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0년전 인 1917년 12월 1일, 전라북도 고창 흥덕에서 역사가 될 소리꾼이 태어납니다. 김소희 명창입니다. 판소리뿐 아니라 무용과 서예 등 전통예술이라면 분야를 가리지않고 뛰어났던 김소희 명창은 1972년에는 한국 국악 최초로 미국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합니다.
판소리는 우리나라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 내려온 전통음악으로, 언제 어떻게 시작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판소리는 긴 이야기를 노래로 부르는 양식이라 판소리를 구성하는 대본이 있어야 하고, 이를 노래로 부르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요. 북을치는 ‘고수’의 장단에 맞춰 부르는 ‘소리’는 노래를 부르는 창과 말로 이야기하는 아니리가 번갈아 나옵니다. 이야기 대본인 사설은 이 형식에 맞춰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은 노래를 잘할 뿐 아니라 연기력도 뛰어나야 합니다. 전통예술 다방면에 뛰어났던 김소희 명창이 타고난 소리꾼이 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판소리 명창이 되려면 저음과 고음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기교를 잘 구사해야 합니다. 또 춘향가와 심청가처럼 슬픈 곡을 부르기 위해 목소리에는 애절함이 묻어나야 합니다. 김소희 명창은 15세에 남원 춘향제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탔는데, 어린 나이에 한 맺힌 목소리로 능수능란하게 기교까지 부려 하늘이 내린 목소리를 가진 소리꾼으로 불렸습니다.
판소리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됐을 때, 김소희 명창이 첫 번째 인간문화재가 된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판소리 권위자인 최동현 군산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는 김소희 명창에 대해 “우리나라 여창 판소리의 역사이자, 그 높이와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가늠자”라고 평가했습니다.
득음하려면 폭포를 찾아가라?
영화나 드라마에서 소리꾼이 판소리 명창이 되기 위해 폭포수 밑에서 소리 내는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본 적 있나요?
그러나 실제로 소리꾼들은 폭포수 밑에서 연습하지 않습니다. 신영희 명창은 “산속이나 폭포처럼 습도가 높은 곳에서 연습하면 목이 쉽게 망가진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판소리 명창이 되려면 득음을 해야 하는데, 득음을 하면 그 소리가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를 뚫고 나가, 시끄러운 와중에도 목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득음을 시험해 보느라 폭포수 앞에서 소리를 질러보는 경우는 있다는 것이지요.
문승재 아주대학교 교수의 연구를 보면 폭포수 앞에서 득음을 시험하는 게 전혀 생뚱맞은 일은 아닙니다. 보통 사람 목소리와 판소리 소리꾼 목소리를 분석했는데, 확연한 차이가 있었거든요.
문 교수는 목소리 주파수와 강도의 상관관계에 주목했습니다. 주파수는 단위 시간 안에 몇 개의 주기나 파형이 반복되었는가를 나타내는 수입니다. 주파수의 단위는 Hz로, 1초당 1회 반복하면 1Hz입니다. 예를 들어 100Hz는 성대가 1초에 100번 진동한다는 뜻이지요.
폭포 앞 득음이 과학적인 진짜 이유
보통 사람의 목소리는 낮은 주파수 영역에서 큰 진폭을 나타내고,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진폭이 급격히 감소합니다. 그러나 소리꾼은 중간 높이에서 소리가 매우 커서 일반인과 큰 차이를 보였지요. 음향학적으로 봤을 때 판소리 수련의 핵심은 이 중간 높이 소리입니다.
이처럼 중간 음역 소리가 강한 것은 서양 성악가의 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악가의 목소리는 관현악의 반주를 뚫고 청중의 귀에 들리지요.
소리꾼과 성악가의 소리 모두 중간 높이 음역이 핵심이지만 차이는 있습니다. 서양의 성악은 공명을 이용하고, 판소리는 생목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은 평소 목소리가 곧 판소리를 할 때 목소리인 반면 성악가는 평소 목소리와 노래할 때 목소리가 다릅니다.
그렇다면 이 중간 음역과 폭포 소리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폭포 소리는 고음과 저음이 거의 비슷한 크기입니다. 따라서 훈련이 잘 된 소리꾼이라면 중간 음역에서도 큰 강도를 나타내 폭포 소리를 뚫을 수 있는 것이지요. 비록 소리꾼이 폭포수 밑에서 연습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지만, 득음을 판단하는 수단으로 폭포를 이용하는 데는 나름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셈이지요.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김소희 명창의 위대함이 드러납니다. 생전에 김소희 명창이 스승에게 득음을 위해 산속에서 수련하는 득공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묻자, 스승은 하늘이 준 목이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득공 없이도 인간문화재가 된 타고난 소리꾼 김소희 명창의 춘향전을 들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