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또 다른 내가 나를 응시하는 모습은 분명 무서운 일이었다. 하지만 폴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거울 속 폴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그가 자신을 해칠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폴은 점점 두려움이 사라지고 자신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거울 속 폴이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미션 ❶ 거울 속 폴과의 만남
폴은 가슴이 두근두근했지만, 자신도 거울 속 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거울에 손이 닿는 순간….
“으앗! ”
번개를 맞은 듯 강렬하고도 찌릿한 감촉과 함께 폴은 거울 반대편으로 튕겨져 나갔다.
“에고~, 머리야. 엇? 거울이?”
거울이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거울 속 폴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 폴이…. 넌 다…른 세계…서… 왔….”
하지만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지 않았다. 폴은 주의를 기울여 거울 속 폴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래, 나도 폴이야. 난 다른 세계에서 이곳으로 왔어. 너도 다른 세계로 빨려들어간 거야?”
거울 속 폴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울 속 폴과 말이 통하자 폴은 신이 났다.
“내 말이 들리는구나? 아, 맞다! 여기…. 응?”
거울 속 폴이 갑자기 긴장한 얼굴로 입에 손가락을 대더니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폴은 시키는 대로 몸을 숙이고 조용히 숨을 죽인 채 거울 너머를 지켜봤다. 일렁이는 거울 너머에 거울 속 폴 말고 다른 사람이 등장했다. 그는 험상궂은 얼굴로 거울 속 폴을 감시하는 듯 살피고 사라졌다.
“혹시 누군가에게 잡혀 있는 거야? 대체 왜? 응? 시간이… 없다…고? 안전하…지 않다고?”
거울 속 폴은 계속 뒤쪽을 경계하며 마음이 급한지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넌 세계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사물함이…? 응? 좀 천천히 말해 봐.”
그때였다. 이번에는 미리 숨을 시간도 없이 아까 나타났던 사람이 폴을 노려보며 성큼성큼 걸어 오더니 거울을 향해 뭔가 세게 집어 던졌다. 콰직 소리와 함께 거울이 깨졌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거울 속 폴이 걱정됐지만 도울 방법이 없었다.
“안 되겠어. 어서 나가서 이 사실을 폴리스에게 알려야겠어. 어? 문이…?”
그러다 깨진 거울로 시선이 멈췄다. 거울의 깨진 틈 사이로 팔 하나가 비집고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으악! 뭐야!”
놀란 폴이 소리를 지르자 호주머니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주사위였다. 폴이 주사위를 꺼내려다가 바닥에 떨어뜨리자 바닥에 글씨가 나타났다.
“네 개 중 다른 것을 하나 찾아라. 그리하면 깨어진 차원이 붙여지리라.”
미션 ❷ No.103 사물함을 열어라!
“폴리스! 피타!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엉엉~.”
폴은 화장실 문을 나오자 마자 폴리스와 피타를 향해 달려들어 와락 안기고는 우는 소리를 했다.
“폴! 진정해! 무슨 일 있었어? 화장실 다녀온 지 얼마나 됐다고 난리야.”
“적어도 30분은 넘게 있었던 것 같은데? 아냐?”
“무슨 소리야. 너 들어간 지 3분이나 됐나? 그새 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거야?”
“뭐? 3분? 그럴 리가….”
폴은 화장실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 그러니까 이 주사위가 아니었더라면…, 아니지 내가 문제를 맞혀서 깨진 차원을 닫지 못했더라면 깨진 거울 틈 사이로 무서운 사람이 나와서 무슨 일을 벌였을지도 모른다니까!”
설명을 마친 폴이 일행들을 이끌고 화장실에 들어가 보았다. 하지만 거울도 멀쩡했고,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뭐야? 아무 것도 없잖아!”
폴b의 말에 폴리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답했다.
“흠…. 화장실에서 차원이 뒤틀린 것 같아. 그래서 저쪽 세계로 넘어간 폴과 네가 일시적으로 만난거지. 하지만 너희들 폴 말고 다른 존재가 강제로 차원 간 이동을 하려고 했다면 그건 정말 심각한 문제인 것 같아.”
“거울 속 폴은 분명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어. 참! 사물함에 뭔가 넣어 놓은 것 같아. 그런데 폴리스, 너 뭔가 아는 게 많은 것 같다?”
“스…, 스승님이 알려 주셨어.”
“참, 스승님은 괜찮아지셨어?”
“어? 스승님? 그게 그러니까….”
