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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보드게임 제작기

같이 보드게임 만들래?

“같이 보드게임 만↗들↘래↗?” 짝꿍이 농담처럼 던진 한마디에, 겁 없이 “그래!”라고 
답해 버렸어요. 지금까지 보드게임을 할 줄만 알았지, 직접 만드는 건 태어나 처음이었어요. 
하지만 평소 ‘수학’을 좋아한 덕분에 성공적으로 도전을 마칠 수 있었답니다.


 

1단계. 보드게임 즐기며 형식 찾기 #규칙_찾기

각자 경험한 여러 종류의 보드게임 중에서 가장 재밌었던 것 딱 세 가지만 떠올려 보세요. 예를 들어 부루마블, 젠가, 루미큐브가 떠올랐다면, 이 중에서 새로운 보드게임을 만들만한 놀잇감을 골라보세요. 


맨 처음 떠올린 ‘부루마블’부터 생각해볼까요? 사실 제가 만든 보드게임의 초기 작품은 부루마블 형식을 많이 따랐어요. 여기서 부루마블 형식이란 ‘주사위를 굴리고, 나온 눈의 수만큼 말을 움직여 도착한 곳에서 정해진 액션을 하는 것’을 말해요. 새로운 보드게임을 만들 때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게임 형식 중에 하나죠.


평소 즐기는 보드게임 구성물에 당연하다는 듯 ‘주사위’와 ‘카드’가 포함돼 있다면 어쩌면 모두 ‘부루마블’ 때문일지도 몰라요. 보드게임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빈 종이를 꺼내 들고 숫자 카드부터 만들어보세요.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 아니겠어요? 

 

 

2단계. 카드와 주사위 숫자 정하기 #확률과_경우의_수

 

호기롭게 A4용지를 잘라서 원하는 만큼 숫자 카드를 만들었다면,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에요. 너무 어렵게 생각 말고 단순하고 과감하게 시작해 보세요.


예를 들어 각자 좋아하는 숫자를 떠올리면서 카드에 적는 거예요. 소수를 좋아하는 친구라면, 2, 3, 5, 7 등을 활용해서 카드를 만들어보고, 홀수를 좋아하는 친구라면 1, 3, 5, 7, 완전수를 좋아하는 친구라면 6, 28, 496, 8128을 활용해도 좋아요. 


저도 초기 작품을 만들 때 비슷한 방법을 활용했어요. 소수이자 행운의 숫자인 ‘7’을 선택해서 생각을 확장하고 정리했거든요. 물론 당시 만들었던 숫자 카드는 제품에 그대로 반영되진 않았지만, 최종 결과물은 모두 이 카드에서부터 출발해서 발전했어요.


초기 숫자 카드 9장에 적힌 숫자를 보면, 각각 수의 합이 ‘7’이 돼요. 세 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는 순서쌍 (0, 1, 6), (0, 2, 5), (0, 3, 4), (1, 2, 4), (1, 3, 3), (2, 2, 3)을 이용해 숫자 카드를 만들었어요. 같은 숫자를 구분하기 위해 빨강, 노랑, 파랑 3가지 색으로 숫자를 나타냈죠. 그리고 3가지 색에 해당하는 숫자 9개를 더했을 때, 그 전체 합이 비슷한 지도 확인했어요. 그래야 숫자 카드 전체의 균형을 맞출 수 있으니까요.


제가 만든 보드게임인 ‘플라스틱 플래닛’의 소재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다루는 거여서, 나중에 3가지 색은 서로 다른 플라스틱 쓰레기, 즉 플라스틱 빨대, 페트병, 비닐로 바뀌었어요.  


숫자 카드의 숫자를 모두 정했다면, 다음은 주사위 숫자 정하기! 보통 정육면체 주사위를 많이 쓰지만, 정사면체, 정십이면체 등 주사위의 종류는 생각보다 많아요. 일단 주사위의 모양을 결정하고, 다음엔 모든 면을 채울 숫자 또는 그림을 생각해보세요.

 


제가 이 과정에서 가장 의지했던 건 다름 아닌 수학 이론 중 하나인 ‘확률’이었어요. 왜냐하면 ‘플레이어가 이길 확률’과 ‘질 확률’을 계산해 보는 것은 물론, 각 카드에 사용한 숫자와 주사위 눈의 조합으로 나올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해 봐야 하니까요. 물론 직접 손으로 계산하기보다는, 엑셀과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식을 세우면 더 쉽게 답을 구할 수 있어요.

 

 

3단계. 보드게임 성공방정식 따르기 #비례


이론적으로 확률 계산이 완벽한 게임이라도, 재미가 없다면 지금까지 한 고생은 모두 소용없어요. 따라서 마지막으로 ‘경쟁 구도’, ‘운으로 결정되는 요소’, ‘게임 몰입도’, ‘스릴 요소’과 같은 또 다른 주요 요소를 검토해야 해요. 이것은 마치 4개의 미지수로 세운 방정식을 푸는 것과 비슷해요.

 

 


‘플라스틱 플래닛’의 초기 작품은 거의 100% ‘운’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게임이었어요. 만들 당시에는 게임에 푹 빠져있어 이런 맹점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었는데, 막상 들여다보니 만약 플레이어가 손에 쥔 카드 운이 없거나, 그날따라 주사위가 잘 나오지 않는다면 어떤 노력을 해서도 이길 수 없는 그런 게임이었어요. 


그래서 운의 비율을 40% 정도로 조절하고, 다른 장치도 추가로 만들어 넣었어요. 플레이어를 압박하는 악당 캐릭터를 만들고, 어떤 운명도 뒤집을 수 있는 ‘만능 카드’도 만들었죠. 이렇게 카드와 주사위 외의 다른 요소들을 정리하니, 점점 게임의 균형이 맞춰졌어요. 게임 한 판을 즐기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적으로 비슷해졌고, 각각의 플레이어가 이기고 질 확률이 50대 50에 가까워지더라고요. 


세상에 없던 게임을 세상 밖으로 꺼내는 이 일에는 반드시 창작의 고통이 따라요. 그래도 ‘수학’에 의지하면서 보드게임 설계 과정을 즐겨보세요. 물론 보드게임 만들 때 ‘수학 역량’만 필요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수학을 잘 하는 친구라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보드게임 플라스틱 플래닛도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결과물이랍니다. 

 

 

※필자소개.

염지현 대표는 2010년 5월부터 ‘수학동아’와 함께했다.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수학동아’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한결같이 유지하며 ‘세상 속 재미난 수학 이야기’를 글로 전하며 살았다. 그러다 2018년 겨울, 돌연 새로운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기회 닿는 곳마다 글을 쓰며, ‘수학 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지만, 수학 전문기자 경력을 뒤로한 채, 전직 기자, 수학전문 에디터, 작가, 보드게임 개발자, 스타트업 OhY LAB.의 공동대표이자 직원, 두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다.

 

참고자료

로제 카이와 ‘놀이와 인간(로제 카이와)’, 김건희 ‘나는 보드게임 작가다’, 휴 버크파트 ‘Design a Board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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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수학동아 정보

  • 염지현(OhY LAB. 공동대표)
  • 사진

    OhY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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