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한대에서 난온대까지 다양하게 분포 4천여종이 넘는 식물의 부자나라
다양한 한반도의 식물분포
금수강산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자랑스런 말이다. 산과 강 바위와 나무 꽃들이 마치 수를 놓은듯이 화려하다는 이 말은 결코 틀린 게 아니다. 특히 갖가지 나무와 꽃 풀이 어우러진 우리의 숲(삼림)은 남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족한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의 식물들은 어떻게 해서 오늘날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가 요즘 보는 것과 같은 숲의 모양은 대략 지금으로부터 1만여년 전쯤에 형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지구상에서 비가 아주 적은 곳은 사막이 되고, 기온이 극히 낮은 곳에는 툰드라가 생기며, 이런 조건이 조금씩 좋아짐에 따라 차츰 초원 사바나 삼림으로 된다. 그러므로 삼림으로 덮여 있는 곳은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다. 지구표면에 삼림이 분포하는 곳은 전표면적의 약 3분의1에 불과하다.
오늘날 한반도의 논, 밭 혹은 시가지는 원래 삼림으로 덮여 있었던 곳이다. 그만큼 자연조건이 좋은 곳인 셈이다. 지금과 같은 상태는 농경이 시작된 때부터, 특히 벼농사가 시작된 약 3천5백년 전부터 인간의 심한 자연간섭으로 나타난 경관이다.
화전민의 이동농업은 삼림을 무참히 파괴했고 늪지대의 개간은 자연식생을 논으로 변화시켰으며, 최근에는 고도산업화로 인해 도시와 공업단지가 들어서는 등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모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의 식물은 그 분포에 있어 뚜렷한 윤곽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한반도의 북쪽 높은 지대에는 상록침엽수림이 분포하고(아한대), 남해안과 제주도의 낮은 곳에는 상록활엽수림이 발달하며(난온대), 그 나머지는 북으로부터 냉온대 북부·중부·남부를 이루는 낙엽활엽수림이 분포한다.
이곳들을 특징지우는 식물의 종인 표징종(標徵種)은, 아한대에서는 가문비나 전나무 등이고, 냉온대북부는 난티나무, 중부는 신갈나무 물푸레나무 당단풍 등이며, 남부는 개서나무 감탕나무 대나무, 난온대는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북가시나무 모밀잣밤나무 동백나무 등이 꼽히고 있다.
신갈나무는 한반도 전역에서 가장 많이 분포하는 종으로서 유럽이나 북아메리카 중국, 일본같으면 너도밤나무가 분포할 위도이다. 한반도에서는 울릉도를 제외하면 너도밤나무는 중신세의 화석으로 나올 뿐이다. 너도밤나무가 없는 까닭을 건조로 보는 사람도 있고, 여름의 심한 더위로 보는 이도 있으나 결론은 얻지 못하고 있다.
식생(植生)은 식물이 모여 사는 경관적인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식물은 사회를 이루어 사는데 그 사회에는 크고 작은 단위들이 있다. 이러한 많은 사회들이 복합되어 있는 것을 식생이라고 한다.
식생(植生)으로 미루어본 환경의 변화
한반도에서 중요한 식생은 삼림식생과 습지식생이다. 습지의 식생은 현재 특수한 곳을 제외하면 거의 없어진 상태이다. 부여구룡포(九龍浦)는 원래 습지로서 구룡포에 기러기가 내리는 것은 구룡포낙안(九龍浦落雁)이라 하여 부여팔경(扶餘八景)으로 꼽았으나 1970년대 초에 모두 논으로 변해버렸다. 이러한 곳에 특수한 식물이 있었다면 이제는 찾아볼 길이 없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는 이러한 식생의 특징과 깊은 관계가 있다. 농업의 형태 생활양식 시 소설 그림 음악과 같은 문화예술의 특징이 식생의 특징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겨울의 솜옷과 여름의 삼베옷 또는 모시옷, 그리고 제사 때 3색실과(감 대추 밤)를 쓰는 것과 같은 습속이 인간과 식생과의 관련성을 말해주는 좋은 예다.
또 바나나문화 감자문화 목축문화 등의 명칭이 붙은 것만 보아도 식생이 얼마나 문화형성과 관련이 깊은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식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이같은 식생의 변천과정을 아는데는 화석식물, 나무의 나이테조사, 탄소를 이용한 연대측정, 화분분석(花粉分析) 등의 방법을 쓴다. 화분(꽃가루)의 껍질은 썩지 않고 표면의 무늬가 다양하므로 토탄층의 화분을 조사하고 그 분포비를 보면 과거 그 지방에 분포했던 식생을 알아낼 수가 있다.
한반도의 후빙기(後氷期) 이후의 환경변천은 속초에 있는 영랑호의 퇴적물을 분석한 결과 그 대강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 얻은 결과는 약 1만5천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변천을 알려주고 있는데, 특히 흥미있는 것은 신석기시대에 비교적 따뜻하여 사람의 활동이 활발했던 것으로 추측된다는 사실이다.
4천여종의 많은 식물이 살아
우리나라의 식물이 아한대로부터 난온대에 걸쳐 대략 다섯 지역으로 구분, 분포한다는 사실은 앞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한반도 전체에서 볼 수 있는 식물의 종류는 얼마나 될까.
