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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소설 I 멋진 신세계] 신세계 수학경시대회

제8화

인희를 만난 뒤로 한동안 별다른 일 없이 시간이 흘렀다. 하림은 가능한 말썽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조용히 지냈다. 화학선생님을 보면 슬그머니 피했고, 인희도 일부러 본체만체했다. 학교 밖으로 나가면 마고가 따라붙을 게 걱정이 돼 교실과 기숙사만 왔다 갔다 하며 살았다. 처음에는 불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뒤부터는 점차 평온을 되찾았다.

할 일이 없어 심심해진 하림은 심지어 공부라는 것도 해 보았다!

삐릭~

“하림이 요즘 뭐해? 놀러도 안 나오고. 학생부 기록을 보니 요즘 수업 태도가 좋아졌다고 하네.”

마고의 메시지였다. 하림이 발끈해서 답장을 보냈다.

“뭐야? 내 학생부 기록까지 보고 있단 말이야? 이건 사생활 침해야!”

“네 보호자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을 뿐이야. 하여튼 마음을 잡았다니 다행이다.”

말은 다행이라고 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마고의 복잡한 전자회로속에 무슨 꿍꿍이가 담겨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마고는 정말 우주선을 세울 생각이 없는 걸까? 어디로 가려는 걸까? 정말 우리 아빠를 죽인걸까?’

“여러분!”

담임선생님의 목소리에 하림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자, 여러분이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뭐? 뭐지?’

반 아이들은 다같이 숨죽인 채로 담임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바로 신세계 호의 수학경시대회! 우리 학교가 참가하는 건 당연하고, 곧 공고가 뜰 테니 다들 준비 잘 하도록!”

“우와!”

“드디어 내 실력을 보일 때가 왔구나!”

순식간에 반 분위기가 떠들썩해졌다. 아이들은 환호했고, 어떤 아이는 격투기 경기에 나가는 것처럼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를 질렀다. 하림은 당황했다.

‘뭐, 뭐지? 이 녀석들, 미친 거 아냐? 시험을 본다는데 왜들 좋아하는거야?’

하림은 어이가 없어 얼른 시끄러운 교실을 빠져나왔다. 학교 본관 로비를 지나가는데, 그곳에도 대형 화면 앞에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화면에 수학경시대회 공고가 큼지막하게 떠 있었다.

‘에휴, 저게 뭐라고…. 우주선이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시험은 무슨 얼어죽을….’

수학경시대회는 하림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보기는 해야겠지만, 점수를 잘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엄마와 함께 이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학교는 죽은 듯이 조용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모두가 기숙사나 도서관에 처박혀서 수학 공부만 했다. 하림도 책상에 앉아 있기는 했지만, 머릿속으로는 엄마가 쓴 편지의 내용만 생각하고 있었다.

“제하림!”

어느 날 복도를 지나가는 데 누군가가 하림을 불렀다. 고개를 돌려 보니 화학선생님이었다.

하림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네, 네?”

화학선생님은 주위를 의식한 듯 또박또박 말했다.

“화학 수업과 관련해서 할 말이 있으니 내 방으로 오도록.”

“네, 네….”

하림은 얼떨결에 대답했다. 선생님이 학생과 상담하는 건 흔한 일이라 주변 아이들 누구도 관심 있게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뭐, 뭐지? 뭔가 시작된 건가?’

화학선생님은 하림을 방으로 데리고 갔다.

“앉아.”

“네.”

“상황은 대강 알고 있겠지?”

“네?”

“네가 할 일이 있다.”

“제, 제가요?”

“엄마와 만나고 싶지 않아?”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림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뭐, 뭘 해야 하는데요?”

“이번 수학경시대회에 입상해라.”

하림은 앉은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네? 그, 그건 불가능해요. 차라리 누굴 죽이라고 하는 게 더 쉽겠네요. 경시대회 입상 같은건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조용히 해라. 밖에서 듣는다.”

“으, 음. 어쨌든 그건 힘들어요.”

“가능해. 문제를 미리 알고 있다면.”

“마고가 도와준다면 모를까 문제를 빼돌리는 건…. 게다가 잡히기라도 하면 어쩌라구요.”

화학선생님은 하림을 향해 말했다.

“나가 봐. 곧 네 단말기로 경시대회 문제가 전송될 거야. 미리 풀어 놓도록 해. 만약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다면 엄마와 만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문제는 3일 뒤면 자동으로 삭제되니까 빨리 푸는 게 좋을 거야.”

하림이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화학선생님이 단호하게 손짓했다.

“이제 나가 봐. 알아서 잘 하리라고 믿는다.”

기숙사로 돌아와 단말기를 켜자 정말로 경시대회 문제가 도착해 있었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만 맞혀도 충분히 입상할 정도였다. 문제는…, 미리 본다고 한들 하림이 풀 수 있을 리 없다는 점이었다!

‘으~, 큰일났네. 하필 시켜도 이런 걸 시키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지만, 혼자서 푸는 수밖에 없었다.

