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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포드 박사의 수학 로그] 제 24화. 운명처럼 만난 수학

 

저는 어렸을 때 제 또래 친구들보다 수학을 잘하는 편이었어요. 수학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도 좋아했는데, 특히 수학자 이야기, 그 중에서도 독일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와 스위스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를 가장 좋아했지요. 제 첫 영어 이름이 ‘칼(Karl)’인데, 가우스 이름에서 본떠 지었어요. 가우스와 똑같이 하기엔 부끄러워서 carl을 karl로 바꿔서 만들었어요.

 

운명을 바꾼 수학 강연

 

수학을 좋아했던 것과 별개로 제가 가고 싶은 길이 수학자는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까지 꿈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 그중엔 가수도 있었고, 프로게이머도 있었어요. 수학자는 후보에도 없었지요. 그때는 대학에서 경제나 경영을 전공하고, 금융계로 진출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이 모든 게 고등학교 3학년 때 만난 수학자와 그분의 책으로 모두 달라졌어요.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2007년 3월 15일에 열린 수학 대중강연이 제 인생을 바꿨거든요. 당시 저는 한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뉴질랜드에서 다니는 중이었어요. 어느 날 학교 수학 선생님께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유명한 수학과 교수님이 근처 오클랜드 대학교에 오셔서 수학 대중강연을 하니 함께 가자고 했고 저와 몇몇 학생들이 따라나섰죠.

 

강연 주제는 ‘소수’였어요. 저는 강연에 깊은 감명을 받아, 교수님이 쓰신 소수 관련 책을 곧바로 사서 읽었어요. 책을 읽으며 교수님 밑에서 수학을 한번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했지요. 이때 강연하신 수학자가 제 박사 과정 지도교수이신 마커스 드 사토이 교수님이에요. 강연의 핵심이었던 책은 <;소수의 음악>;이었고요. 저는 이 강연 덕분에 수학과에 진학도 했고, 영국 옥스퍼드대에 가게 됐어요. 그러니 이 강연은 제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 중 하나예요.

 

 

 

대학에서 만난 진짜 수학

 

드 사토이 교수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꿈은 굉장히 무모해 보였지만, 저는 정말 운 좋게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수학과에 입학을 했어요.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진짜 수학을 만납니다. 수학 로그에서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초중고에서 교과서로 보던 수학과 대학 수학은 정말 달라요. 이 사실이 저에게는 긍정적인 자극이었어요.

 

그동안 책에서 만나던 수학 이야기와 수학자 연구 이야기를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접할 일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데 대학에 들어와 보니 책에서만 보던 진짜 수학을 가르쳐 주는 거예요. ‘가우스나 오일러 같은 수학자의 연구가 이런 거구나’ 하면서 제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어요. 물론 수업 내용과 시험은 정말 어려웠고, 수학 재능과 능력이 뛰어난 친구도 많아서 힘들었지만요.

 

롤 모델이 있다는 것

 

수학을 공부하며 찾아온 위기의 순간마다 저를 버티게 한 건, 드 사토이 교수님과 제가 학교에서 만났던 동료 수학과 친구들이었어요. 사실 기대와 달리 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드 사토이 교수님의 수업을 들을 수는 없었어요.

 

옥스퍼드대에는 수학과학 대중화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영예로운 직책인 ‘찰스 시모니 석좌 교수’가 있어요. 드 사토이 교수님이 리차드 도킨스 교수의 뒤를 이어 그 자리에 계셨어요. 이 직책을 맡으면 대학교 강의 대신 대중강연을 하시며 본인의 연구를 이어갑니다. 그 덕분에 제가 있던 뉴질랜드로도 강연을 오실 수 있었던 거지요. 그러니 대학 생활 때는 교수님의 수업을 한 번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대신 교수님과 같이 수학 대중화 활동을 할 기회가 있었어요. 교수님은 ‘마커스의 경이로운 수학자들’이라는 학교 내 수학 대중화 동아리를 만드셨는데, 저도 동아리에 가입해 같이 다양한 활동을 했거든요. 그런 순간들이 있었기에 제가 수학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4학년이 되던 해, 저는 용기를 내서 드 사토이 교수님께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제가 뉴질랜드에서 교수님의 강연을 듣고 교수님께 수학을 배우고 싶어서 옥스퍼드대에 진학했고, 이제 교수님의 제자로 박사 과정을 밟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사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많이 부끄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교수님이 너무 부담스러우시면 어쩌나 걱정도 했었어요. 다행히 교수님께서 정말 좋아하시며 흔쾌히 저를 제자로 받아주셨어요. 당신이 평생 수학 대중화 활동을 하면서 있었던 일 중 가장 뿌듯한 순간 중 하나라고 하시면서요.

 

그렇게 고교 시절 교수님의 대중강연을 듣고 수학과를 선택했던 저는 이번에도 교수님 덕분에 수학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인생에서 진정한 롤 모델을 찾는 게 참 어려운 일인데, 저는 인생에 중요한 순간에 롤 모델을 만났고 그분이 평생 저의 은사님이 돼 주셨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행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수학 로그를 마무리하며

 

그렇게 박사 과정을 시작한 게 2012년이니, 벌써 9년 전이네요. 그 사이에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같이 수학의 길을 걸어가며 만난 사람들 덕분에 아직까지 수학을 하며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수학자가 되기로 한 이상, 수학 대중화를 위해 앞장서는 일은 제게 있어 수학 연구만큼이나 큰 즐거움이며 동시에 책임감을 느끼는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드 사토이 교수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물론 제가 조금 더 나이가 들고 같은 길을 걸어가보니 그게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일인지 느끼고 있지만요.

 

지난 2년 동안 수학 로그를 통해, 딱딱한 학문으로서의 수학보다는 수학자로서 현장에서 전할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이야기가 전달되길 바라며 한 자 한 자를 적었습니다. 저에겐 참 즐거운 일이었는데,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수학과 가까워질 수 있었길, 수학에 흥미가 생겼길 기대합니다. 다음에 또 좋은 기회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2021년 12월 수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이승재(서울대학교 기초과학연구원 사이언스펠로우)
  • 진행

    염지현 객원기자
  • 디자인

    김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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