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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박사의 수학 로그] 제12화. 소중한 수학 가족

 

코로나19로 다사다난했던 2020년도 어느덧 한 달 남았네요. 
그 어느 때보다도 주위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꼈던 한 해가 아닌가 싶은데요, 수학자에게도 소중한 수학 가족이 있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수학자 혹은 수학 연구자로 인정받기 위해선 최소 박사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박사과정을 이수하려면 지도교수가 필요하죠. 꼭 박사과정이 아니더라도 수학을 지도해줄 스승님이 있어야 하고요. 수학계에선 이런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가족’에 비유하곤 합니다. 지도교수가 부모님, 지도교수의 다른 제자들이 형제자매가 되는 거죠.

 

수학계 명품 족보 


수학계 역사를 통틀어 보면 수많은 위대한 수학자가 있습니다. 그중에는 대기만성형 대가도 있고,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천재도 있죠. 하지만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다던 뉴턴의 말처럼 그 어떤 천재도 스승 없이 존재할 순 없습니다. 때론 위대한 수학자가 위대한 스승이 돼서 또 다른 위대한 제자를 길러냅니다.


2018년에는 수학 가족 3대가 나란히 필즈상을 받은 족보가 탄생했는데요, 8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알레시오 피갈리 교수가 필즈상을 받으며 피에르 루이 리옹 교수에서 세드리크 빌라니 교수, 피갈리 교수로 이어지는 3대가 나란히 필즈상을 받은 겁니다. 현재 가장 화려한 수학 족보 중 하나죠. 


그 외에도 고드프리 하디와의 공동연구로 유명한 영국 수학자 존 리틀우드를 시작으로 수 이론의 대가 해럴드 대번포트, 1970년 필즈상 수상자인 앨런 베이커, 타원 곡선 연구로 유명한 존 코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앤드루 와일즈 교수, 2014년 필즈상을 받은 만줄 바르가바 교수로 이어지는 가족 역시 ‘정수론의 황금 족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보기만 해도 눈이 부신 대가의 계보도 있지만, 사실 모든 사람이 저명한 수학자 아래에서만 공부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유명한 대가의 제자가 된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것도 아니고요. 위대한 스승을 만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입니다. 필즈상을 타거나 유명한 문제를 풀어야지만 좋은 수학자, 좋은 지도교수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대학원에서 연구하다 보면, 지도교수와 동료 제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습니다. 수학적인 가르침만큼 인간적인 교류도 중요하죠. 대학원에서 만난 사람이 인생의 은인이 될 수도, 반대로 인생의 원수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제 수학 가족을 소개합니다~


저는 다행히도 대학원생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복이라는 ‘지도교수 복’을 듬뿍 받았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수학자이자 활발한 수학 대중화 활동으로 잘 알려진 마커스 드 사토이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교수님이 제 지도교수님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드 사토이 교수님의 강연을 듣고, 막연하게 저분 밑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영국 옥스퍼드로 유학을 갔습니다. 대학원 진학으로 맺어지는 평범한 사제관계보단 연결고리가 강하죠. 어떻게 보면 ‘성덕(성공한 덕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드 사토이 교수님은 수학자로서도 좋은 스승님이고, 사람으로서도 정말 존경할 만한 멘토가 돼주셨습니다. 졸업하고 독일에 박사후연구원으로 와 있는 지금도 같이 연구를 하며 매주 웨비나(온라인 회의)를 하곤 합니다.


드 사토이 교수님은 저 말고도 6명의 제자를 더 두어 총 7명의 제자를 지도하셨는데, 제가 아직까진 이 집안의 귀여운 막둥이입니다. 사실 저를 제자로 받기 전까지 5년 동안 대중화 활동을 위해 제자를 받지 않으셨는데요, 제자를 다시 받기로 하셨던 시기가 마침 제가 박사를 지원한 시기였던 것도 참 신기한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수님의 제자들, 즉 저의 수학 남매 중 가장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는 분은 독일 수학자 크리스토퍼 폴 교수인데, 저와 함께 독일 빌레펠트대학교에서 같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미 둘이서 논문을 두 편이나 같이 작업했으니 우애 좋은 형제라고 볼 수 있겠죠? 실제로 저에겐 항상 의지가 되는 믿음직한 큰형입니다. 


드 사토이 교수님이 수학 아버지라면 수학 할아버지도 있겠죠? 드 사토이의 지도교수님은 댄 시걸 전 옥스퍼드대 교수님으로,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영국에서 대수, 군론, 정수론으로 저명했던 수학자셨습니다. 제가 드 사토이 교수님 아래서 박사과정을 밟기 전에 시걸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었는데요,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매우 친절하셨습니다. 학과 내에서 유행에 민감한 패션 감각으로도 유명하셨었죠. 

 

2020년을 마무리하며


이렇듯 사제지간으로 이어지는 수학 가족도 있지만, 수학 연구를 하다 보면 수많은 소중한 동료, 혹은 선후배 수학 연구자와 함께하기 마련입니다. 연구는 결코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요. 때로는 같은 연구를 하지 않더라도 수학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즐거운 말동무도 생깁니다. 수학의 길을 함께 가는 이들은 너무나 소중한 인연입니다. 


독자분들도 같이 수학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찾는 게 얼마나 즐겁고 감사한 일인지 잘 아실텐데요, 2020년을 마무리하며 각자 소중했던 수학 친구, 가족에게 고마운 인사를 하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2021년에는 저처럼 좋은 수학 가족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한 해 동안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2021년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올게요!  

 

2020년 12월 수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이승재
  • 진행

    조가현 기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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