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일류대학을 둘째치고 그냥 웬만큼 이름있는 대학에 입학하기도 어렵다고 아우성인 요즘, 과학 영재교육을 표방한 한국과학기술대학이 지난 11월 첫 신입생 5백30명(남 4백76명, 여 54명)을 뽑았다.
일부에서는 '과학사관학교'라고 좀 시큰둥하게, 또다른 일부에서는 최고 수준의 대학이라고 엇갈린 평가를 내리고 있는 과학기술대. 평가는 일단 유보하고 86년3월 개학하는 이 대학이 어떤 대학인지, 시설 교수진등은 어느수준인지 알아본다.
미국의 주립대 수준이라는 자평
충청남도 대전시 중심가에서 12㎞쯤 서북쪽으로 떨어진 대덕(大德)벌에 과기대는 자리잡고 있다.
여기 저기에 자리잡은 연구시설을 주위로 하고 대학 캠퍼스는 나지막한 구릉지에 규모있게 펼쳐져 있다. 서남쪽으로는 충남대학교와 유성온천이 보인다.
건물짓는데에만 1백38억원이라는 돈이 들었다는 자료를 보았지만 입구의 문주(門柱)부터 산뜻하면서 첨단과학의 이미지가 물씬 풍겨 방문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흔히 학교는 교수-학생-시설로 평가가 된다. 비좁고 볼품없는 다른대학의 시설에 익숙해진 눈으로 살펴본 이학교의 실험 실습실, 학생회관, 기숙사등은 놀랄만 하였다. 고교때부터 미국에 유학했다가 최근에 이곳 교수로 부임한 장영환박사(화학)에게 시설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글쎄, 한국에서는 상당한 수준이겠지요. 제가 느끼기에는 미국의 주립대학수준은 된다고 봅니다"
이 학교는 아직도 건설단계에 있다. 최순달학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 대학(MIT)정도로 이 학교를 발전 육성시키는게 목표라고 강조한다.
아직 마무리가 덜돼 구내는 좀 어수선한 구석이 있었지만 조감하건데 건물배치도 주변의 알맞은 조경과 함께 쾌적하게 느껴졌다. 첨단감각에다 우리의 고유미를 가미한 본부건물, 교학관, 실습관, 교수회관, 체육관, 도서관, 학생회관, 식당, 기숙사등이 산뜻한 모습으로 신입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10여만권의 책을 소장할(85년에 5만권) 도서관은 컴퓨터로 운영된다. 학생회관에는 휴게실과 음악감상실이 마련돼 있다. 식당은 1천여명이 한꺼번에 식사할 수 있는 규모.
기숙사는 1, 2학년의 경우에는 4명이 한방을, 3, 4학년은 두명이 한방을 쓰도록 돼있다. 기숙사에는 한 학생마다 어학실습을 할수있는 시설이 돼 있고 각층마다 휴게실과 샤워실 자동 세탁실이 마련돼 있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의 대부분이 기숙사는 있어도 들어가기 힘든것과는 달리 과기대 학생은 누구나 기숙사를 사용할 수 있다.
기술계 공부에서는 실험 실습이 필수적이고 또 계산을 해야하는 것이 많다. 과기대는 계산과 통계등에는 모든 학생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 시설을 갖춰놓고 있으며 실험실습기재는 학교말대로 "최신의 것"으로 마련돼 있다.
도입될 학습기자재는 1백72억원어치(4천5백여점). 매년 보충할 것이라 하며 현재 절반가량이 도입돼 있다.
교수진
지금까지 확보된 교수진은 65명, 더 많은 교수들을 초빙하기 위해 11월 하순에도 최순달학장은 해외에서 스카웃 작전을 펴고 있었다. 현재의 정원은 교수가 84명, 조교가 14명. 학생이 늘면 정원도 늘게 되어 있다.
교수들의 평균나이는 36세로 매우 젊은 편이다. 최근 20여년 컴퓨터와 반도체 생명공학등의 새로운 분야가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는 점에서 학교측은 하이테크와 관련된 신진기예를 교수로 초빙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교수와 학생비율(Faculty Student ratio)은 학교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적용된다. 과기대는 1대10의 비율로 교수진을 확보할 방침이다. 이것은 한국의 어느 이공계 대학보다 좋은 비율이다. 따라서 구두선으로 그치기 마련인 '학생의 개별지도'가 이 대학에서는 가능할 것으로 교수들은 말하고 있었다.
앞으로 노벨상수상학자도 초빙할 계획으로 있다.
학생
지난 11월15일 첫 입학생 5백30명이 선발되었다. 지원자는 1천7백60명이었는데 고등학교 학업성적순위가 상위 10%이내이고 수학과 과학에 뛰어난 학생으로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야만 응시할 자격이 주어졌다. 지원자중 학교성적 상위 3%이내인 학생만도 7백14명이나 되었다.
