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동아>는 2009년 창간 이래로 ‘세계수학자대회(ICM)’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현장 취재를 나갔습니다. 2010년 인도, 2014년 우리나라, 2018년 브라질이번엔 북유럽 국가 핀란드였지요. ‘유럽수학회’ 본부가 있는 핀란드는 필즈상 사상 첫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로 수학과 인연이 깊은 나라입니다. <수학동아> 기자 2명이 핀란드로 날아가 그 뜨거운 현장을 직관했습니다!
시상식 당일
7월 5일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알토대학교 뚤루 캠퍼스에서 ICM의 꽃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핀란드 곳곳에 여러 캠퍼스가 있는 알토대는 핀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대학교입니다. 기자가 묵은 헬싱키 시내 숙소에서 트램을 타고 20분 정도 가니 시상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시상식은 현지 시각으로 오전 10시에 시작하지만, 저희는 취재 준비를 위해 한 시간 반 전부터 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20분 정도 지나자 수학자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30분 남았을 땐, ‘지각’이란 단어를 모르는 듯 200여 명의 수학자가 벌써 자리를 꽉 채우고 앉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대 뒤에서
시상식은 카를로스 케니그 국제수학연맹(IMU) 회장과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의 개회사로 시작됐습니다. 기자들은 요리조리 좌석을 살폈습니다. 수상자들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거든요. 시상식 전 수상자 명단은 비밀에 부쳐지지만, <수학동아>는 약 한 달 전 IMU의 허가를 받아 미리 수상자들을 인터뷰했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수상자도 찾을 수 없었어요. 수상자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너무 궁금했지요.
2022 필즈상 수상자로 위고 뒤미닐-코팽 교수님이 가장 먼저 호명되고 나서야 의문이 풀렸어요. 뒤미닐-코팽 교수님이 무대 뒤에서 깜짝 등장했거든요. 수상자들은 이름이 불리기 전까지 무대 뒤에 꼭꼭 숨어 있었던 거예요.
영광의 순간
“다음 수상자는 허준이(June Huh)입니다.”
드디어 두 번째로 허준이 교수님 이름이 불렸어요. 허 교수님은 저벅저벅 걸어 나와 무대에 우뚝 섰습니다. 고개를 한 번 숙이고선 뜨겁게 박수를 치는 관객들을 2분간 여유롭게 둘러보며 환하게 웃었어요. 필즈 메달을 받고 무대 위 의자에 앉자마자 옆에 앉아 있던 뒤미닐-코팽 교수님이 허 교수님 등을 토닥이며 거듭 축하의 인사를 건넸어요.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뒤미닐-코팽 교수님은 전날 <수학동아>를 만났을 때 허 교수님이 필즈상을 타는지 무척 궁금해했답니다. 기자는 단칼에 “비밀(Secret)!”이라고 대답했지요. 뒤미닐-코팽 교수님, 이제 궁금증이 풀리셨겠죠?
미션! 허 교수님을 온라인 클래스에 등장시켜라!
필즈상과 IMU 아바쿠스 수상자 발표까지 끝난 오후 1시. 점심시간이 1시간 주어졌습니다. 기자들에겐 시상식 현장에서 허 교수님을 온라인 클래스에 등장시켜야 하는 긴박한 시간이었지요.
허 교수님과 1시 30분에 참여하기로 미리 약속했지만 모든 게 불투명했어요. 교수님에게 취재 요청이 몰려들고 있었거든요.
먼저 김미래 기자는 근처에서 조용한 장소를 섭외하고 마이크, 카메라 테스트 등 모든 방송 준비를 마쳤어요. 이채린 기자는 주변을 서성이며 교수님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친절하게도 교수님은 다른 매체와 취재하는 중간중간 ‘약속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듯 기자를 쳐다봐 주었습니다. 그런데 1시 10분경 교수님은 일정 때문에 갑자기 시상식장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어요. 기자가 당황하자 교수님은 손가락으로 시상식장을 가리키며 “다시 여기로 돌아올 거예요”라며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거짓말처럼 교수님은 1시 20분경 진짜 나타났고, “헥헥. 갈까요?”라며 곧바로 현장 연결 장소로 향했습니다. 계속되는 취재로 지쳐 보였지만,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안녕하세요!”라며 <수학동아> 독자들을 향해 밝게 웃어줬어요. “수상 소감 짧게 부탁합니다”라는 요청에 “하하, 길게도 가능합니다!”라는 재치있는 멘트도 있지 않았답니다. 온라인 클래스가 끝난 뒤, 배낭을 메고 가시는 교수님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외쳤어요. 그러자 교수님은 손을 위로 한 번 척 들어주시고는 떠났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