리고 자료정리의 철저함 등에 있어서는 많은 강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끈기와 적극성만 갖춰지면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학을 왜 하는가 또 과학은 언제 생겼는가라는 문제를 얘기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과학은 기술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을 다 의미하는 것이고 문명이나 무기의 발달은 기술적 측면, 과학적 원리 등을 찾아내는 일은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을 만족시켜 나가는 정신적 측면이 되는 것이다. 또 통합과학적 입장에서 보면 과학은 물리(物理)로 대표될 수 있고 물리는 과거에 철학(哲學)이었음을 상기해 볼 때 과학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출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대체 이 우주는 얼마나 크고 얼마나 오래되었으며 거기에 존재하는 대칭성은 무엇 때문인가? 물질은 궁극적으로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우주의 한 구석에 존재하는 우리 인간은 어디서부터 유래 했으며 존재라는 것은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었는가?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이것들은 모두 평범하면서도 근본적인 질문들이다. 과학은 그동안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많은 사상(事象) 속에서 앞뒤가 잘 정합(整合)되는 논리를 찾아 배열시켜 온 것이다. 과학은 신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오묘한 섭리를 깨우쳐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결국 과학하는 마음은 철학하는 마음이고 철학하는 마음이라면 남녀의 구별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2천년대의 과학한국을 건설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전문과학자의 양성도 중요하지만 전체국민의 과학교양교육 그리고 여성의 과학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에디슨의 어머니처럼 자녀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고 과학의 저변을 확대시키는 일에도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것이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여학생들이 과학적 상식과 소양의 부족을 부끄러워 하며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사색할 때 과학은 가까이에서 살아 움직이게 될 것이다. 과학은 딱딱하고 지루해서 남성에게나 적합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부드럽고 정교하고 사색적이어서 오히려 여성에게 더 적합하다고 친숙하게 생각할 때 장차 많은 한국의 퀴리부인이 배출될 것이고, 훌륭한 과학가정교사(?) 어머니들이 생겨서 한국과학의 저변을 튼튼하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