“아얏! 피타! 왜 그래? 무슨 할 말 있어? 갑자기 전기를 쏘고 그래?”
피타가 자꾸 폴을 잡아끌었다. 폴b가 이 모습을 보고 말했다.
“피타, 폴! 장난 그만 치고 어서 사물함으로 가 보자. 폴, 너 사물함 몇 번 써?”
“나? 103번. 넌?”
“나도. 그럼 103번으로 가 볼까?”
103번 사물함에는 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우와! 셋 다 똑같은 사물함을 쓰네? 그런데 여기 엄청 커다란 자물쇠가 걸려 있어. 어쩌지?”
“자물쇠 옆에 뭐라고 적혀 있는데?”
“읽어 봐.”
“수평선과 수직선만 이용해 모든 칸을 통과하시오. 한 번 지나간 칸은 다시 지나갈 수 없고, 한 원에서 90도로 꺾으면, 다음 원에서는 반드시 직선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원을 만날 때마다 90도 꺾었다가, 직선으로 갔다가 번갈아 통과하란 말이지?”
미션 ❸ 폴리스, 주사위를 훔쳐가다!
사물함 속에는 주사위가 들어 있었다. 폴b는 기뻐하며 폴에게 말했다.
“폴! 드디어 세 개의 주사위를 모두 찾았어! 이제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폴도 환하게 웃으며 주머니 속에 있던 주사위를 꺼냈다. 둘은 주사위 3개를 손에 쥐고 펄쩍펄쩍 뛰며 소리를 질렀다. 이 모습을 보고 폴리스도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디, 나도 주사위 좀 보자.”
폴이 폴리스에게 주사위를 내미는 순간, 피타가 처음 보는 무서운 표정으로 폴과 폴b, 폴리스를 향해 강한 전기를 쏘았다.
“피타피타!”
전기의 힘에 밀려 셋은 한 덩어리에서 뿔뿔이 흩어지며 바닥에 넘어졌다.
“윽…. 피타! 대체 왜 그래?”
피타는 여전히 폴리스를 향해 전기를 찌릿찌릿 뿜으며 무서운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다. 폴리스가 음흉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눈치 빠른 녀석이군. 하지만 뭐 상관 없어. 이제 주사위를 손에 넣었으니까.”
“뭐? 폴리스, 무슨 말이야?”
폴b는 이상한 기색을 느꼈는지 폴리스에게 단호하게 외쳤다.
“폴리스, 주사위를 돌려줘.”
“흐흐~. 싫다면?”
폴리스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폴은 말을 잇기 힘들었다. 그때였다.
“얘들아, 그 놈에게서 떨어지거라!”
“러일로! 드리클류 선생님!”
복도 끝에서 드리클류와 러일로, 그리고 덤덤 형제가 달려오고 있었다.
“쳇, 귀찮은 녀석들이 오는군. 난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만~. 주사위는 요긴하게 잘 쓰마.”
그러더니 폴리스는 폴과 폴b를 향해 뭔가 집어 던졌다. 갑자기 주변이 캄캄해지더니 폴과 폴b는 어딘가에 갇히고 말았다. 폴은 다리가 풀려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토록 믿고 의지하던 폴리스였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폴! 정신 차려!”
캄캄한 공간에 넋을 놓고 앉아 있던 폴과 폴b. 그런데 주변이 조금씩 밝아지며 공간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공간은 육면체로 돼 있었는데, 삼면에 빈 칸과 숫자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벽면에 문제가 나타났다.
“화살표로 표시된 수평과 수직 방향의 줄(8칸)과, 진하게 표시된 직사각형(8칸) 안에 1부터 8까지의 숫자가 한 번씩만 들어가도록 빈칸을 모두 채워라. 그러면 열릴 것이라.”
미션 ❹ 7개의 꺼진 전등을 모두 켜고 방에서 탈출하라!
큐브를 완성해 캄캄한 육면체 공간에서는 탈출했지만 피타와 러일로, 드리클류, 덤덤 형제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질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좁고 어둡고 답답한 방 안에 서 있을 뿐이었다.
“뭐야? 아직도 피타와 러일로 선생님이 보이질 않네? 여긴 어디지? 아직 탈출하지 못한 건가?”
“그런가 봐. 그런데 이 작은 방에 웬 전등이 저렇게 많아? 이상하지 않아?”
전등이 모두 꺼진 상태로 놓여 있어서 방은 기분 나쁠 정도로 캄캄했다. 폴은 우울한 기분을 떨칠 겸, 전등을 켜서 방을 좀 밝히고 싶었다.
