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을 든 여인’, ‘백의의 천사’로 불리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1820년 5월 12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이팅게일은 어려서부터 숫자를 이용해 여러 방법으로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 등 수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가족여행을 할 때면 하루 동안 여행한 거리를 계산하고 여행 시간을 기록했습니다. 스무 살에는 개인 수학 교사에게 수학을 배워 통계 정리의 기초를 닦았죠.
세계를 여행하며 여러 병원을 둘러본 나이팅게일은 자신의 꿈을 찾았습니다. 바로 간호사가 되어 환자를 돌보는 일입니다. 크림전쟁이 일어나고 1년 뒤인 1854년, 나이팅게일은 영국군 야전병원 간호사로 자원했습니다. 그러던 중 부상병을 치료하며 전쟁에서 죽는 군인보다 질병으로 죽는 군인의 수가 더 많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그는 통계 작성기준을 세우고 환자들의 입퇴원 기록, 사망자 수, 병원의 청결 상태까지 병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정리했습니다. 그 결과, 6개월 만에 영국군 부상자의 사망률은 40%대에서 2%로 감소했습니다.
1856년 크림전쟁이 끝나고 영국으로 돌아간 나이팅게일은 800쪽 분량의 영국군 보건환경에 대한 통계보고서를 썼습니다. 그는 단순히 숫자만 나열된 자료는 한눈에 보기 어려울 거라 생각해 이를 한눈에 보기 쉽게 ‘장미 도표’라는 그림으로 정리했죠. 나이팅게일은 장미 도표를 이용해 야전병원의 위생상태가 개선되면서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크게 줄었다는 사실을 한눈에 보여줬습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나이팅게일은 1859년 영국 왕립통계학회 회원이 됐고 이후 미국 통계학회의 명예회원으로 추대됐죠.
나이팅게일은 전쟁터뿐만 아니라 영국 본토에 있는 병원 위생환경도 열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영국에서 모은 기금으로 1859년 런던 세인트토마스 병원에 ‘나이팅게일 간호학교’를 만들었습니다. 또 ‘간호론’이라는 책을 써 간호학의 기초를 세웠죠. 이 책은 세계 각국어로 번역돼 간호법과 간호사를 양성하는 기초자료로 쓰이고 있습니다. 통계학으로 현대 간호학의 기초를 세운 나이팅게일은 1910년 8월 13일 90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