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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와 희망이 공존하는 실패 나눔의 장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지만, 실패라는 말 앞에 두려움부터 앞서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최근 KAIST 학생들이 자신의 실패를 나서서 이야기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고, 저명한 수학자의 실패담도 알아보겠습니다.

 

“2018년 박사과정 때 폐암의 뇌 전이를 연구하면서 우스갯소리로 ‘암 걸리겠다’고 했는데, 그해 여름 우뇌에 직경 1cm 혈관종이 생겼어요. 진짜 암에 걸린 거죠.”

 

11월 1일 오후 7시 대전 KAIST 창의과학관에서 학생 10명이 병, 사고와 같이 외부 요인으로 좌절한 순간부터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실패한 사례까지 발표하는 ‘KAIST 실패학회: 망한 과제 자랑대회’가 열렸습니다. 청중은 실패를 공유한 학생들의 용기와 너무나도 이해 가는 상황에 크게 공감하며 시종일관 호응과 응원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발표 뒤에는 투표를 통해 떡상, 연구대상 같은 재치있는 상을 시상했습니다.

 

2021년 문을 연 KAIST 실패연구소는 10월 23일부터 2주간을 ‘실패주간’으로 정하고 사진전 ‘일상에서 포착한 실패의 순간들’과 망한 과제 자랑대회, 실패 세미나 등의 행사를 열었습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안혜정 KAIST 실패연구소 연구 조교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고, 실패했을 때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실패연구소의 목적”이라며, “사회적으로 KAIST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고, 고등학생 때까지 큰 실패를 하지 않은 모범생이라 실패를 더 두려워하는 것 같아 서로의 실패를 공유하는 장을 마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전을 관람한 장지연 KAIST 수리과학과 학생은 “‘실패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는 전시 문구가 공감됐다”라며, “다른 사람보다 못했으니 실패라고 여기면 스스로 성장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밝혔어요.

 

그는 문제를 풀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 좋아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려고 했는데, 대학 수학 문제는 최소 일주일 넘게 고민해야 해서 문제를 잘 풀고 있는지, 2학년 때 정말 전공으로 택해도 되는지 등 불안감에 휩싸였다고 해요. 그러다 친구, 선배들과 소통하면서 대학 수학을 공부하는 많은 학생이 비슷하게 좌절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런 생각도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아들이고 나니 성장한 기분이 들었답니다.

 


 

★ 제대로 망했어요! 망한 과제 자랑대회 ★

 

티코로 유라시아 횡단 계획, 교통사고로 막혔지만 프린스로 다시 도전!

 

 

2018년 <;수학동아>; 킹앤카 문제 출제진이었던 박정수 학생은 자동차 만들기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경차 티코로 총 1만 3000km 거리의 유라시아를 횡단할 계획을 세웁니다. 이후 티코를 사서 1년간 고장 난 부분을 직접 수리하고 학교의 도움을 받아 관련 굿즈를 제작해 경비를 모았습니다.

 

그렇게 유라시아 횡단을 준비하던 2019년 어느 저녁, 티코를 타고 가다 고속도로에서 6중 추돌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전치 6주의 큰 부상을 입어 유라시아 횡단은 시도도 하기 전에 물 건너 가버리지요.

 

아직도 철심이 박힌 왼쪽 엄지를 구부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박 학생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패에 매몰되면 안 된다”며, “실패는 지나간 일로 떠나보내고, 새로운 걸 다시 시도해보고 도전하면 된다”고 조언했어요. 현재 1991년 제조된 중형차 프린스를 개조해서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계획을 짜고 있답니다. 

 

암 극복하고, 암 연구로 박사 논문 작성

 

 

2018년 여름 암 전이 연구로 박사과정을 밟던 문진우 학생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정밀검사 결과 우뇌에서 직경 1cm의 혈관종을 발견했지요. 바로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사의 진단을 들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다행히 8시간에 걸친 수술 후 진우 학생은 빠르게 회복했습니다. 

 

치료를 마친 2020년 그는 박사 지도교수님을 찾아가 중단했던 연구를 다시 하고 싶다고 말했고, 교수님도 흔쾌히 이를 수락하면서 올해 3월 췌장암 연구로 박사 학위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문 학생은 “제 이야기를 들은 한 학부모가 저를 찾아와서 우리 아들도 건강이 좋지 않은데, 정말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현재 아픈 분도 있을 것이고, 이게 아니더라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을 텐데 그때 제 경험을 떠올리면서 용기를 내길 바란다”고 덧붙였어요.

 

 

식물 키우기 과제 망했지만, 의연함 배워

 

이진재 학생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과제를 망쳤습니다. 그는 지난 봄학기 식물학 수업에서 싹을 4개월 동안 키워 꽃을 피운 후 이 식물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과제를 받았어요. 2달 정도 키운 어느 여름, 햇빛을 잘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수업 가기 전 자동차 뒷좌석 창가에 올려 뒀지요.

