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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식의 가치를 잊지 않는 러셀 ● 

 

지금까지 버트런드 러셀의 삶 위주로 이야기했습니다. 특정 인물, 특정 분야에만 집중하다 보면 이야기의 큰 흐름을 놓치기 쉽습니다. 인물, 학문, 문화, 그리고 역사는 서로 놀라울 만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이 관계를 망각하는 것은 망원경으로 별을 관측하는 데 바빠 밤하늘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잊어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따라서 이번 호에서는 러셀이라는 하나의 별에서, 20세기 유럽 사회라는 밤하늘으로 눈을 돌려 러셀의 업적이 사회와 학문 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추적해보겠습니다.

 

이 영향을 파악하는 것은 러셀이 왜 지성사에서 그토록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입니다. 미국 주간지 <;타임>;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 및 사상가 100인’ 중 한 명으로 러셀을 선정했습니다. 

 

논리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서 러셀은 명료하고 합리적인 사고의 가치를 수학자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설득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그런 그의 노력은 인류가 판단하고 주장하는 방식에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저를 포함해 현시대의 많은 학생이 여전히 그를 존경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지식은 교수와 학자만을 위한 것이 아닌 인류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업에 열중하다 보면 지식을 습득하는 데 바빠 이 지식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숙고할 여유가 없어지곤 하지만, 그것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학자의 의무가 아닐까요? 

 

 

● 위기에 빠진 수학의 기초 작업 ●

 

제1차 세계대전의 광풍이 지난 뒤 유럽 사회는 혼란스러웠습니다. 500만 명이 숨졌고, 실종자도 400만 명이나 됐습니다. 이런 비인간적인 모습에 유럽 사회는 도덕적, 철학적으로 심각한 허무주의에 빠졌고 서구 문명 자체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많은 지식인은 이렇게 인류가 비인간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유럽의 사상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의견은 크게 두 진영으로 갈렸습니다. 한 진영은 19세기 유럽에 퍼져 있었던 합리주의, 과학 만능주의가 문제라는 입장이었어요. 모든 것을 분석하고 수치화해 마치 기계처럼 다루려는 태도가 수학과 자연과학을 넘어 윤리와 정치까지 삼켜버림으로써 인간성이 사라진 사회가 됐다고 주장합니다. 독일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은 <;유럽 학문의 위기>;를 집필하며, 지나치게 과학주의적인 접근과 실증주의를 경계하고 인간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반면 다른 쪽은 정반대로 사회가 더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수학의 남용이 아닌 수학과 논리의 부족함이 문제였거든요. 비합리적인 정치 체계는 *중우정치를 낳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대중은 정치인의 선전에 대항할 힘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시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었지요.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러셀이 평생 열중했던 수학의 기초를 구축하는 작업은 단순한 순수수학적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이성의 금자탑이나 다름없는 수학은 이 갈등이 가장 극명했던 곳입니다. 학자들은 수학이 무너진다면 논리나 합리성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했습니다.

 

실제로 독일 문화철학자 오스발트 슈펭글러는 “수학의 위기가 지식을 사유하는 방식을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주장했고, 이는 큰 지지를 받았습니다. 자연히 수학자는 더욱 수학의 기초 작업에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 참인 모든 명제는 증명 가능할까? ●

 

수학 기초론에서 중요했던 질문은 ‘모든 참인 명제가 증명 가능한지의 여부’였습니다. 

 

수학의 모든 명제는 참이거나 거짓입니다. 경우의 수를 분류해 표를 그려볼게요.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주어진 명제가 참이라면 증명이 가능하고, 거짓이라면 증명이 불가능한 경우이지요. 이 경우를 수학자는 각각 ‘완전’, ‘건전’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명제가 거짓인데, 증명 가능한 경우는 수학에 궤멸적입니다. 이것은 수학이 모순적이라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마지막으로 참이지만 증명이 불가능한 명제가 존재하는 경우인데요. 이 경우 ‘불완전하다’고 합니다.

 

일찍이 수학 체계는 독일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가 수학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만든 ‘집합론’에서 러셀이 모순을 발견해 위기를 겪었습니다. 이러한 위기는 러셀이 <;수학 원리>;를 통해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며 잠정적으로 해결한 듯했지만, 이론이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같은 위기에 대항해 1920년대에 다비트 힐베르트를 필두로 한 수학자들은 완전하고 건전한 수학의 기초를 확립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는 논리와 이성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입증할 시금석과도 같았습니다.

 

1930년 쾨니히스베르크학회에서 힐베르트가 펼친 연설은 합리성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는 자들로서 그들이 느꼈을 열정과 사명감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 무너져 내린 힐베르트의 꿈 ●

 

그러나 힐베르트의 꿈은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이미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쿠르트 괴델은 오스트리아의 논리학자였습니다. 그는 러셀과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수학 원리>;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아 이와 관련한 연구를 했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그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고, 핵심 아이디어를 정리해 쾨니히스베르크 학회에 참석했습니다.

 

학회 셋째 날에 괴델은 자신의 발견을 발표했지만, 괴델의 난해한 논증을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은 괴델의 발표를 모두 이해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노이만은 중얼거렸습니다. 

 

“끝장났군요!”

 

노이만의 말대로였습니다. 끝장이 난 것은 다름 아닌 힐베르트의 작업이었습니다. 그날 괴델이 발표한 내용의 핵심은 모든 수학 체계에는 참이지만 증명 불가능한 명제가 있다는 사실이었거든요! 1년 후 괴델은 당시의 생각을 다듬어 다음의 두 정리를 발표했습니다.

 

 

이 내용이 수리논리학에 미친 타격은 치명적이었습니다. 괴델은 힐베르트의 꿈뿐만 아니라 수학의 기초를 다지겠다는 독일 수학자 고틀로프 프레게, 이탈리아 기호논리학자 주세페 페아노, 화이트헤드,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확실한 지식을 동경하던 러셀의 꿈 또한 박살냈습니다.

 

결국 수학에서 승리를 거둔 쪽은 이그노라비무스였습니다. 그리고 수학에서 이그노라비무스가 승리를 거두자 전 세계마저 또다시 혼란의 술렁으로 빠졌습니다. 괴델이 자신의 정리를 발표한 지 2년도 되지 않아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에서 정권을 잡았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국민의 분노를 양분 삼아 끔찍하고 파괴적인 행보를 이어 나갔습니다. 

 

1939년 독일이 평화 조약을 깨고 폴란드를 침공하자 모든 것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수학, 물리학, 예술, 철학 등 인류의 나침반 역할을 자처하던 학문의 세계는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정치인들은 독일과 평화 조약을 맺어야 할지를 두고 전쟁을 벌여야 할지 입씨름을 벌였고, 동양에서는 일본 제국이 매서운 침략 활보를 보였습니다. 수백만 명의 폴란드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이송당했으며 그중 대부분은 집으로 살아 돌아 오지 못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다시 러셀로 돌아옵니다. 

 

 

 

 

용어 설명

*중우정치 : 다수가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내려 이뤄지는 정치.

*이그노라비무스 : ‘우리는 알지 못하고,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라는 뜻의 라틴어인 이그노라무스 에트 이그노라비무스(Igmoramus et igmorbismus)에서 온 말로 인간이 무지하다는 뜻이다. 19세기 생리학자 에밀 두 보이스-라이몬드가 어떤 과학 문제에 관해 인간이 답을 알 수 없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2023년 10월 수학동아 정보

  • 최정담
  • 진행

    이채린 기자
  • 디자인

    정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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