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에게 왜 수나 도형에 관해 연구하세요?’라고 물으면 99%는 ‘궁금하니까요’, ‘호기심이 생겨서요’라고 답해요.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은 문제 푸는 것 자체가 재밌고 딱 맞아떨어지는 답이 나왔을 때 신기하다고 말하는데요, 이런 수학의 재미를 많은 학생이 느낄 수 있도록 수업하고 평가하는 수학 선생님이 있다고 해서 수학동아가 찾아갔습니다.
“cos60°에 대해 설명해볼래?”
“밑변이 1이고, 빗변이 2인 직각삼각형을 그려요.”
창덕여자중학교를 찾은 10월 10일, 3학년 학생들이 2학기 수행평가에 반영되는 구술평가를 보고 있었습니다.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구술평가를 대비하고, 복도에서는 김유정 선생님과 시험을 보는 학생이 1대 1로 마주 앉아 평가를 치렀죠.
혹여나 시험을 치는 학생에게 방해될까 멀리서 구술평가 내용을 듣고 있는데, 구술평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편안한 분위기에서 학생과 선생님이 10분가량 대화를 나눴어요. 김 선생님은 계속해서 ‘왜 이게 참이야?’, ‘왜 그렇게 돼?’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수업도 평가도 원리에 집중!
“구술평가는 자기가 한 말에 대해서 계속해서 근거를 대는 거예요. 문제는 매우 간단한데요, 학생이 답하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제가 꼬리에 꼬리는 무는 질문을 하죠. 이런 구술평가를 도입하게 된 건 수업에서는 원리를 강조하는데, 지필고사에서는 여러 개념이 섞인 새로운 유형의 문제를 내니까 학생들이 괴리감을 느끼더라고요. 평가에서도 원리를 강조하자는 생각에 이런 방식을 시도했죠.”
신기하게도 창덕여중 구술평가는 문제를 사전에 모두 공개해요. 대화 중에 어떤 내용을 말해야 하는지, 어느 수준까지 말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지 성취 기준도 미리 알려주죠. 평가 끝난 뒤에는 공개한 성취 기준에 맞게 채점해서 결과를 알립니다.
“구술평가를 하다 보면 해당 단원을 넘어서는 개념까지 이야기 나눌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지난 학기나 지난 학년에 배운 내용이죠. 하지만 평가에 반영되지는 않아요. 평가는 어디까지나 지금 배운 내용에 한정하지만, 학생들은 자기가 뭘 모르고 있는지 확실히 진단하는 계기가 돼요.”
3학년 유예원 학생은 “선생님이 저의 어떤 답에 ‘왜’라고 물고 늘어질지 모르니까 수업에서 배운 모든 내용에 관해 ‘왜’를 준비한다”고 설명했어요.
수학은 ‘왜’일까 질문하며 공부하는 학문!
구술평가에서 드러났듯이 김 선생님은 수학의 원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요. 수업 시간에서도 이는 고스란히 나타나죠.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고, 발견하는 재미를 수업에서 느낄 수 있도록 김 선생님은 교과서 순서대로 가르치지 않아요. 예를 들어 근의 공식은 교과서에 유도 과정이 먼저 나오고, 공식이 나오지만, 김 선생님은 다짜고짜 공식을 알려주고 문제를 풀게 해요.
“공식을 모르는 상태에서 유도 과정을 먼저 설명하면 학생들은 그 내용이 무척 어렵고 재미없다고 여기더라고요. 그런데 공식을 알려준 뒤 수를 넣으면 일단 답이 맞잖아요. 그럼 학생들에게 질문해요. ‘왜 이 공식에 대입하면 답이 나올까?’, ‘그 이유가 뭘까?’ 이런 과정을 통해서 공식을 유도하면 학생들이 조금 더 수학을 흥미롭게 느껴요.”
수업에서 시작된 ‘왜’는 또 다른 수행평가인 나만의 수학 공책(일명 나공)으로 이어져요. 창덕여중 학생들은 수학 수업이 끝나면 모두 나공을 작성해요.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교과서의 말이 아닌 내 말로 다시 적으며 정리하는 거예요. 심지어 문제까지도 수를 바꿔 새롭게 내야 하죠.
“교과서 문제에서 수를 바꾸는 셀프 퀴즈를 내다보면 궁금한 게 많이 생겨요. 예를 들어 수를 바꾸면 인수분해가 안 되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학생들은 인수분해를 하기 위해 인수분해 가능한 수를 찾아요. 그 과정에서 어떨 때 인수분해가 안 되는지 궁금증이 생기죠. 이 질문은 근의 공식과도 연결돼요. ‘인수분해가 안 될 때 쓰는 게 근의 공식이네’라고 말이죠.”
수행평가 덕분에 모두가 공부하는 분위기!
창덕여중의 수행평가 비중은 매우 커요. 중간고사는 100%, 기말고사도 70% 이상 수행평가를 반영해요. 수행평가는 구술평가와 나공, 단원이 끝나면 치러지는 형성평가로 이뤄져요. 지필고사에서는 답이 틀리면 점수를 못 얻지만, 형성평가에서는 답이 틀려도 풀이 과정이 맞으면 만점을 받을 수 있고, 재시험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딱 한 번 시험을 다시 치를 수도 있어요.
이렇게 평가하는 이유는 평가의 목적이 줄 세우기가 아니라 학생들이 지식을 얼마나 습득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기 때문이에요. 그 취지를 십분 살린 결과 창덕여중 교실에선 아무것도 안 하거나 딴짓을 하는 학생은 없어요. 학생들도 서로 경쟁하기보다 함께 지식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죠. 그래서 수행평가 비중이 커도 불만이 없다고 해요.
3학년 박채정 학생은 “다른 학교는 지필고사 비중이 커서 수학 실력이 출중한데도 실수로 점수를 많이 얻지 못하는 학생이 있지만, 우리 학교는 형성평가와 구술평가로 노력을 모두 보상받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어요.
사실 창덕여중은 서울시 교육청이 지정한 미래학교예요. 미래에 학교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연구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학교죠. 열정 넘치는 선생님들이 모여 오로지 학생을 위한 교육과정과 평가 방법, 교육환경 및 문화를 연구하고 있어요. 김 선생님 역시 학생들이 수학뿐 아니라 어떤 상황에 마주하더라도 원인을 궁금해하고 탐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학생을 가르치고 있고요. 수학을 잘하고 싶다면 김 선생님의 말처럼 계속해서 ‘왜’라고 질문해 보세요! 어느 날 갑자기 수학이 재밌어질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