이끼류라든가 바다에 있는 해조류등을 제외하고 우리가 보통 보게 되는 관속식물(꽃이 피는 종자식물과 고사리류인 양치식물)은 모두 4천1백95종이 알려져 있다. 최근에도 계속 한두종씩 새로운 종류가 발견되고 있으므로 이 숫자는 좀더 늘어나고 있다 하겠다.
4천여종의 식물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은 비교적 많은 숫자로 평가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한반도가 남북으로 길게 걸쳐 있으며, 주로 여름철에 비가 오고, 아시아의 동북부에 위치해 있으며, 지질학적으로 오래된 곳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열대에서 극지방으로 감에 따라 종수가 줄어드는데 온대는 그 중간에 위치한다. 식물의 생육기간인 여름철에 비가 오는 곳은 겨울철에 비가 오는 곳보다 종류가 많다.
빙하기의 경우를 보더라도 식물이 남쪽으로 도망갔다가 따뜻해지면서 북상하였다. 유럽에서는 식물이 도망할 곳이 없어서 빙하기에 많은 종이 없어졌는데 아시아에서는 중국남부로 도망갔던 종이 북상하였던 것이다. 유럽보다 아시아에 식물의 종류가 많은 까닭의 하나다. 따뜻해져서 식물이 북으로 이동할 때 남겨진 예의 하나가 설악산의 눈잣나무군락이다.
우리나라 식물의 유래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 식물의 유래를 살펴보자.
식물은 간단한 것으로부터 고등한 것으로 진화해왔다. 바다의 얕은 곳에서 생겨난 하등한 것들이 육지로 올라오면서 줄기 잎 뿌리의 구별이 있는 식물(경엽식물)로 발달했다. 이끼류, 특히 솔이끼류는 줄기 잎 뿌리의 구별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이것들은 외형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이끼류는 비오는 축축한 날에 정받이(수정) 를 한다. 이끼류는 동물의 양서류와 비슷한 위치라고 볼 수 있다.
현재 흔히 보는 관속식물과 비슷한 것으로 원시적인 것은 나무모양의 양치식물이다. 이에 뒤이어 나자식물(겉씨식물, 소나무 은행나무)과 피자식물(속씨식물, 벼 보리등)이 나타났다. 메타세코이아는 백악기와 제 3기초에는 북반구(북구)에 흔했으나 오늘날에는 중국대륙에 극히 드물게 자생하며, 은행나무는 역시 북구에 널리 분포했었으나 지금은 중국의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자생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은행나무는 나자식물 중에서 가장 원시적인 것으로서 4월말경에 가루받이(수분)를 하고 약 4개월 후인 9월에 정받이(수정)를 하는데 정핵이 아닌 정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런 식물을 살아 있는 화석(花石)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은행나무는 모두 식재한 것이다. 피자식물은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나자식물)보다 늦게 발달했으나 곤충 새 포유류와 더불어 환경변천에 따라 여러가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였다.
일반적으로 한 식물이 생겨난 곳은 분포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한반도에만 있는 금강초롱이나 미선나무와 같은 특산종은 이곳에서 진화하여 생긴 종이다. 진화하여 생긴 종은 사방으로 살기에 적합한 곳을 찾아 퍼져나가는데 때로는 원산지보다 더 많이 번창하는 수도 있다.
한 종이 분포하는 범위를 분포역이라고 하는데 분포역 안에 어떤 지형적 변화 등이 생기면 서로 멀리 떨어져 나는 두 분포역이 생긴다. 이것을 격리분포라고 한다. 울릉도 성인봉 북사면의 너도밤나무 숲 (천연기념물)은 일본너도밤나무와 흡사하면서도 다르다. 이것은 위와 같은 예의 하나이다.
잡초와 귀화식물
요즘 우리가 보게 되는 식물중에는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것들도 많다. 사람이 의도적으로 들여온 것도 있고, 저절로 묻어온 것도 있다. 이른바 귀화식물이라고 하는 게 그것인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잡초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흔히 산이나 들에 나는 식물을 잡초(we-ed)라고 하는데, 이 말은 잘못 된 것이다. 잡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인가 근처에 나는 식물이다. 바랭이 쇠비름 등이 잡초에 속한다.
잡초라고 하는 것중에는 귀화식물이 있다. 잡초는 대게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 많고 그 유래가 불분명한게 있으나, 귀화식물은 아가시나무 개망초 망초 양민들레 달맞이꽃처럼 도래지가 밝혀져 있는 것이 많다. 유사 이전의 귀화식물은 조사된 것이 없다. 개항 이후의 귀화식물의 분포와 증가는 비교적 자세히 밝혀졌는데, 예를 들어 구마고속도로에만 나는 종, 공항 근처에만 나는 종들이 있음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서울에는 귀화식물이 약 40종가량 밝혀져 있다.
귀화식물은 자연이 파괴된 곳일수록 많다. 서울의 경우 도심지나 이에 가까운 곳에는 양민들레가 난다. 민들레는 도시화로 인해 밀려난 것이다. 그러므로 양민들레와 민들레의 비율로써 도시화율을 표시할 수 있다.
귀화식물은 운송수단이나 사람의 도입으로 자생화했거나 재배식물이 야화(野化)한 것이다. 귀화식물이 언제까지 번창하며, 장차 이들이 어느 곳에서 자생식물을 압도할 것인지 종에 따라 다르나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자생종은 오랜 지질시대를 통하여 우리의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선택되어 살아남은 것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