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건강제일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건강상태를 확인해보고 싶은 게 현대인의 모습이다. 건강진단을 통해 사전에 질병의 유무를 알아보고, 또 그럼으로써 건강에의 확신을 얻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이처럼 긴요한 건강진단에 말이 많은 것도 요즘의 일이다. 이른바 '종합건강진단'이라는 특선상품이 그 질과 가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웬만한 가정의 한달 생활비에 맞먹는 거금 20만원. 과연 이런 비싼값을 물어가면서 건강진단을 해도 좋은 것일까.
현재 국내의 건진(健診)센터는 80년 6월에 문을 연 강남성모병원을 위시하여 서울고려병원(81년), 성바오로병원(83년), 서울백병원(84년), 한국병원(85년), 영락병원(85년), 부산의 메리놀병원(82년), 침례병원(84년), 대구의 영남대부속병원(84년) 등 종합병원급과 서울의 Y내과, C건강관리소, H건강진단센터, S임상병리검사소 등 개인의원급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열대여섯 곳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사종목은 센터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대개 70여종목. 신장·체중·비만도 등 신체계측 혈압·시(視)기능·안압·안저검사·폐활량 등 폐기능 간기능 대사(혈당·콜레스테롤 등) 대변·소변검사 혈청·혈액심전도 흉부X선 위장X선 초음파 치과검사 등 거의 모든 부위의 검사가 포함되고 여성의 경우 자궁세포진검사와 유방X선검사가 추가된다.
이들 검사를 통해 체크할 수 있다고 보는 질환은 빈혈 백혈병 간질환 당뇨병 동맥경화 신장염 자궁암 유방암 위궤양·위암 등의 위질환 폐결핵·폐암 등의 폐질환 협심증·심근경색·부정맥 등의 심장질환 백내장 녹내장 등 대부분의 성인질환이 망라된다.
이들 검사는 컴퓨터화된 최신의료기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3시간에 끝나고 이틀후에는 결과에 대한 판정이 이뤄진다. 「3시간 기다려 3분진료」받는다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이만한 스피드라면 바쁜 현대인에겐 큰 매력이 아닐 수 없고, 그래서 센터측에서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건강진단의 필요성과 장점에 대해 S병원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각종 성인병의 이환율이 높은 연령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상태를 점검해본다는 것은 예방의학적인 측면은 물론 국민보건적인 면에서도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그 결과 건강정도가 어느 정도인가, 위험한 또는 발병가능한 부위나 질환은 무엇인가를 알아낼 수 있고 결함 또는 의심이 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밀검사를 실시해 보다 확실한 진단을 신속하게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질병의 예방은 물론 조기진단으로 조기치료를 함으로써 치료성과가 높아지고, 그런 점에서 경제적으로도 훨씬 유리하다는 것.
그렇다. 가래로도 못 막을 걸 호미로 막을 수 있으니 경제적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하나밖에 없는 목숨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센터를 주로 이용하는 층은 질병이환율이 가장 높은 연령층의 회사간부들. 1년에 5천5백~6천명이 이용하고 있는 K병원의 경우 40대가 40%, 30대가 3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중에서 다음해 다시 건진에 응하는 재검률은 82~83년에 10%이던 것이 83~84년에는 약15% 그리고 84~85년에는 20%(추정)로 해마다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건진센터에 대한 이용자들의 반응이 그만큼 높아진 것으로 풀이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검진결과를 믿어도 좋은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흔드는 의료계인사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서을대의대의 C교수는 현재의 건강진단이 모든 가능성있는 질환을 다 커버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검사방법이나 판정에 있어서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진단이 관공서나 직장의 신체검사처럼 형식에 치우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주 진행된 증례만이 발견될 뿐이어서 '조기발견'이 어렵고 또 잘못 판정함으로써 불필요하거나 과잉진료를 유발하여 오히려 정신적·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킬 소지도 많다는 것이다.
검사장비가 의원급정도이거나 비싼 외제기기를 전시용으로만 비치해 놓은 곳도 있으며, 특히 국내에서 시행되는 검사용 시약이나 기기들의 95%이상이 수입된 것이라는 얘기다. 기기의 성능과 시약의 품질을 고도로 유지하여 정확한 검사성적을 얻는 것이 최고의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도 어려운 실정인데 과연 이들 센터가 그렇게 운영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아직 판정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며 건진센터운영에 관한 지침이나 인원·시설기준이 없으며 검사성적의 신빙도에 대한 정도(精度)관리도 안되고 있고 임상진료경험이 없는 예방의학 전공자들이 판정을 하는 곳도 있다고 지적한다.
또다른 의료인은 현재의 검사종목이나 방법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간 쓸개 뇌·혈관질환 암 등을 조기에 발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그런 점에서 종합건강진단의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고려대의대의 H교수는 이같은 '일본식'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는 실속있는 건강진단이 되도록 한두 종목이라도 장기별 또는 질환별의 집중적인 건진이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또 연세대의대의 Y교수도 특성없는 일률적인 검사보다는 해당연령과 과거력에 부합되는 최소의 검사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종목과 방법선정에 유의하고 판정도 내과전문의를 중심으로 방사선, 임상병리 또는 각과 전문의로 이뤄지는 종합판정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질병의 조기발견이나 예방을 위한 정기적인 검진은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것이나 현재와 같은 지나친 영리위주의 운영은 이용자들에게 불필요한 걱정이나 반대로 건강에 대한 지나친 자만심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개선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관심있는 의료인의 공통된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