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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게이머가 풀어야 할 대난제 랜덤박스


크리스마스다. 게임 세계에 기념 ‘랜덤박스’가 쏟아진다. 랜덤박스란 어떤 아이템이 나올지 모르는 확률형 아이템을 말한다. 게임 속 복권이다. 랜덤박스는 사행성이 높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11월 14일 ‘확률형(뽑기형) 게임 아이템’ 자율규제를 위한 정책협의체가 열린 것도 그래서다. 운이 승패를 가릴 가능성이 높아진 게임, 현명하게 즐기는 방법은 뭘까. 가상의 상황을 통해 생각해 보자.


요즘 게임을 좀 해보았다면 누구나 아돌처럼 생각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살까, 말까? 만약 산다면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까?

랜덤박스에서 나오는 아이템이 0원짜리일지 100만원짜리일지는 모른다. 3000원짜리 샤프를 사면 예외없이 샤프를 얻는 것과는 다르다.

랜덤박스의 시스템이 위와 같다고 가정하고 수학동아 독자답게 뽑기의 가치를 추정해보자. 가장 쉬운 방법이 기댓값이다. 기댓값은 확률에 가격을 각각 곱한 뒤 이들을 모두 더한 수치다. 이것을 계산하면 랜덤박스를 열 때 얼마를 기대할 수 있는지 나온다.
아돌이 3000원을 내고 산 랜덤박스의 가치는 2650원이다. 이처럼 랜덤박스의 가격은 보통 기댓값보다 높다. 그래야 회사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가정한 표와 달리 요즘 온라인 게임은 아이템 가격을 알기 힘들다. 아이템을 랜덤박스 형태로만 팔기 때문이다. 이때는 성능으로 가치를 추정해야 한다. 게임사는 여기서도 좋은 아이템을 얻기 힘들게 만든다. 게이머 간 실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결국 게이머는 돈만 쓰고 공짜로도 얻을 수 있는 장비를 뽑을 가능성이 높다.

게임 랜덤박스는 대부분 ‘독립시행’이다. 독립시행이란 시행을 여러 번 할 때 앞뒤 시행 확률이 서로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을 말한다. 동전을 100번 던져 모두 앞면이 나와도 그 다음에 뒷면이 나올 확률은 그대로 12인 것과 같다. 따라서 청동 갑옷을 세 개 뽑은 아돌이 다음에 가브리엘의 갑옷을 뽑을 확률은 여전히 0.2%다. ‘다음엔 용사의 갑옷 정도는 나오겠지’라고 기대하는 건 잘못이다.
랜덤박스를 매우 많이 사면 어떨까. 1만 개를 사면 가브리엘의 갑옷이 20개 정도 나올 것이다. 이건 ‘큰 수의 법칙’ 때문이다. 어떤 실험을 매우 많이 반복하면 체감하는 확률이 수학 확률에 가까워진다는 이론이다. 실제로 아돌이 얻는 아이템의 비율이 정해진 확률과 비슷해지는 것이다. 가브리엘의 갑옷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여전히 손해다. 아돌이 쓰는 돈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랜덤박스를 1만 개 사면 그래프처럼 아이템의 평균값은 기댓값에 가까워진다. 아돌은 3000만 원을 쓰고 2650만 원을 얻는다. 350만 원을 잃은 거다. 결국, 기댓값이 뽑기 가격보다 낮으면 안 사는 게 좋다.

물론 게임을 하다보면 특정 아이템을 구해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철 갑옷을 강화하려면 세 종류의 보석이 필요한데 A와 B는 겨우 구했지만 C만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과거에는 게이머가 적정한 돈을 내고 C를 샀지만, 랜덤박스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이정엽 순천향대 한국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굉장히 많은 수의 뽑기를 해야만 자신이 원하는것이 나온다”며, “랜덤박스는 게이머가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늦춘다”고 말했다. 결국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돈을 많이 써야 하는 구조다.

아돌에게 게임 속 순위는 사회적 지위다. 이게 바로 게이머가 고급 아이템을 기대하는 심리다. 랭킹이 흔들리는 위기의 순간 확률이나 계산할 게이머는 많지 않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과 레너드 새비지가 이런 심리를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의 효용은 돈의 액수가 아니라 돈으로 얻는 지위에 따라 달라진다. 아돌의 행복감도 아이템 가격에 비례하지 않는다. ‘네임드’가 될 정도의 아이템을 얻는 순간 급격히 높아진다.

게임사도 이런 사실을 알고 유저의 계급 욕심을 자극한다. 넥슨의 ‘메이플스토리’와 넷마블의 ‘세븐나이츠’ 같은 국내 RPG 게임은 해외 게임과 달리 레벨을 올리기가 매우 어렵다. 즉 레벨의 가치가 높다. 또 모바일 게임은 대부분 SNS 친구들의 순위 정보를 제공한다. 친구가 나를 추월하면 알려주기도 한다.

이런 전략이 어디서나 통하는 건 아니다. 북미와 유럽에는 주 수익원이 아이템이 아니라 게임 판매인 경우가 많다. 이 교수는 “게이머들이 돈으로 순위를 올리는 것에 거부감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순위보다 형평성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곧 크리스마스 시즌 아이템이 쏟아진다. 랜덤박스 앞에서 현명한 유저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냉정히 생각해 보자.

2016년 12월 수학동아 정보

  • 이다솔 기자
  • 도움

    이정엽 교수
  • 기타

    [참고 서적] 조던 엘렌버그의 <틀리지 않는 법>
  • 일러스트

    김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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