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단풍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가을에 단풍이 아름답기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나라중의 하나다. 온대지방의 중위도지역에서는 가을이 되면 나무나 관목을 노랗게 혹은 붉게 물든다.
보통사람들은 서리가 오게 되면 단풍이 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서리는 잎속에 색소가 가장 많이 발달하기 전에 잎을 시들게 하거나 혹은 죽게하므로 찬란하고 아름다운 단풍을 오히려 크게 손상시키고 만다.
단풍이 뚜렷한 지역은 지구상에서 매우 제한돼 있다. 남반구에서는 남미의 남부 일부지역에서 단풍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북반구에서는 가을에 단풍이 드는 지역을 3대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아시아의 동부로, 여기에 우리나라가 속한다. 또 하나는 유럽의 남서부인데 때로 동북부까지 확대된다. 다른 하나는 북미다. 세인트 로렌스(St. Lawrence)만으로부터 남쪽으로 플로리다까지, 그리고 서쪽으로는 미시시피 계곡을 지나서 대평원까지 뻗쳐 있다.
우리나라에서 단풍으로 유명한 곳은 설악산 내장산 소요산 등이다. 우리의 가을산에는 단풍나무 북나무 옻나무 참나무 등이 어디를 가나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단풍을 어디서나 구경할 수 있다.
엽록소는 사라지고
가을의 단풍은 잎의 생활력이 약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생육계절이 막바지로 접어들면 잎에는 떨켜라고 알려진 특수한 세포층이 잎의 밑부분에 형성된다. 아울러 이 층 뒤에 있는 세포는 코르크처럼 단단해진다. 그 결과물을 통과시키지 않으므로 물을 수송하는 물관이 막히게 된다. 따라서 잎으로 가거나 잎에서 나오는 물과 양분의 수송이 크게 제한을 받는다.
이로 말미암아 잎의 활동은 약해지고, 엽록소의 발달이 방해를 받게 된다. 잎속에 남아 있는 엽록소는 계속해서 햇볕에 의해 파괴되므로, 점차 줄어드는 엽록소를 보충할 재간이 없다. 이렇게 되면 잎은 곧 그의 푸른 색깔을 잃게 된다.
그 대신 속에 있던 다른 색소가 잎의 색깔을 나타내게 된다. 아울러 새로운 물질의 형성을 유발한다.
단풍의 기본원인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에 근거한다. 첫째 엽록소의 파괴다. 그로 말미암아 전에는 엽록소에 가려져 있던 다른 색소가 뚜렷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엽록소가 파괴되기 전에는 잎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색깔을 나타내는 새로운 색소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단풍에는 노랗게 되는 것과 붉게 물드는 것이 있는데 그 물들어가는 과정이 각각 다르다. 단풍이 드는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다. 늦은 여름이나 이른 가을이 되면 잎속에 있는 푸른 색소인 엽록소의 합성이 중지된다. 이미 잎속에 있던 엽록소도 급속도로 파괴되어 사라진다. 엽록소가 사라짐에 따라 잎속에 남아 있던 노란 색소, 즉 카로틴(carotene)과 크산토필(xanthophyll)이 드러나서 노란 색깔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두가지 노란 색소는 언제나 엽록소와 함께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광선하에서 매우 안전하므로 엽록소가 파괴된 뒤에도 잎속에 계속 남아 있게 된다. 그러므로 다른 색깔의 물질이 없는 한 생강나무 호도나무 물푸레나무 플라타너스 포플라 자작나무같은 나뭇잎은 노란 색깔을 띠게 된다.
노란 색깔은 가을 단풍에서 가장 뚜렷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색이다. 그런데 은행나무 너도밤나무 싸리나무에서 나타나는 황금빛 노란색깔은 잎속의 노란 색소외에 갈색 색소인 타닌(tannin)이 첨가되었기 때문이다.
빛과 화청소의 관계는?
뭐니뭐니 해도 단풍중에서 가을의 풍경을 지배하는 것은 붉은 단풍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온 산이 붉게 타는 듯한 찬란함은 푸른 가을 하늘과 대조를 이루어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풍경이 되고 있다.
붉은 색깔은 잎속에 미리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대체로 잎의 생활력이 쇠퇴하기 시작한 뒤에 형성된다. 당단풍 신나무 북나무 옻나무 참나무 풍나무 담쟁이덩굴 같은 잎속에 붉은 색소인 화청소(anthocyanin)가 생기기 때문에 붉은 색깔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화청소가 생기는 조건은 꽤 까다롭다. 우선 날씨가 청명하고 건조하고 싸늘해야 한다. 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고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한 기간에 화청소가 가장 많이 나타나 온 산을 붉게 물들게 한다. 이러한 날씨조건은 우리나라 가을의 특징이 되고 있으므로 한반도의 붉은 단풍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유명한 식물생리학자인 몰리시(Molisch) 박사는 단풍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떤 것은 노랗고, 어떤 것은 붉은 갈색 혹은 붉은 색이다. 이러한 가지각색의 색깔은 너무도 아름답고 흥취가 가득해 이제 이 현란한 단풍없이는 가을의 풍경을 전연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일본과 북미에서는 이 색깔의 아름다움이 한층 더 찬란하다. 왜냐하면 일본이나 북미의 숲속에 많이 있는 북나무와 단풍나무 종류가 가을에 붉은 색소를 아주 잘 만드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북미의 숲의 때때옷은 우리 눈에 만족할만한 색깔을 던져준다."