 

그런데 2시간짜리 수업을 마치고 차로 돌아가니 식물이 바짝 말라 죽어 있었습니다. 여름이라 차 안이 너무 더웠던 것이지요. 이 학생은 “과제이기도 했지만 애지중지 키우던 반려 식물이 잘못된 판단으로 죽어 속상했다”고 말합니다. 더욱이 새로운 싹을 받아 다시 키우더라도 학기를 마칠 때까지 식물의 이름을 알 수 없어서 식물 키우기 과제는 망한 것이었지요.

 

하지만 고민 끝에 이 학생은 다시 싹을 받았습니다. 다시 받은 식물도 꽃까진 피우지 못했지만 전보다 더 많이 키웠습니다. 또 전처럼 자괴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레 겁먹거나 두려워할 시간에 도전하거나 시도하면 마음이 확실히 더 편해지는 것 같다”며, 작게 시도해보면서 두려워하는 마음의 장벽을 낮춰보라고 조언했어요.

 

수많은 실패를 딛고 성공한 수학자들

 

6년간 매달린 논문의 오류로 좌절했지만

수정 끝에 필즈상 특별상 수상

 

 

앤드루 와일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교수는 10살에 처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풀겠다고 다짐하고 학업 계획을 세워 수학자가 됩니다. 그러던 1986년 여름, 와일스 교수의 연구 분야인 타원 곡선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발표돼요. 연구를 샅샅이 살펴본 와일스 교수는 6년간 잠적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데 몰두합니다. 그러던 1993년 6월, 한 강연장에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했다며 나타나 그 내용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그의 논문에는 오류가 있었습니다. 와일스 교수는 처음엔 혼자서 오류를 수정하다 도저히 안돼서 그의 제자와 협력했지만 끝내 오류를 수정하지 못했어요. 결국 증명에 실패했다는 소문이 돌지요. 무려 15개월이 지난 1994년 9월 19일 아침, 증명을 거의 포기했던 와일스 교수는 갑자기 해결할 방법이 떠올랐어요.

 

그렇게 7년에 걸친 노력 끝에 완성된 논문이 수학계 가장 권위있는 학술지 <;수학연보>;에 실립니다. 와일스 교수는 만 41세에 논문을 완성해서 필즈상 수상 기회를 놓쳤지만, 그의 업적을 높이 산 국제수학연맹이 1998년 필즈상 특별상을 줍니다. 이후 그는 아벨상, 울프상, 쇼상 등수학계 대부분의 상을 휩쓸어요.

 

1986년 와일스 교수에게 영감을 준 연구를 발표한 케네스 리벳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교수는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와일스 교수는 약 360년 난제인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대담함을 가진 지구상에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라며, 1993년 당시 실패에도 당당하게 맞서는 와일스 교수의 집요함을 높이 평가했어요.

 

직장에서 해고 당했지만

50년 후 포브스지 선정 세계 100대 부호 선정

 

 

2014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 선정 세계 100대 부호로 이름을 올린 제임스 사이먼스 르네상스 테크놀로지 명예회장은 수학과 교수부터 펀드 매니저까지 수많은 도전을 했고, 성공으로 이끌었습니다.

 

도전적인 성향인 사이먼스 명예회장은 겉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대단한 성공을 거둔 인물이지만 실패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해고를 당한 사연인데요. 27살에 미국 하버드대학교 수학과 교수를 그만두고, 미국 국가안보국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베트남 전쟁 중이었던 당시 미국 국가안보국에서 암호 해독자로 일했던 그는 ‘뉴욕타임스’에 전쟁에 반대하는 글을 보내는 바람에 해고를 당합니다.

 

이후 사이먼스 명예회장은 다시 대학교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곧 그만두고, 1982년 펀드 투자 회사인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를 세웠습니다. 이게 신의 한 수였지요. 30년간 연 평균 수익률이 30%대였고, 2021년 세계에서 가장 큰 헤지펀드 회사 중 하나가 됐습니다.

 

목표한 대학교 입학하지 못했지만

하룻밤 만에 수학계 대표 난제 증명한 군론의 아버지

 

 

1830년대 초 프랑스 수학자 에바리스트 갈루아는 목표했던 대학교인 프랑스 에콜 폴리테크니크 입학에 두 번이나 실패했어요. 수학은 잘했으나 다른 과목은 낙제점을 받을 정도로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았거든요. 결국 갈루아는 에콜 폴리테크니크 대신 에콜 프레파라투아르에 입학합니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지만 그는 18살에 수 세기 동안 수학자들을 괴롭혔던 수학 문제를 하룻밤 만에 해결했어요. 5차 이상의 고차 방정식에는 근의 공식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대칭에 관해 연구하는 군론의 토대가 만들어집니다.

 

 

탄탄대로를 걸었을 것 같은 성공한 사람도 알고 보면 실패의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의 순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태도가 성공을 만들었지요. 여러분도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마세요. 

 

2023년 12월 수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손인하 기자
  • 사진

    KAIST
  • 디자인

    정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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