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한국 수학자들이 꿈 같다고 표현하는 일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허준이 교수가 2022년 필즈상을 수상한 것입니다.
허 교수는 부모님의 미국 유학 중에 미국에서 출생했지만, 2살 때부터 줄곧 한국에서 살았고 초중고를 거쳐서 대학원 석사까지 국내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미국 박사과정 때는 서울대 석사 과정에서의 연구 주제에 기반해서 유명한 난제를 혼자 풀었습니다. 뛰어난 업적을 내고 나서도 각종 국내 학회에 열정적으로 참여해 왔고, 최근엔 고등과학원 석학교수 역할도 수행하면서 국내 대학원생들과 젊은 연구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제 필즈상을 수상한 총 64명의 수학자 중 아시아계는 12명입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대학 교육까지 받은 수상자, 즉 아시아 교육의 결과물로 볼 수 있는 수상자는 7명입니다. 2010년에 수상한 베트남의 응오바우쩌우 교수는 대학 교육부터 프랑스에서 받았고, 나머지 3명은 호주와 미국에서 모든 교육을 받은 인도계와 중국계지요. 일본 3명과 중국계 1명은 모두 오래전의 수상자여서, 최근 30년 이내의 아시아에서 교육을 받은 수상자는 4명뿐인데, 이슬라엘 출신 엘론 린덴스트라우스 교수, 이란 출신 코체르 비르카르 교수와 故 마리암 미르자하니, 우리나라 출신 허준이 교수입니다. 앞으로 제2, 제3의 허준이를 기대하며, 한국 수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측면도 함께 생각해 보려 합니다.
수학 분야의 학문적 성취에 수여되는 최고의 상인 필즈상은 4년마다 개최되는 ICM 개막식에서 수여됩니다. 2022 ICM은 원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취소돼 온라인 행사로 바뀌었고, 시상식은 핀란드 헬싱키에서 진행됐습니다. ICM은 4,000여 명 정도의 참석자 규모로 10일 정도 계속됩니다. 2014년에는 우리나라 서울에서 ICM이 열렸는데, 이때에는 5,200여 명의 수학자가 참석했습니다.
ICM을 주최하고 필즈상을 수여하는 기구는 IMU입니다. 1920년에 결성돼 현재는 82개국의 회원국이 있습니다. 한국은 1981년에 1그룹으로 가입했고, 1993년에 2그룹으로, 2007년에 4그룹으로, 그리고 2022년에 5그룹으로 상향됐습니다. 2007년 한 번에 2단계의 상향은 IMU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는데, 한국 수학 수준의 급격한 향상을 극명하게 보여 줍니다.
세계적인 한국 수학
2006년 9월 대한수학회는 한국의 IMU 그룹을 2그룹에서 4그룹으로의 상향을 요청하는 서류를 IMU 측에 보냈습니다. 요청서를 작성하면서 한국 내 수학 연구의 양적, 질적 성장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덕분이었습니다. IMU 역사상 한 번에 두 단계가 상향된 국가가 없었기 때문에 상당한 논란거리가 됐습니다. IMU 집행위원회에서 의구심이 생기면서 각종 추가자료 요구가 이어졌습니다. 2006년 수학 분야 논문 수로 보면 한국 수학은 세계 12위에 해당하지만, 추가로 요구받은 자료들은 모두 질적 수준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 출신 수학자 중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이름과 주요 업적을 정리해 달라거나 한국 출신 수학자 중에 외국의 연구중심대학에 재직하고 있거나 주요 학술지의 편집인을 맡고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보내 달라는 것이었지요. 이런 자료 요청에 대응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2007년 6월 말에 한국의 IMU 국가 등급 2단계 상향이 결정됐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훨씬 높은 수준의 정밀조사를 받으면서 유럽 국가들의 한국 수학 수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캐나다와 브라질과의 2014 ICM 유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토대가 됐고, 결국 2014 ICM은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됐습니다. 그 이후 필자는 한국인 최초 IMU 집행위원으로 선출됐고, 우리나라가 필즈상 선정위원회 구성 등의 IMU의 주요 의사결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토대가 마련됐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필즈상 선정위원회에는 오희 미국 예일대학교 교수가 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한국 수학계가 국제 수학계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상응하는 연구 수준의 향상도 이뤄졌습니다. 양적 성장뿐 아니라, 세계 수학의 주요 문제들에 도전하는 수학자들도 늘었습니다. 이런 성취를 기반으로 2022년 한국은 IMU 최상위 등급인 5그룹으로 한 단계 더 상향됐습니다.
▲ 2010 인도 하이데라바드 ICM에서 초청강연을 한 오희 교수(왼쪽 하단)와 2010 필즈상 수상자 엘론 린덴스트라우스 교수(오른쪽 상단).
제 2의 허준이 교수가 나오려면…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은 국내에서 대학교 석사 과정까지 교육을 받은 필즈상 수상자의 탄생이라는 의미가 큽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의심하고 국제 경쟁력이 없다고 이야기하던 우리 교육 체계에서 희망을 발견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가 고등학교 시절에 학교에서 좌절을 겪고 자퇴한 뒤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한 이력은 흥미롭습니다. 입시 중심의 학교 교육이 가진 문제를 우회한 것일까요. 게다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입학했지만, 대학 성적도 좋지 않아서 유학 갈 때 입학 허가를 받기가 어려워 고생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성적만을 기준으로 기회를 박탈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가 가진 재능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순간은 언제 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전공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그를 3학년 때부터 지도교수 역할로 끌어주고 수학으로 전공을 바꾸도록 도와준 김영훈 서울대학교 교수는 멘토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졸업을 앞두고 서울대 석좌교수로 초빙된 히로나카 헤이스케 미국 하버드대학교 명예교수의 존재도 특별합니다. 허 교수는 당시 히로나카 교수의 수학 내용은 너무 어려워서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최고의 수학자의 사고방식을 배우는 기회가 됐습니다. 더불어 김 교수와 히로나카 교수를 통해서 배운 대수기하학적인 사고는 이후에 조합론 분야에서 다른 학자들이 가지지 못한 그만의 비장의 무기가 됐지요.
우리나라에서 정부 주도로 운영된 세계적 석학 초청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는 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히로나카 교수라는 멘토를 통해서 또 다른 세계를 보게 된 학생이, 대학원 입학 허가가 거부되는 어려움을 뚫고 세계 최고의 수학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미래의 불확실함으로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롤모델을 보여주는 노력은 계속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만의 문제나 우리만의 문제를 풀기보다는 세계의 주류 학계가 관심 두는 문제에 뛰어드는 젊은 학자들이 나와야 합니다. 물론 어려움은 있습니다. 세계 주요 연구 그룹과 경쟁해야 하고, 남이 먼저 문제를 풀어 버리면 허망해지지요. 그렇더라도 이런 주류 문제에 겁 없이 뛰어들어야 제2의 허준이가 나올 겁니다. 수학자라면 이름만 들어도 알 정도의 주요 난제들을 겁 없이 붙잡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허 교수는 우리 시대 청출어람의 사례로, 후대의 멘토로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