합격자 가운데 여학생은 54명으로 비율로는 10.2%가 되는 셈이다.
출신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1백83명(34.5%)으로 가장 많다. 다음은 전라남도로 58명(10.9%), 경기도 55명(10.4%), 충청남도 54명(10.2%). 부산 42명(7.9%), 대구 28명(5.3%), 경상남도 27명(5.1%), 충청북도 21명(4.0%), 경상북도 20명(3.8%), 인천 16명(3.0%), 전라북도 13명(2.5%), 강원도 11명(2.1%)의 순이며 가장 적은 곳은 제주도로 2명이다.
학년별로 보면 고교3학년이 4백13명(78%)이고 2학년에서 입학자격을 얻은 학생도 39명(7.4%)이나 된다. 고교를 졸업한 학생도 76명이나 되는데 이 가운데에는 다른 이공계 대학 재학생도 25명이나 끼어 있다.
과학고등학교에서 입학한 학생은 69명이다. 경기과학고교에서 39명(3학년 30명, 2학년 9명), 2학년까지만 있는 전남과학고교에서 14명, 대전과학고교에서 13명, 경남과학고교에서 3명이 합격했다.
학과 및 학사운영
과학기술대는 다음과 같은 4개 학부를 두고 있다.
●자연과학부 :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전기·전산학부 : 회로및 시스템, 정보통신, 컴퓨터, 경영과학
●기계·재료공학부 : 메카트로닉스(Mechatronics), CAD/CAM, 전자재료
●기술공학부 : 생산기계공학, 산업전자공학, 금속재료공학, 산업디자인학
자세히 살펴보면 자연과학부는 4개의 전공분야로 나뉘어있으나 1~2년까지는 각학과를 자유로이 고루 택하여 공부하게 하고 3~4년 단계에서는 수학은 인공지능을, 물리는 고체물리학을, 화학은 고분자화학을, 생물은 분자생물학을 중점 연구하도록 하고 있다.
전자·전산학부중 경영과학은 기술을 기초로 한 경영 관리를 연구하는 것으로 정책결정자 및 고급 경영관리자의 양성을 주된 목표로 하고 있다.
기계·재료공학부의 'mechatronics'는 산업용 로보트, 전제제어엔진등 기계기능에서 고도의 자동화및 지능화를 연구개발하는 분야이며 CAD/CAM은 컴퓨터를 이용하여 기계요소 및 복합기계체계, 집적회로등을 설계 응용하는 분야이다. 전자재료는 특수한 전자공업재만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기술공학부는 선진국에서 기술이전을 꺼려 고충을 겪고 있는 국내 산업의 기술문제를 자체 해결하고 기술혁신을 주도해 나갈 현장 적응력을 가진 고급 기술공학자를 양성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고 있다.
이처럼 학부 학과가 나눠져 있지만 학사운영은 극히 자유롭게 될것이라고 학교측은 말한다. 학생은 지도교수와 협의해 능력에 맞게 어떤 학과목도 수강할 수 있으며 학년에 구애받지 않고 학점 취득을 위한 시험을 볼 수도 있다. 무학년 무학과 제도라고 할까. 어쨌든 이런 운영방식으로 학생은 최소이수학점 1백40점을 따면 졸업을 할수 있다. 학기는 1년2학기제 이며 계절학기도 운영할 방침으로 있다.
수업료나 기숙사비등은 이미 알려진대로 모두 무료, 국고에서 부담한다.
학교측은 재학생중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판단되는 학생에게는 별도의 장학금도 주며 외국 유학도 주선해 줄 방침인데 어느 정도의 학생이 이런 혜택을 받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비판적인 견해들
고도의 산업사회를 건설한다는 명제. 그것도 '빠른시일내'라는 거의 강박관념과도 같은 과제를 안고 출범한 과기대에 대해 서두름이 좋지 않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원로 과학자 이태규박사는 "보다 기초적인 연구투자에 중점을 둬야한다"면서 수석 합격자를 노벨상 수상식에 참관시키고 노벨상 수상자를 초빙하여 강연을 열게 하는 것등은 예산 낭비이며 허황된게 아니냐고 비판을 했다. 그는 노벨상 수상식에 참관하기 위해 인솔교수와 남·녀 학생2명을 스톡홀름까지 갔다 오게 하려면 1천5백만원은 들터인데 이런 금액이라면 1년에 1백만원정도의 연구비를 받는 학자들을 지원하는게 낫지 않겠는가 하고 반문하기도 했다.