‘어디 일단 보기나 하자….’

머리가 멍해졌다.

‘이게 뭔 소리냐….’

화학선생님 말대로라면 시간은 3일밖에 없었다. 그 안에 미리 문제를 풀어놓아야 했다. 그런데 첫 번째 문제부터 난관이었다.

‘자, 침착하자. 이건 수수께끼야. 1월 1일에서 3월 8일보다는 작다는 게 무슨 소리일까?’

하림은 전자펜을 집어들었다.

‘그러면 생일이 2월에 있다는 소리인가? 아니야. 1월 5일에서 4월 7일보다 크다고 했으니 5월 뒤에 있는 건가? 그럼 또 뒤의 힌트랑 안 맞잖아.’

하림이 고개를 저었다.

‘다시 생각해 보자. 1월 1일에서 3월 8일보다 작다고 했으니까 1월 1일이 뭔가 기준 같은 게 되는 걸까?’

그래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아니야. 이것도 아니잖아!’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풀어야 할 문제는 많았다.

‘첫 번째 문제부터 이러면 어떡하지….’

얼마 뒤….

정신을 차린 하림이 문득 단말기 화면을 보자 그곳에는 전자펜으로 아무렇게나 끼적인 낙서 뿐이었다. 문제 풀이는 시작도 못한 셈이었다.

“으아아! 이게 뭐야! 나보고 어쩌란 거야?!”

하림은 큰 소리로 외치며 벌떡 일어섰다.

쿵- 쿵-

옆방에서 조용히 하라며 벽을 주먹으로 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림은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에라이,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잠이나 자자.”

하림은 전자펜을 책상 위에 집어던지고는 침대로 뛰어들었다. 잠을 좀 자고 일어나서 맑은 정신으로 생각해 보려고 했지만, 잠이 쉽게 오지는 않았다. 하림은 이불 속으로 머리를 파묻으면서 뒹굴었다. 그러다가 결국 잠이 든 모양이었다.

어느새 아침이었다.

하림이 눈을 뜨자 창문으로 비쳐 들어오는 불빛이 보였다.

‘아, 벌써 아침인가….’

간밤에 고민하던 문제가 다시 떠올랐다.

‘아, 문제!’

그러자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싫었다. 하림은 그대로 가만히 누워 있었다.

‘이대로 죽어 버릴까….’

마법처럼 문제가 머릿속에서 풀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세상에 마법 같은 건 없었다.

그때였다.

하림의 눈에 천장이 들어왔다. 천장에는 격자 무늬가 있었는데, 그 무늬를 보자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데카르트라는 지구에 살던 옛날 수학자와 얽힌 이야기였다.

‘데카르트라는 사람이 이렇게 누워서 천장을 보다가 좌표평면을 생각해 냈다지? 그 사람도 뭐가 안 풀렸었나? 침대에 누워서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니….’

순간 하림이 벌떡 일어났다.

‘좌표?’

어쩌면 문제를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림은 다시 책상으로 가서 단말기를 켰다. 어젯밤에 보던 문제가 그대로 떠올랐다.

‘어쩌면 몇 월 며칠이 좌표를 말하는 걸지도 몰라. 1월 1일은 (1,1)이고, 3월 8일은 (3,8)인거지.’

아무렇게나 던져 버린 전자펜을 들고 단말기에 그림을 그렸다. x축과 y축을 그리고 거기에 날짜를 모조리 좌표로 바꿔서 점을 찍어 봤다.

‘이 다음엔 어떻게 하지?’

전자펜을 들고 까딱거리던 손이 무의식적으로 (1,1)에서 (3,8)까지 선을 그었다.

‘그래! 1월 1일에서 3월 8일이라고 했으니 (1,1)에서 (3,8)까지 선을 긋는 거야.’

자신감이 생긴 하림은 나머지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 보았다.

‘생일이니까 자연수여야겠지?’

그걸 만족하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

‘풀었다!’

하림은 학교를 다닌 이래 처음으로 문제 풀이의 즐거움을 느꼈다. 그러나 들뜬 마음은 금세 가라앉았다.

‘아냐. 아직 문제가 많이 남았어. 시간은 이제 이틀밖에 없다!’

마침내 경시대회 날이 다가왔다. 하림의 학교는 전교생이 참가했기 때문에 평소에 공부하던 교실에서 그대로 시험을 보았다. 숨소리도 내지 않고 집중하는 반 친구들 사이에 있으려니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다행히 화학선생님이 미리 빼돌려 준 문제가 그대로 많이 나왔다. 부정행위를 한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문제를 미리 풀어봤다고 해도 입상할 자신은 없었다. 만약 입상을 못하면….

하림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잡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문제에만 집중하다 보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다.

따르릉~

시간이 끝나자 답안이 자동으로 전송됐다. 하림은 어쩔 수 없이 전자펜을 놓았다.

‘이제는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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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8호 수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ko@donga.com
  • 일러스트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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