“찰칵!”
불을 켜고 보니, 정말 좁은 방에 7개의 전등이 다닥다닥 붙어서 원형으로 배치돼 있었다. 놀랍게도 방에는 작은 문조차 없었다. 그냥 꽉 막힌 작은 방이었다.
“여기서 나갈 방법이 없는 거야?”
“어떻게 하지?”
“휴, 어떻게 된 거지? 밖에서는 우릴 걱정하고 있을까? 아무런 기색도 느껴지지 않아?
“외부 세계와 차단된 독립적인 공간 같아. 바깥의 도움은 기대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 나갈 방법을 찾아야만 할 것 같아.”
“하지만….”
폴과 폴b는 침울하게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있으면 우울증에 빠질 것 같아 폴은 애써 씩씩하게 일어나며 큰 소리로 말했다.
“방 구석구석을 살펴볼까?”
전등을 모두 켜서 방을 환하게 밝히면 뭔가 단서가 나올 것 같았다. 폴은 아까 켠 전등 바로 옆의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그런데….
“엇? 전등을 켜니 옆에 켜져 있던 전등은 꺼지고…, 엥? 꺼져 있던 옆의 전등은 켜졌네?”
그러고 보니 처음에 분명 전등 하나를 켰는데, 그 주변의 전등까지 총 3개의 전등이 켜졌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전등을 켜니 이번엔 켜져 있던 전등은 꺼지고, 꺼져 있던 전등은 켜지는 것이 아닌가? 이때 방 벽면에 글씨가 서서히 떠올랐다.
“7개의 전등을 모두 켜라. 그러면 나갈 것이라. 단, 전등 스위치를 한 번 누를 때마다 나가는 시간은 한 시간씩 늦춰진다. 즉, 가장 적은 횟수로 모든 전등을 켜면 더 빨리 나갈 수 있다.”
“윽, 전등을 다 켤 때까지 몇 시간이나 여기 갇혀 있어야 하는 거야?”
드디어 모두 학교에 모이다!
큐브에서 탈출하자 가장 먼저 반긴 것은 피타였다.
“피타피타!”
러일로와 드리클류, 덤덤 형제도 폴과 폴b를 걱정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뭐야! 폴리스? 무슨 염치로 여기 서 있는 거야?!”
폴b가 거칠게 폴리스에게 달려들자 러일로가 그를 막았다. 폴은 피타를 품에 안은 채 멍한 표정으로 폴리스를 바라봤다. 폴리스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얘긴 들었어. 괜히 내가 다 미안하네. 아깐 가짜 폴리스였어. 그리고 내가 진짜 폴리스지.”
“어떻게 된 거죠?”
러일로는 드리클류를 구출하기 위해 진작에 학교로 왔었다. 러일로는 비교적 경계가 허술한 덤덤 형제의 형을 먼저 구출한 뒤, 다같이 힘을 모아 드리클류를 구해냈다. 그들이 자꾸 변신을 해서 구출하는데에도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드리클류도 구출하고 그들을 다 잡으려는 순간, 한 녀석이 폴리스의 모습을 한 채 도망을 갔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여기서 너희들을 속이고 주사위를 빼앗아갈 줄이야. 그럴 줄 알았다면 그렇게 쉽게 놓치는게 아니었는데….”
러일로의 설명을 다 들은 폴b는 폴리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아깐 누군가 폴리스의 모습으로 변신을 해서 우릴 속인 거란 말이죠?”
“아~, 그래서 피타가 아까 그렇게 폴리스에게 무서운 얼굴을 했던 거구나. 피타, 대단한데?”
“피타피타!”
“그런데 얘가 진짜 폴리스란 건 어떻게 믿죠?”
그때 굵직한 음성이 뒤에서 들려왔다.
“그건 내가 보증하지.”
“누구세요?”
“폴리스의 스승, 갈루마라네. 나 역시 폴리스로 변신한 녀석에게 당해 몸이 굳어 버리고 말았지.”
“그들의 정체가 뭐죠? 괴짜 수학자들인가요? 주사위를 가져간 목적이 뭔가요?”
그때였다. 학교 방송이 울려 퍼졌다.
“2번째 방송입니다. 폴 학생은 지금 당장 제3교무실로 오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또 방송이? 갈루마님, 대체 누가 절 찾는 거죠?”
“시간이 없군. 이동하면서 설명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