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데뷔해 올해 벌써 7년 차 걸그룹으로 자리매김한 레드벨벳은 ‘한 그룹 두 콘셉트’라는 참신한 정체성으로 쉴 틈 없는 놀라움을 선사하는 아이돌이다. ‘레드’는 강렬하고 밝은 느낌의 ‘행복’, ‘Ice Cream Cake’, ‘빨간 맛’ 등의 노래 콘셉트를, ‘벨벳’은 클래식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Be Natural’, ‘7월 7일’, ‘Bad Boy’ 등의 노래 콘셉트를 뜻한다. 그룹명 자체가 드러내듯, 레드벨벳은 상반된 레드와 벨벳의 이미지를 나누어 두 가지 모습으로 활동하는데, 그동안 좋은 성적을 냈던 곡은 주로 레드 콘셉트의 곡들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레드에 열광할 때 꿋꿋하게 벨벳을 목놓아 부르던 피터팍을 오열하게 한 벨벳 신곡이 나왔으니 바로 2019년 발매 걸그룹 곡 중 유일한 멜론 일간 1위 곡이자 2020년에도 차트 상위권에 굳건한 ‘Psycho’다.
Psycho는 남들이 보기에는 별나 보여도 결국 서로 뿐임을 인정하는 연인의 이야기를 담은 곡으로, 레드벨벳의 능수능란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보컬이 어우러진 것이 특징이다. 그간 레드 콘셉트의 성적에 밀렸던 것이 무색하게 Psycho는 ‘모든 음원 차트 1위 올킬’, ‘아이튠즈 앨범 차트 한국 걸그룹 최초 및 최다 1위’, ‘2019 걸그룹 유일한 멜론 일간 1위’, ‘지니뮤직 스트리밍 1000만 건 최단기간 돌파 걸그룹 곡’ 등의 괴물 같은 기록을 줄지어 세웠다.
올해 7년차를 맞은 레드벨벳은 여전히 숙소 생활을 하는데, Psycho 활동으로 KBS 예능 프로그램 ‘해피투게더’에 출연한 조이는 최근 이사해 멤버들이 드디어 개인 방을 가지게 됐다며, 방 배정으로 문제가 있었던 일화를 언급했다.
★숙소 방 배정으로 갈등?★
레드벨벳이 이사한 집은 방 크기가 모두 달랐고 그중 하나는 다용도실이었다. 고심 끝에 제비뽑기로 ‘공평하게’ 방을 정하기로 했지만 다용도실에 걸릴까봐 선뜻 누구도 제비를 뽑지 않았다.
사면초가 상황에서 구세주처럼 나선 것은 슬기였다. 슬기는 다용도실을 쓰는 대신 거실 공간을 자신의 드레스룸으로 쓰겠다고 제안했고, 멤버들이 동의하면서 방 배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이는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다른 멤버는 짐을 둘 자리가 없었다’며 슬기가 진정한 승자라고 말했다.
이처럼 가치가 다른 대상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무작위로 방을 나누는 제비뽑기도 결국 누군가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공평하지는 않고, 좁은 방을 쓰는 사람에게 혜택을 얼마큼 줘야 적당한지 알기도 어렵다. 그런데 만약 레드벨벳이 수학의 도움을 받았다면 훨씬 정확하게 방을 배정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조건이 다른 방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은 수학적으로 증명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 수학자 프란시스 수는 어느 날 친구에게 재미있는 질문을 받는다. 수의 친구는 하우스메이트와 살고 있었는데 크기와 조건이 다른 방들로 이뤄진 집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누가 어떤 방을 쓸지, 또 전체 월세를 어떻게 나눠야 공평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수는 ‘각자 만족하면서 월세를 정확히 나눌 수 있는 방법이 항상 있을까?’라는 질문이 ‘수학적으로 우아하면서도 건설적인’ 문제라고 생각했고, 곧 이를 증명해 친구에게 ‘항상 있지!’라는 답을 전했다.
★프란시스 수의 합리적인 방 나누기★
수학에서 공평하게 나누기는 유서 깊은 분배 문제인 ‘케이크 공평하게 나누기’에서 출발한다. 케이크는 아무리 정확하게 나눠도 조각마다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두가 만족하는 공평한 분배는 각 조각이 정확히 같은 크기거나 무게일 때가 아닌 모두가 ‘질투하지 않는 분배’가 이뤄진 상태로 정의한다. 케이크 공평하게 나누기에는 다양한 해법이 있는데, 수는 여러 방법 중 ‘단체’에 관한 ‘슈페르너의 보조정리’를 이용하는 방법을 월세 나누기에 적용했다.
단체는 점, 선분, 삼각형, 사면체 등의 도형을 일반화한 개념으로 n차원 단체일 때 n+1개의 꼭짓점을 갖는다.
예를 들어 점은 0차원 단체로 1개 꼭짓점을, 선분은 1차원 단체로 2개의 꼭짓점을 갖는다. 슈페르너의 보조정리는 모든 단체가 만족하는 특정 성질에 대한 정리다.
삼각형으로 예를 들어보자. 각 꼭짓점에 1, 2, 3 숫자를 붙인다. 이때 서로 다른 숫자로 둘러싸인 삼각형은 1개다.