일본의 가을 날씨는 우리와 비슷하지만 공중습도가 높고, 낮과 밤의 기온차가 우리만큼 심하지 않다. 따라서 단풍이 우리만큼 아름답지 못하다. 아마도 몰리시박사가 한국의 단풍을 보았더라면 한국의 단풍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칭송했을 것이다.
붉은 단풍을 '책임지고' 있는 화청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화청소의 생성에 광선이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밝혀져 있다. 이는 붉은 단풍나무 참나무(미국에는 붉은 단풍보다 더 붉게 타는 참나무가 많다)의 잎을 덮거나 혹은 그늘에 두면 결코 잎이 붉게 변하지 않고, 누르스름한 색깔을 나타낸다는 관찰결과를 통해 잘 설명된다.
엽록소의 소실은 잎에 더 많은 광선을 쪼이게 해 잎의 붉은 색소 발달을 촉진시킨다. 이것은 흐리고 구름이 많은 날씨를 보이는 곳보다 청명한 날씨를 가진 곳에서 잎의 붉은 색깔이 더 현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붉은 단풍이나 북나무중에서 붉은 색깔이 최고로 발달하는 잎 속에는 당분이 많다. 이는 잎속의 당분의 존재가 붉은 색소인 화청소의 형성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더욱이 붉은 색깔은 높은 여름온도가 낮은 가을온도로 갑자기 떨어지는 계절에 가장 풍성하게 만들어진다. 이러한 때에는 잎을 통한 당분이나 다른 물질의 이동이 저지된다. 따라서 붉은 색소의 형성을 유도하는 조건이 마련된다.
잎속의 당분과 그밖의 여러 물질이 화청소의 발달에 끼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한 예로 잎줄(엽맥)의 절단을 가정해 볼 수 있다. 이 경우 잎줄을 끊으면 전에 당분 등을 공급하던 잎의 일부가 붉은 색으로 변한다. 반면 잎의 나머지 부분은 가을에도 누렇게 변할 뿐이다.
식물의 노화현상으로 밝혀져
잎줄을 끊거나 혹은 상처를 주면 잎속에 아직 남아 있는 상당량의 당분은 어떤 일을 할까? 당분이 잎줄의 절단 등으로 인해 이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아 있는 당분은 화청소의 형성에 이용된다. 이러한 잎에서 잎줄의 끊어진 밑부분은 잎의 다른 부분보다 더 오래 푸르게 남아 있지만 결국에는 화청소가 형성돼 붉게 변한다.
가을의 단풍은 붉은 것, 자주 붉은 것, 노란 것, 황금빛 노랑, 갈색 등 가지각색의 색깔을 나타낸다. 이러한 오묘한 색깔은 여러가지 색소의 결합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나 잎의 색깔변화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만 지속된다. 계절이 지나감에 따라 밤은 좀 더 추워지고, 색깔은 점점 바래진다. 그러다가 색소가 파괴되면 잎은 결국 죽고 만다.
단풍현상은 식물체에서 볼 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단풍이 든 것은 식물이 늙는 현상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잎이 누렇게 변하는, 쉽게 말해 노화현상인 것이다. 이는 숲속이나 정원에서 누렇게 된 잎을 주워 주의깊게 관찰하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단풍은 잎의 나이를 표시하고 있다. 잎의 나이는 단풍이 지는 과정을 통해 명백히 구별된다. 가지에 달린 잎이 누렇게 되는 것도 보통 잎의 나이 순서대로 일어난다. 가지의 맨 밑에 달린 잎이 먼저 누렇게 되고 그 다음에는 중간에 있는 잎, 마지막으로 끝에 달린 어린 잎이 누렇게 된다. 봄에 차례로 가지에 난 잎일지라도 역시 나이차가 있다. 이 차이는 무척 작지만 나이순서에 따라 단풍이 진다는 것은 확실하다.
가을이 찾아와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나무와 관목의 잎은 멀지않아 들이닥칠 낙엽을 기다리게 된다. 11월초가 되면 여름에 푸르던 대부분의 나무는 한장의 잎도 달지 않은 벌거숭이가 돼 서 있다.
잎이 가지에서 떨어지는 것은 가을바람의 장난일까. 기계적 힘의 결과인가. 아니다. 낙엽은 하나의 생활작용이며 생명을 지키기 위한 한 생리현상이다. 잎이 떨어지기 직전에 잎안에 있던 여러가지 물질들은 밑둥으로, 뿌리로 내려가서 저장되거나 조직의 한 부분으로 통합된다.
나무는 잎을 떨어뜨림으로써 겨울준비를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