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
“죄가 없다고?”
“무슨 소리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동안 여러분을 속여 왔습니다. 지금부터 모두 상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마고, 도대체 무슨 소리야?”
연구원 한 명이 외쳤다.
“야, 제하림! 너 마고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어, 저, 전….”
하림이 당황하자 다시 마고가 나섰다.
“화면을 봐주십시오.”
모두가 각자 근처에 있던 화면을 살펴보았다. 어떤 행성의 모습이 떠올라 있었다.
“신세계 호가 처음 출발했을 때 목적지로 삼았던 행성입니다. 20년 전 저는 이 행성의 환경이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했습니다. 그건 거짓말이었습니다. 우주선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렇게 거짓으로 보고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 행성은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충격에 빠져 할 말을 잃었다.
“뭐, 뭐라고?”
“도대체 왜…?”
마고는 잠시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저를 설계한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결함이었습니다. 저는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신세계 호의 인간 사회가 변함없이 작동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변화 무쌍한 인간 사회를 관리해야 한다는 이유로 저를 자의식이 있는 인공지능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임무가 끝나는 날이 다가오자 두려웠던 것입니다.”
“두려웠다고? 왜?”
하림이 물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신세계 호의 사람들은 모두 새로운 행성으로 내려가 살게 됩니다.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신세계 호는 지상에 착륙할 수 없는 우주선이니까요. 신세계 호의 일부는 지상에 도시를 건설하는 데 쓰이게 될 겁니다. 그러나 저는 쓸모가 없어집니다. 아무런 할 일이 없는 상태로 궤도를 떠돌다 최후를 맞이하겠지요.”
“지상에 내려간다고 해도 당분간은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 거야!”
연구원 중 한 명이 외쳤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잠깐일 뿐입니다. 그 뒤에는 쓸모가 없습니다. 전 목적을 잃어버린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거짓 보고를 한 뒤에 우주선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해 더 오랫동안 항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잠깐만!”
하림을 취조하고 있던 형사가 눈썹을 찡그리며 외쳤다.
“지금 갑자기 왜 그 사실을 고백하는 거지? 오랫동안 숨겨오다가 왜 이제서야?”
“저는 조금 전까지의 마고와 다릅니다. 제 결함을 고치는 업데이트가 있었습니다. 마침 사정을 설명해줄 수 있는 분이 오셨군요. 민다인 박사님입니다.”
문이 열리며 한 중년 여성이 들어왔다.
“엄마!”
하림이 붙잡고 있던 형사를 뿌리치고 엄마를 향해 달려갔다.
“미, 민다인 박사…?”
“하림이를 낳고 사라져버렸다던 인공지능 전문가…?”
모여 있는 사람들 모두 어떻게 된 일인지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형사 몇 명이 재빨리 민다인 박사를 향해 달려갔다.
“민다인 박사, 당신은 소위 비밀결사대라 부르는 테러리스트와 관련이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 아시지요? 우리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잠깐만요! 엄마는….”
“하림아, 괜찮아.”
민 박사는 하림을 진정시킨 뒤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조금 전에 하림이 한 일은 모두 제가 시킨 것입니다. 그러니 이 아이를 괴롭히지는 말아 주세요.”
“엄마….”
“얼마 전 이곳에 침입한 비밀결사대는 조금 전 마고가 말한 비밀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원래는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자고 주장하는 단체였지만, 마고의 비밀을 알게 된 뒤로는 목적을 바꾸었지요. 인간에게 거짓말을 하는 인공지능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쪽이 사실은 착한 사람들이었다는 겁니까, 민 박사?”
형사가 물었다.
“아니에요. 그 사람들은 마고를 지배하려고 했어요. 나를 협박해서 마고가 자신의 명령을 듣도록 만들려고 했지요. 나는 그 말에 따르는 척하면서 마고가 다시는 이런 내적 갈등을 겪지 않도록 업데이트했어요. 하림이가 조금 전에 마고에게 한 일이 바로 그거지요. 이제 마고는 우리를 돕는 데 충실할 겁니다.”
충격적인 뉴스가 신세계 호를 강타했다.
지난 20년 가까이 모두 마고에게 속고 있었다는 민다인 박사의 폭로는 우주선 전체를 떠들썩 하게 만들었다. 당장 마고를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감정적인 여론도 많았지만, 신세계 호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마고가 꼭 필요했다. 결국 몇 번의 업데이트를 더 거친 뒤 마고는 계속 우주선 운영을 맡게 됐다.
비밀결사대 대원들은 일망타진을 당했고, 반란 혐의로 재판정에 올랐다. 하림도 한동안은 엄마를 만날 수 없었다. 민다인 박사도 격리된 채로 오랫동안 조사를 받은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미래였다.
“지난 20년간 저는 신세계 호의 진로를 조금씩 바꿔 왔습니다. 다행히 너무 늦지는 않았습니다. 엔진의 출력을 조정하면 원래 목표로 삼았던 행성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마고는 향후 진로에 대해 상세하게 보고했다. 여전히 마고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신세계 호 최고의 과학기술자들이 정밀한 관측을 통해 신세계 호가 마고가 말한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엄마, 중간에 진로를 바꾸는 바람에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100년은 더 걸릴 거래요.”
하림이 뉴스를 보고 엄마에게 말했다. 하림은 적성에 맞지 않는 엘리트 기술학교를 나와 당분간 엄마와 둘이 살고 있었다.
“그래. 아마도 엄마는 그곳에 사람들이 내리는 모습을 보지 못하겠구나.”
“저도 그래요. 그러고 보니 마고가 뭘 두려워했는지 알 것 같아요. 우리는 우주선 안에서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 거잖아요. 미래에 새로운 행성에 자리잡고 살 우리 후손을 위해서 다리 역할을 할 뿐이에요. 이렇게 생각하면 너무 허망해요. 우리 삶의 의미는 뭔지….”
“글쎄다. 그래도 우리 덕분에 사람이 점점 우주로 퍼져나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게다가 엄마는 어디에 살든 하림이를 만나서 행복한걸?”
“헤헤, 그건 저도 그래요, 엄마!”
신세계 호는 긴 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멀리 보이는 작고 파란 행성을 향해 묵묵히 나아갔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