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주요기사][과동키즈] “디지털 문화유산 복원 사랑하는 일을 찾는 데 늦은 때란 없습니다”

 

독서에만 몰두했던 소년, 책 속에서 길을 찾다

 

어린 시절, 저는 유독 ‘역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역사책을 읽으면서 역사의 드라마틱한 한 순간을 떠올리곤 했죠. 초등학교 6학년 때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의 전기를 읽고 깊게 감명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하고 과학사에 없던 새로운 길을 개척한 뉴턴처럼,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을 했습니다.

 

학교 공부엔 그다지 흥미가 없었습니다.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함에도 부모님께서는 어떤 강요나 질책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제가 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셨죠. 덕분에 학교 공부에 얽매이지 않고 수많은 책을 읽는 것에만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읽은 책이 1500권에 달할 정도였죠. 당시 읽었던 책은 단순히 지식을 함양하는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독서는 제게 맞는 적성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기회였고, 지금의 직업을 선택하는 세계관과 철학을 형성했습니다. 

 

현재 저는 문화유산을 디지털로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한국의 1세대 문화유산 디지털 복원가입니다. 비록 물리학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문화유산 디지털 복원 분야를 개척하고 나선 데는 어릴 적 책에서 접하고 감명을 받은 뉴턴의 영향이 컸습니다. 

 

1987년 고등학교 1학년 봄 소풍 당시 반 친구들과 함께 기념촬영.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  줄무늬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이 필자다.

 

대학시절 인류학을 통해 과학동아와 만나다

 

재수를 해서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학부 전공은 인류학이었습니다. 중학교때부터 목표했던 전공이었죠. 세상을 더 넓게 이해하기 위해 꼭 공부해보고 싶었던 학문이었습니다. 

 

인류학을 공부하며 뉴턴처럼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했던 어린 시절의 꿈을 보다 구체적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인류학을 공부하는 과정 중에, 성경에서 대홍수에 대비해 만들어진 노아의 방주가 표류 끝에 처음 도달한 곳으로 튀르키예 아라랏산 꼭대기가 논의된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이 노아의 방주를 복원해보고 싶었죠. 1993년부터 2년 동안, 당시 초창기 버전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사용해 노아의 방주를 디지털로 복원해보는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대학 시절에 과학동아와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1987년 과학동아가 창간된 이후 몇 년 지나지 않아서의 일입니다. 벌써 30여 년 전의 일이지만 1990년 대 초에 읽었던 ‘창조냐 진화냐’라는 기사가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당시 지면에는 진화론을 주장하는 학자의 의견과 창조론을 주장하는 학자의 의견이 함께 실렸습니다. 학자들은 서로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쳤죠. 그 기사를 읽으며 과학이 기존의 학설에 다양한 의견이 덧붙여지며 발전한다는 점을 깨달았던 기억이 납니다. 과학동아가 학문을 논하는 광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도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2005~2006년 캄보디아의 사원 앙코르와트의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를 수행했을 때의 모습이다. 왼쪽은 캄보디아 국립박물관 국보 1호이자, 앙코르 제국 최대 전성기를 이룩한 자야바르만 7세 좌상을 촬영하는 모습이며 오른쪽은 앙코르와트 내부 회랑을 실측하고 있는 순간이다.

 

신라의 유물부터 앙코르와트까지, 전세계 유물을 복원하다

 

대학 졸업 직후인 1999년, 최초로 공식적인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왔습니다. 2000년 9월 열릴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행사를 앞두고, 경주세계문화엑스포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공동으로 1300년 전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을 가상으로 복원하는 ‘서라벌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입니다. 

 

당시 저는 건축, 미술, 정보통신(IT) 분야의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디지털 복원에 대해 독학하고 있었는데, 좋은 기회로 이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저는 황룡사 9층 목탑을 포함해 8세기 통일신라 경덕왕 시대의 경주 서라벌 도성을 3차원으로 복원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서라벌 프로젝트는 한국에서 실시된 최초의 디지털 문화유산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렇다보니 KIST 영상미디어센터를 중심으로 10여 개의 가상현실(VR) 회사가 2년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당시엔 디지털 복원이란 개념은 없었습니다. 신라의 문화유산과 VR 기술을 접목한다는 것만 강조됐죠. 이후 개념이 보다 명확해지면서 제가 직접 두산백과사전에 ‘디지털 복원’을 새로운 용어로 등록하기도 했습니다. 

 

서라벌 프로젝트는 제가 디지털 복원이라는 낯선 길에 대한 확신이 들었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과학기술로 문화재를 다시 불러내는 일에 몰두한 2년이 몹시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이 프로젝트 이후 고고학자와 역사학자, 그리고 기술 전문가들과 함께 일하면서 ‘디지털 복원 전문가’라는 새 길을 본격적으로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에는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3호분을, 2004년에는 고구려 평양성 안학궁을 디지털로 복원했습니다.

 

특히 2005~2006년에는 캄보디아 사원, 앙코르와트 디지털 복원에도 참여했습니다. 앙코르와트 디지털 복원은 저의 첫 해외 문화유산 프로젝트인 동시에, 한국이 진행한 첫 해외 문화유산 디지털 프로젝트입니다. 동국대 전자불전연구소가 주도한 프로젝트였죠. 크메르 제국의 앙코르 왕조가 12세기 초 건립했던 앙코르와트는 캄보디아의 오랜 내전으로 많이 파괴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건물 형태가 존재하기 때문에 디지털 복원은 비교적 쉬운 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국경을 넘나들며 약 70개 정도의 디지털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디지털로 복원해 만든 문화재 상상도는 국사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경주 황룡사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 궁전벽화 등 6개 복원도가 실렸죠. 디지털 문화유산 복원가로 활동하는 동안 미술사학으로 석사학위를, 문화콘텐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특히 미술사학으로 석사 연구를 한 것은 폭넓게 국내외 문화유산에 대해 공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024년 12월 3일, 키프로스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의 XR 콘텐츠 개발에 관해 발표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

 

한류의 흐름을 타고 K-디지털 문화유산을 꿈꾸다

 

오늘날 한국의 대중문화는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영화, 드라마, K팝은 물론 한식까지도 여러 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죠. 이제는 명실상부한 한류의 시대입니다. 

 

저는 이 흐름을 놓치지 않고 한국의 문화유산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합니다. 2014년,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라고 불리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디지털로 복원한 석굴암을 전시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무려 21만 명의 뉴욕 시민과 미국인들이 석굴암의 아름다움에 매료됐습니다. 이처럼 문화유산 디지털 복원은 바다를 넘어 전 세계에 한국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릴 수 있는 강력한 수단입니다. 

 

저는 이를 바탕으로 ‘K-디지털 문화유산’을 꿈꾸고 있습니다. K-디지털 문화유산은 한국 문화유산을 디지털 기술로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은 물론이고, 타국의 문화유산을 우리 디지털 기술로 새롭게 고양시키는 것도 포함합니다. 이 중요한 일에 앞장 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렙니다. 과학동아 독자 여러분께서도 K-디지털 문화유산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2025년 1월 과학동아 정보

    🎓️ 진로 추천

    • 역사·고고학
    • 문화인류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