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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이 볼 수 없다면 수학이 본다! 심판 판정 돕는 기술

이승재의 매스 일레븐 ➍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 이런 말을 많이 들어보셨죠? 사람의 눈으로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항상 옳은 판정만 내린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이런 심판의 고충을 돕기 위해 수학을 토대로 만든 기술을 축구 경기 판정에 쓰고 있습니다.

 

 

어떤 스포츠 종목이건 사람의 판정이 결과에 영향을 끼치면 오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나쁜 의도를 갖고 오심을 내리는 안 좋은 경우도 있지만, 심판도 사람인 이상 실수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육상과 수영처럼 기록이 중요한 경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첨단 장비로 심판을 대신해 판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100분의 1초 차이로도 1등과 2등이 갈리는 육상 경기를 사람의 눈으로 정확히 판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까요.

 

구기 종목에선 서브 속도가 순간 시속 200km를 넘어가는 테니스에서 ‘호크아이’라는 라인 판독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으며, 야구와 배구 역시 애매한 순간을 정확히 판단하고자 심판의 판정을 보조하는 비디오 판독 기술을 사용합니다.

 

축구 역시 오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종목 입니다. 걸리지도 않았는데 넘어지는 할리우드 액션, 매 경기마다 한두 번쯤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오프사이드 논란 등이 끊이질 않지요. 90분 동안 하프타임을 제외하면 쉬지 않고 진행하는 경기의 특성상 매 순간 일어나는 모든 일을 파악하는 건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계는 최근까지 심판의 판정을 돕는 첨단기술의 도입을 회의적으로 바라봤습니다. 공수 전환이 확실하거나 매 세트 구분이 확실한 종목은 그 시간에 비디오 판독을 하면되는데, 축구는 심판이 휘슬을 불지 않는 이상 경기를 멈추지 않기 때문에 그럴 시간이 없는 거지요. 그렇다고 경기 도중에 애매하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경기를 멈추고 비디오 판독을 하기는 힘듭니다. 만에 하나 반칙이 아니었을 경우 판정 전으로 돌려 경기를 다시 시작하는 건 불가능 하니까요.

 

 

마침내 판정에 첨단기술 도입


이렇게 판정 보조기술 도입에 부정적이었던 축구계가 최근 ‘골라인 테크놀로지’와 ‘비디오 보조 심판 VAR’이라는 첨단기술을 적극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변화의 원인은 중계 기술의 발달 때문입니다. 축구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중계 기술 역시 나날이 발전해왔는데요, 이러다 보니 심판이 미처 잡아내지 못하는 수많은 장면을 TV를 통해 지켜보던 시청자가 잡아낼 수 있었고, 이는 자연히 오심 논란을 만들어 냈습니다.

 

 

심판과 축구협회 역시 예전부터 인간 심판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후 징계 같은 방법을 사용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시청자를 만족시키긴 힘들었지요. 특히 사후 징계로는 이미 오심으로 결정돼 버린 경기의 결과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는 큰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2012년 골라인 테크놀로지라는 기술이 처음 시범 도입됩니다. 이름 그대로 골대 사이의 선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며 공이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기술입니다. 축구 규칙상 골로 인정받기 위해선 공의 모든 부분이 골라인을 넘어서야 합니다. 골대 앞에서 공이 왔다 갔다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공이 애매하게 골라인에 걸치는 경우 이 공이 정말 선을 넘었는지 심판의 눈으로 확인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골라인 테크놀로지는 축구공과 골라인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 주심의 시계로 판정 결과를 바로 전달합니다. 바꿔 말하면 주심의 나시계에 골이라는 메시지가 뜨기 전까진 어떤 경우에도 골이 아니라는 얘기겠죠?

 

 

공의 위치는 삼각측량법으로!


이 놀라운 기술이 실제 축구에서 제대로 활용되기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혼전 상황에서도 골라인과 공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 이 판독 결과를 실시간으로 주심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수학’입니다. 먼저 공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초당 500프레임 이상의 촬영이 가능한 고성능 카메라로 실시간으로 공을 찍어 컴퓨터로 전송합니다. 카메라 여러 대가 각자의 위치에서 촬영한 공의 궤적을 갖고 컴퓨터는 공의 위치를 추적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방법이 ‘삼각측량법’입니다. 각 지점에 고정돼 있는 카메라와 공의 거리 변화를 측정해 공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잡아내는 거죠.

 

이게 다가 아닙니다. 단순히 공의 위치만 판단하는 게 아니라 이를 3차원으로 재구성해 3차원 궤적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고속 촬영 영상을 재수학동아구성하는 영상처리 기법에는 미적분을 기초로 만든 방정식이 필수지요. 마지막으로 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골인지 아닌지 심판에게 전달하기 위해선, 그만큼 빠르고 정확한 데이터 처리 알고리듬이 필요하겠죠?

 

 

수학이 만든 짜릿한 역전승


이런 골라인 테크놀로지 기술은 2년간의 시범 운영을 거쳐,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전 세계 시청자에게 선보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조별 예선 E조 프랑스와 온두라스의 경기에서 제대로 존재 가치를 증명했습니다. 자칫 판정이 애매할 수도 있던 상황에서 주심은 자신의 시계로 들어온 정보를 통해 프랑스의 두 번째 득점을 인정했지요.

 

골라인 테크놀로지 기술이 만든 한 편의 짜릿한 역전 드라마도 있습니다. 바로 영국 프리미어리그 16-17시즌에 벌어진 ACF 본머스와 리버풀 FC의 12월 4일 경기입니다. 이날 리버풀 FC는 초반부터 AFC 본머스를 압도하고 있었고, 후반 중반까지 3-1이라는 유리한 점수로 경기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골라인 테크놀로지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는 장면이 73분경 일어났지요.

 

AFC 본머스의 골키퍼 아르투르 보루츠 선수가 리버풀 FC의 코너킥을 잡은 채 골문 안으로 너무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누가 봐도 골이라고 생각할 만한 상황에서 골라인 테크놀로지는 약 1mm의 차이로 이게 골이 아니라는 정확한 판독을 내립니다. 1-3으로 지고 있던 AFC 본머스는 1-4가 될 위기를 넘겼지요.

 

놀랍게도 이 판정 이후 분전하기 시작한 AFC 본머스는 리버풀 FC를 따라잡기 시작하며, 결국 93분에 4번째 골을 넣어 극적인 4-3 역전승을 거둡니다. 어쩌면 AFC 본머스의 소중한 1점을 막고 나아가 승리의 불씨를 살려준 건 바로 수학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90분 동안 쉬지 않고 경기를 뛰는 선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공정한 판정을 내리려는 심판과 기술자의 노력일 텐데요. 이를 위해 사용되는 놀라운 첨단기술과 그 속에 숨어있는 수학을 기억한다면, 이런 재밌는 순간을 조금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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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호 수학동아 정보

  • 이승재(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수학과 박사과정생)
  • 진행

    조가현 기자(gahy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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