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보드게임을 좋아하나요? 보드게임에서 빠질 수 없는 도구 중 하나가 바로 주사위인데요. 게임을 공정하고 재미있게 해주는 주사위에 숨어있는 대칭들을 함께 찾아볼까요?
보드게임의 매력, 주사위
인류는 오래전부터 대칭에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대칭과 밀접한 관계인 주사위는 고대 유물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재료를 가공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문명에선 주로 동물의 뼈나 돌을 갈아서 주사위를 만들어 사용했다고 합니다.
도박을 법으로 금지했던 고대 로마 시대에도 주사위를 이용한 내기와 게임들이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다른 민족들이 로마인들을 ‘주사위 놀이꾼’이라 불렀을 정도였다고 해요. 그래서 로마 시대 유물에는 다양한 주사위들이 정말 많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내기와 게임을 좋아하는 건 모든 사람의 공통점인가 봅니다.
그런데 요즘에 사용하는 주사위는 왜 유독 정육면체 모양이 많을까요? 정육면체의 한 면은 정사각형으로 이뤄져 다른 형태의 주사위에 비해 윗면을 읽기가 가장 편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정사면체 모양의 주사위는 윗면이 존재하지 않아 바닥에 닿은 부분을 읽어야 해서, 이 경우 숫자를 읽기 힘들죠. 또 다른 이유는 사각형이 삼각형보다 덜 뾰족해 사용자가 다치거나 주사위가 파손될 확률이 낮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최근까지도 정육면체 모양의 주사위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거죠.
대칭, 정다면체, 그리고 주사위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정육면체 주사위는 각 면에 1부터 6까지의 숫자가 적혀있고 마주 보는 면의 합이 7입니다. 하지만 주사위가 꼭 정육면체 모양일 필요는 없습니다. 주사위는 공정한 확률을 배정할 수 있는 도구이기만 하면 되죠. 다면체를 이루는 각 면이 나올 확률을 같게 만든다면 모두 주사위가 될 수 있습니다. 동전도 던질 때 수직으로 설 가능성을 무시한다면 앞, 뒤 두 면으로 이뤄진 주사위라고 할 수 있죠.
어느 면이 나올 확률을 모두 같게 하려면 모든 면을 같은 모양이면서 대칭이 되도록 만들면 됩니다. ‘모든 면이 같은 모양이고 대칭으로 이뤄진 3차원 물체’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수학동아 독자들이 예상한 대로 정답은 정다면체입니다.
모든 면이 정다각형인 정다면체는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 총 다섯 종류가 있고 모든 정다면체는 공정한 게임을 위한 주사위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모양의 대칭을 가진 주사위들
모든 정다면체는 주사위가 될 수 있지만, 모든 면이 정다각형일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 그림1과 같은 녹색 십면체 주사위를 생각해 봅시다.
십면체의 한 면은 정사각형이 아닌 다이아몬드 모양의 사각형인데 각 면의 사각형은 모두 모양이 같고 서로 합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다면체가 아닌 십면체 주사위도 각 면이 동등한 확률을 갖는 주사위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면이 합동인 다면체를 면추이(Isohedral) 다면체라고 부릅니다. 군론의 시각에서 면추이 다면체를 정의하면, 군의 작용을 통해 한 면을 다른 면으로 돌렸을 때 모든 면과 모서리가 포개지는 도형을 의미합니다. 정팔면체 같은 쌍각뿔, 십면체 같은 엇쌍각뿔 형태의 주사위가 면추이 다면체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혹시 지금까지 나온 주사위들의 면의 개수가 짝수라는 사실을 눈치챘나요? 3차원의 모든 방향에서 대칭을 이루기 위해선, 정다면체든 면추이 다면체든 상관없이 짝수 면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한 방향으로만 대칭을 이룬다고 가정한다면 홀수 면을 갖는 주사위도 있을 수 있습니다.
홀수 면을 갖는 주사위의 예로 아래 그림2를 들 수 있는데요, 두 오각기둥 중 A처럼 오각기둥을 만든 뒤, 직사각형 부분에만 1부터 5까지 숫자를 적고 볼펜처럼 굴린다고 생각해 봅시다. 엄밀하게 말하면 주사위는 아니지만, 확률이 같기 때문에 5면 주사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각기둥 B는 앞면과 뒷면 총 두 면으로 이뤄진 주사위라고 할 수 있겠죠.
공정함을 위한 주사위의 노력
대칭을 가진 여러 다면체를 생각하는 건 쉽지만, 실제 같은 확률을 갖는 주사위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정육면체 주사위를 다시 한번 볼까요. 예전엔 정육면체를 먼저 만든 뒤, 아래 그림처럼 숫자만큼 동그란 홈을 파서 숫자를 표시해 주사위를 만들었습니다.
이 방법의 단점은 홈의 개수에 따라 각 면의 무게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홈을 한 번 파는 면보다 홈을 여섯 번을 파야 하는 면의 무게가 더 가벼울 테니 말이죠. 홈을 파는 방식으로 주사위를 만드는 미국 체섹스(Chessex)사의 주사위는 6에 해당하는 면이 지나치게 가볍고, 점차 모서리가 둥글어져 다른 면으로 쉽게 굴러갔다고 합니다. 실제로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의 한 교수가 2006년 직접 144개의 주사위를 각각 1000번 굴려 실험한 결과, 던지는 방법에 따라 1이 나올 확률이 무려 29%까지 올라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정육면체 주사위뿐만 아니라 동전 던지기나 윷 던지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전의 경우 주사위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정확히 맞지 않아 던지는 기술에 따라 한쪽 면만 나오도록 조작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마술사들은 이 점을 이용해 마술 트릭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실내 활동이 늘어나 다양한 보드게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주사위 속 숨어있는 대칭을 함께 생각해 보면서 게임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