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파일 1] 도미노 슈가 대 도미노 피자
도미노 피자와 도미노 슈가, 도미노라는 말이 똑같이 들어가 같은 회사 식품이라고 오해하기 쉽지요? 도미노 피자가 출시되자 오랜 전통을 자랑하던 도미노 슈가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상표권 침해 소송을 걸었습니다. 도미노 슈가는 우리나라에선 정식 판매되지 않아 다소 낯설지만 도미노 피자보다 더 오래된 미국의 대표적인 설탕 상표입니다.
도미노 슈가의 상표를 가진 도미노 푸드는 1심 재판에서 도미노 피자가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근거로 미국 동부 10개 도시에 사는 주부 525명의 설문조사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도미노 슈가의 주 고객인 주부 중에 도미노 피자를 아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겁니다. 그 결과 응답자의 44%가 도미노 피자가 다른 제품도 만들고 있다고 여겼고, 그중 72%가 도미노 피자와 도미노 슈가를 같은 회사 식품으로 알았다고 응답했지요. 재판부는 이 결과를 받아들여 도미노 푸드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도미노 피자는 설문조사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으며 항소했습니다. 도미노 푸드는 낮 시간에 주부를 일일이 만나 조사했기 때문에 직장 여성은 조사에서 빠져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도미노 피자의 주 고객은 35세 이하 젊은 남성이기 때문에 도미노 슈가의 구매층과 겹치지 않아 이 결과로는 상표권 침해를 알 수 없다고 주장했지요. 항소심 재판부는 도미노 피자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며 1심 재판 결과를 뒤집었습니다. 정말 상표권 침해는 없었던 걸까요?
[사건파일 2] 두 아들의 죽음, 살인일까?
돌도 되지 않은 건강한 아기가 아무런 상처 없이 갑자기 사망한 것을 ‘영아 돌연사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형제가 이렇게 사망했다면 어떨까요? 당연히 살인을 의심하겠죠?
영국 여성 샐리 클락도 의심을 받았습니다. 클락의 첫째인 크리스토퍼는 생후 11주에 세상을 떠났고, 2년 뒤 둘째인 해리도 생후 8주 만에 갑자기 죽었습니다. 두 아들의 사망 시각에 집에 혼자 있었던 클락이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지요.
클락이 두 아들을 죽였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었기 때문에 검사측은 소아과 전문의 로이 메도우의 의견을 통계적 증거★로 내세웠습니다. 메도우는 건강한 한 아이가 갑자기 돌연사할 확률이 8542분의 1이니, 두 아이가 연이어 죽을 확률은 이 값을 제곱한 7300만 분의 1로 매우 낮은 수치라고 주장했지요.
통계적 증거★
과학적 증거의 한 종류로, 통계를 토대로 한 전문가의 의견이다.
메도우의 증언에 배심원들의 마음은 유죄로 기울었습니다. 결과는 10 대 2로 유죄였고, 클락은 종신형을 언도받았습니다. 항소심 재판에서도 판결이 뒤집어지지 않아 수감생활을 이어갔지요.
그런데 2차 항소심 재판에서 결과를 뒤집을 엄청난 증거가 나왔습니다. 둘째 아들 해리를 부검한 의사가 자연사라는 증거를 알고도 묵인한 사실이 밝혀진 겁니다. 해리의 몸에 세균 감염 징후가 있었는데, 경찰과 변호인에게 알리지 않았지요. 때마침 영국 통계학회와 영국 수학자 레이 힐이 메도우의 확률 계산에 문제가 있다고 공개 성명을 내면서 여론이 바뀌었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클락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클락은 자유의 몸이 됐지만, 두 아이를 잃은 충격과 아들을 죽였다는 수많은 비난에 무죄 판결 4년 만에 알콜중독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간 메도우의 치명적인 통계 실수는 무엇이었을까요?
[사건파일 3] 특정 인상착의의 커플은 유일할까?
미국 로스앤젤레스 산페드로 지역에서 후아나타 브룩스라는 나이든 여성이 강도를 당했습니다. 브룩스는 65kg 정도 나가는 금발에 꽁지머리를 한 여성이 가해자라고 진술했지요. 목격자인 존바스는 짙은 색 옷을 입은 금발 여성이 노란 자동차를 타고 달아났다고 진술했습니다. 그 차의 운전자는 구레나룻이 콧수염까지 연결된 흑인 남성이라고 말했지요.
검찰은 브룩스와 바스의 증언을 토대로 용의자를 특정했습니다. 그 주인공은 맬컴 콜린스와 재닛 콜린스. 재닛의 직장이 사건 현장 근처였고, 사건 시간쯤 남편인 맬컴이 노란색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브룩스와 바스 모두 맬컴과 재닛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또 체포 당시 맬컴은 콧수염이 없었고, 사건 당일 재닛은 밝은 색 옷을 입었다고 고용주가 밝혔지요.
검찰은 콜린스 부부가 범인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자 주립대학의 수학 전임강사를 전문가 증인으로 내세웠습니다. 수학자는 목격자 증언을 토대로 6가지 특성을 가진 커플이 그 시각에 나타날 확률을 구했습니다.
최종 변론에서 검사는 수학자가 가정한 각각의 확률은 매우 보수적으로, 즉 최대한 큰 값으로 정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추정치는 1200만분의 1이 아니라 10억분의 1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콜린스 부부 이외의 사람이 범인일 수 없다는 거지요. 배심원들은 이 말에 혹해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결과에 불복한 콜린스 부부는 항소했고, 재판부는 수학자의 증언이 얼마나 타당한지 따졌습니다.
고심 끝에 재판부는 두 가지를 지적하며 1심 재판을 무효로 만들었습니다. 먼저 검찰이 수학자가 가정한 확률이 옳다는 어떤 증거도 제출하지 않은 점을 꼬집었지요. 왜 노란색 차를 소유한 사람이 1/10 일인지, 금발의 여성이 1/3인지 국가 통계자료라도 내밀며 가정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단 거지요. 또 검사는 목격자의 진술이 모두 옳고, 진범이 변장을 하지 않았다는 가정에서 계산했기 때문에 목격자의 기억이 왜곡됐거나 변장했다면 의미 없는 값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수학자 증언의 문제는 이게 다 일까요?
지금까지 통계를 모르면 피해를 보는 사건을 알아봤습니다. 사실 가습기 살균제처럼 기업의 제품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건, 증거가 불충분한 형사 사건에는 통계적 증거가 빠질 수 없습니다. 특정 물질의 유해성을 입증하는데, 통계만큼 좋은 도구가 없거든요. 하지만 통계의 잘못된 사용을 집어내지 못한다면 피해는 우리의 몫입니다. 앞으로 통계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지요? 저 도도한은 통계로 억울한 사람이 생기면 또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