서울대 명예 교수 최기철박사는 81세의 나이로 노벨상을 받은 (83년)'매클린토크'여사를 예로 들면서 "젊은 학도들에게 과대 망상을 심어주지 말고 과학을 공부하는 기본자세부터 착실히 다져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같은 신중론, 기초닦기론에 대해 정면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순달학장은 한국의 미래와 영재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투철한 신념을 갖고 있다. 그는 "영재는 개인의 영광인 동시에 국가가 키워줘야 할 자산"이라고 강조하면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과기대의 발전이 보장될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교육은 충분할까
또 다른 시각에서 과기대의 영재교육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이 있다.
충남 대전의 과학고교 교장으로 있는 윤석병씨는 과기대의 입학시험 과목부터가 너무 치중돼 있어 시작부터 한쪽으로 치우친 인간을 만들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86학년도 신입생의 필기시험 과목과 배점을 보면 국어(100점), 수학(300점), 영어(100점), 과학(300점)이고 내신 성적이 80점으로 총점 880점이었다. 300점이나 되는 과학과목도 처음에는 물리만으로 국한하려다 다른과목도 채택했으나 실제 배점에서는 물리가 150점, 생물 화학이 각각 60점, 지구과학이 30점이었다.
진학지도를 하는 고등학교교사들중에도 영재교육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과기대가 편향교육기관이 될까봐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다. "일반대학을 거친다음 석사과정으로 과기대를 가는게 좋지 않겠는가"하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교사들이 적지 않았다.
현재 초빙돼 과기대에서 개학준비를 하고 있는 교수들은 이같은 우려에 대해 명백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학교에 교양과정이 있기는 합니다만…"하는 식이었다. 이는 아직 실제로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여서 무어라고 뚜렷이 말하기가 어려운 점도 고려해야 할것이다.
한편 공부잘하는 자녀를 가진 학부모들 역시 과기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나 "글쎄 어떨지…" 하는 머뭇거림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설좋고 교수진좋고 학비도 면제되고…" 하는 외적 조건은 모두 환영하지만 학부모들의 걱정은 "혹시 우수한 아이들끼리 모여 너무 경쟁하다가 절름발이 인간이 되는게 아닌가" 하는 것에서 부터 아이를 집에서 떠나게 해 기숙사 생활을 시켜야 한다는점, 이제 문을 연 학교라서 선배가 없고 따라서 한국적 세파에서 혹시 어려움이나 겪지 않을지 하는 등등 세상을 살아온 체험에서 우러난 걱정의 말이 많았다.
학교와 대덕연구단지의 모습을 뒤로 하면서 '여기에 미래의 한국이 있구나' 하는 뿌듯함을 느끼는 동시에 '과학과 인간' '과학과 사회'라는 불균형개념으로 과학을 재평가하는 요즘의 추세도 머리에 떠 올랐다. 어느 학자의 말이 생각났다. "과학자는 증거로써 주장한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설득력있게 보인다. 그러나 레이맨(문외한)은 깊고 넓게 생각하는 지혜가 있다. 보통사람의 지혜는 과학자의 지식을 보충해 줄수 있다" 과학기술대학이 종합적 전인적 영재를 육성하는데 성공하기를 많은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다.
서독기술협력단의 에른스트 쉴링박사
현장지도에 역점 둘터
한국과학기술대학에는 한·독기술협력에 의한 지원체제가 마련되어 있다.
한국과 독일 연방공화국 간에 오래동안 지속되어 온 기술협력 사업의 하나로 한국과학기술대학을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협정이 85년11월3일 서울에서 조인되었다.
이 새로운 사업은 생산기계 금속재료 산업전자분야의 첨단기술 전문요원 양성교육에 앞으로 5년간 독일정부가 총 9백만 마르크(약31억원)를 지원함으로써 한국첨단분야의 고급기술인력 양성에 이바지하게 된다.
독일정부는 이 사업을 위해 과학기술대학에 4명의 서독공과대학 교수와 해당 전문분야 전문가를 파견하며 최신첨단기술교육 기자재 제공과 교수요원의 서독연수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이 사업계획에 따라 양성된 과기대의 기술공학부 학생은 졸업후 첨단산업현장의 모든 기술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로서 활동하게 되고 산업체의 사원연수 및 기술훈련 직업훈련 분야에서도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서독을 비롯한 선진 각국에서의 장·단기 연수기회도 부여된다.
이 프로젝트에 의해 현재 과기대에는 '함부르크'대학 공대의 '에른스트 균터 쉴링'박사가 85년8월14일 독일기술협력단(GTZ) 단장으로 이미 와 기초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나머지 3명의 장기요원과 단기요원도 곧 도착할 예정이다.
'쉴링'박사는 "한국과학기술대학의 프로그램이 잘 진행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첨단기술연구도 중요하지만 공장의 현장기술이 더 급하다고 보고 이방면에 집중지원하려 한다"고 사업의 중점목표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