삼각형을 더 쪼개면 또 다른 꼭짓점이 생긴다. 이때 새로 생긴 꼭짓점의 양끝에 있는 숫자 중 하나를 마음대로 골라 꼭짓점에 이름 붙인다. 서로 다른 숫자로 둘러싸인 단위 삼각형은 여전히 1개다.
더 잘게 삼각형을 쪼개면 새로운 꼭짓점들이 생긴다. 이때 가장 큰 삼각형 변에 생긴 꼭짓점들은 가장 큰 삼각형의 양 끝에 있는 숫자 중 하나를 마음대로 골라 붙이고, 가장 큰 삼각형 변에 닿지 않은 꼭짓점들에는 1, 2, 3 중 아무 숫자나 붙인다. 슈페르너의 보조정리는 아무리 삼각형을 잘게 쪼개도 항상 서로 다른 숫자로 둘러싸인 삼각형이 반드시 1개 이상 있으며, 홀수 개라는 것이다.
★3명이 삼각형 단체로 월세 나누는 방법★
슈페르너의 보조정리를 이용해 방을 나누는 상황을 고려해보자. 슬기(A), 웬디(B), 예리(C) 3명이 독립해 월세를 지불하며 하우스메이트가 되기로 했다고 가정하자. 방은 3개이며, 전체 집의 임대료는 50만 원이다.
나눌 사람이 3명이므로 2차원 단체, 즉 삼각형을 이용해 서로 겹치지 않게 방을 고르는 경우의 수를 찾을 수 있다. 잘개 쪼갠 삼각형들의 각 꼭짓점은 서로 다른 월세의 조합을 나타낸다. 또한 모든 꼭짓점에서 월세의 총합은 50만 원으로 같으며 각 점에서의 분배는 56쪽 설명에 따른 삼각형의 성질을 이용해 결정한다.
▲ PDF에서 고화질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꼭짓점마다 월세가 어떻게 나뉘는지 알았다면 이제 삼각형의 각 꼭짓점에 사람을 채워 넣는다. 방을 선택할 기회는 따로 줄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모든 삼각형의 세 꼭짓점에 서로 다른 사람이 온다는 규칙만 지키며 무작위로 배치한다. 임의로 배치한 한 예시는 오른쪽과 같다.
이제 맨 위의 꼭짓점에 배치된 사람부터 차례대로 해당 점에서의 월세 분배를 알려주고 어느 방을 고를 것인지 물어본다. 단, 방을 고를 때 세입자는 원하는 방을 자유롭게 고르되, 월세가 아예 0원인 방이 있을 때만 고민하지 않고 0원인 방을 고른다고 가정한다. 고른 방은 각 방의 색깔에 맞게 색칠한다(57쪽 참고).
예를 들어 삼각형 맨 위 A인 슬기는 (0, 0, 50)인 조건에서 방을 먼저 선택한다. 1번 방과 2번 방이 둘 다 0원이므로 아무 방이나 고른다. 그 다음 B인 웬디는 (0, 10, 40)인 조건에서 방을 고른다. 0원인 방이 있으므로 1번 방을 고른다. (10, 20, 20)인 상황에서는 0원인 방이 없으므로 아무 방이나 선택한다. 이와 같은 원리로 계속 물으면서 마지막 꼭짓점까지 방을 선택한다.
모든 방을 선택하게 하고 그에 맞게 색칠했다면 슈페르너의 정리에 의해 꼭짓점 색깔이 모두 다른 삼각형이 반드시 하나 이상 생긴다. 다른 색깔은 다른 방을 의미하므로 서로 다른 방을 고른 삼각형은 겹치지 않은 방 분배가 이뤄진 경우다.
▲ PDF에서 고화질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 예시처럼 쪼갠 삼각형의 개수가 적을 때에는 각자 낼 월세 차이가 크므로 합의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삼각형을 잘게 쪼갤수록 차이는 미미해지고, 이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 3명이 제시한 월세가 완전히 같아지는 지점이 나온다. 이 지점이 완벽히 ‘공평한’ 분배 지점이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1만 원 정도의 차이까지만 가도 무시할만한 수준이라고 본 수는 더 쪼개지 않고 이 순간의 차액을 모아 중개수수료 등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복잡하다면 방 분배 계산기로★
지금이라도 당장 레드벨벳에게 달려가 이 방법을 소개해주고 싶지만 언뜻 복잡하게 보여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럴 땐 인터넷에 공개된 방 분배 계산기를 활용하면 된다.
수는 자신의 제자인 엘리샤 피터슨과 함께 공정 분배 계산기를 만들어 사람 수, 월세 등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월세를 알 수 있도록 했다. 사용자가 할 일은 계산된 월세 분배를 보고 어느 방에 갈지 단계별로 클릭해나가는 것뿐이다. 모든 참여자가 선택한 조건이 무시할만한 차이라고 생각되면 결과를 출력한다.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면 계속 다시 하면 된다.
방 외에도 얼마든지 대상을 바꾸고 월세 대신 혜택을 바꿔 다양한 것들을 나눌 수 있으니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순간에 수의 지혜를 빌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