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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美, 기하학 만나 추상미술로 피어나다

한글날 기념 인터뷰

대개 사과를 그리라고 하면 누가 봐도 사과인지 알 수 있게 그린다. 하지만 추상미술가에게 사과를 주문하면 도무지 사과라고 믿기지 않는 작품을 내놓는다. 평소 작가가 사과에 대해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을 작가 고유의 방법으로 나타내서 그렇다. 강은혜 작가에겐 그 방법이 한글을 선으로 추상화하는 것이다.

 

“저는 공간에서 얻은 영감을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해요. 그리고 수직선이나 수평선으로 공간을 분해해요. 이때 나눔과 비율을 적용해 공간의 움직임을 표현하지요. 그리고 테이프나 직물 조각을 이어붙인 패치워크, 면실 등을 이용해 공간에 선을 걸어 나타냅니다.”

 

 

한글 패턴에 숨어있는 독도


강 작가가 한글을 작품에 도입한 건 우연한 계기였다. 미국 메릴랜드 예술대학교에서 유학하던 시절 한 주제로 3가지 디자인 패턴을 만드는 과제를 수행했다. 평소 표현해보고 싶었던 ‘독도’를 주제로 정하면서 패턴 중 하나를 한글을 이용해 만들었다. ‘동쪽 끝 섬 독도’라는 글을 선으로 추상화한 것이다. 그때 교수와 친구들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한글을 문자가 아닌 오로지 추상미술의 도구로 받아들이고, 작품에 메시지가 숨어있다는 데 매우 재밌어 했다.

 

“운이 좋게도 이 작품으로 교내 상을 받았어요. 외국인들은 한글을 추상미술의 멋진 소재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이를 계기로 한글을 다시 보게 됐고, 모든 작업을 한글로 하기 시작했어요.”

 

 

강 작가는 미국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를 다니면서 평면에서 펼치던 작품 세계를 공간으로 확장했다. 하고 싶은 작업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돕는 학풍 덕분에 학교 안에 설치작업이 가능했고,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다. 학교 야외 수영장에 한글 패턴으로 만든 패치워크를 띄운 걸 시작으로, 계단이며 창문, 바닥에까지 작품을 설치하며, 한글 패턴 설치미술의 가능성을 엿봤다.

 

“한글 패턴 설치미술의 매력은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태양의 위치에 따라,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다른 모습을 띤다는 거예요. 한글이 픽셀처럼 깨져 보이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끊어져 보이기도 하는 등 시각적 유희를 즐길 수 있지요.”

 

 

잇는다, 긋는다, 공간에 건다!


강 작가에게 선은 매우 활동적이고, 공간을 가득 채우는 에너지다. 그래서 한글 작업을 하지 않을 때도 선이 항상 주인공이다. 점, 선, 면으로 나타나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구상하고, 텅 빈 공간에 그것을 구현한다. 교차하고 중첩하는 선을 통해 부피, 중력, 밀도와 움직임을 표현하고, 선이 만든 수많은 면이 가상의 차원을 나타낸다.

 

 작가 노트 

면은 ‘채움’이자 ‘비움’이다!

실을 설치하는 작업을 하면 한 손으로는 실을 팽팽하게 잡아당긴 채 수백수천 번 같은 공간을 오가야해요. 실수 없이 작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긴장하지만, 끊임없이 반복되는 행동을 통해 마음은 점차 평온해지죠. 제게는 이때가 수행과도 같은 명상의 시간입니다. 공간은 점점 채워지지만 마음과 정신은 반대로 비워지거든요.

 

이런 수행의 감정을 공간에서 평면으로 가져온 작품이 선을 반복적으로 그어 면이 되는 모습을 포착한 ‘Meditation(명상)’입니다. 선긋기로 채워진 면은 ‘채움’이자 동시에 ‘비움’을 의미하지요.

 

 

“한글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선을 이루고 있는 점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어요. 나무에 못을 박아 점을 나타내고 못 사이를 낚싯줄로 연결해 보니, 선이 시간적, 공간적 이동도 상징하더라고요. 여행을 하면서 거치는 장소를 점, 그 사이의 이동 경로를 선으로 표현할 수 있듯이, 제게 선은 정적인 점이나 면과는 다르게 움직임과 흐름을 표현하는 기호인 셈이에요. 최근에는 움직임을 조금 더 역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공간을 가로지르는 선 작업도 하고 있어요.”

 

벽이나 바닥에 설치한 한글 패턴은 가장자리에만 부착돼 다소 정적이다. 그래서 강 작가는 여기에 공간을 가로지는 선을 함께 놓아 역동성을 부여할 계획이다. 또 한글 패턴이 인테리어의 한 부분으로서 발전할 수 있도록 힘쓸 예정이다.

 

우리의 말과 얼이 깃든 한글에 예술적 영감을 더해 멋진 설치미술을 하고 있는 강 작가는 프랑스와 스페인, 미국 한국문화원 전시를 통해 한글의 멋과 우리나라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앞으로 한국 미술의 어떤 새로운 길을 개척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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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호 수학동아 정보

  • 조가현 기자(gahyun@donga.com)
  • 사진 및 도움

    강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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