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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천재 수학자의 유산 라마누잔의 노트


수학계의 새로운 별 라마누잔이 나타났다!

1913년 1월 16일 영국의 수학자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는 인도에서 편지 한 통을 받는다. 하디가 받은 편지는 인도의 23살 사무원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의 것이었다. 편지에는 라마누잔의 간단한 소개와 라마누잔 자신의 직관과 통찰만으로 논리적 증명 없이 써내려간 여러 수식이 있었다. 하디는 이상한 수식에 당혹스러웠지만, 라마누잔의 천재성만은 알아보았다. 몇 번의 편지가 오간 뒤, 하디는 라마누잔과 함께 연구하기로 했다. 그리고 1914년, 인도의 사무원 라마누잔은 영국으로 가는 배에 올라탔다.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은 1887년 인도 에로드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수학에 재능을 보였지만 인도에서 고등학교만 졸업 한 뒤 사무원으로 일했다. 1903년 라마누잔은 우연히 조지 슈브리지 카의 <;순수수학과 응용수학의 기초 결과에 대한 개요>;라는 수학책을 읽게 된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체계적이진 않지만 독창적으로 수학을 연구한다. 혹자는 이 책이 라마누잔에게 영감은 주었겠지만, 누구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독창적인 라마누잔의 연구로 보아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라마누잔은 수식을 쓸 때 학계에서 사용하는 수학 기호를 사용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종종 대학 학부생 수준의 증명도 하지 못했다. 수학자들과 교류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라마누잔의 독특한 풀이 과정은 종종 다른 수학자를 당황하게 했다. 하지만 라마누잔은 다른 수학자가 만든 식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발견하기도 했다. 라마누잔의 식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연구 결과도 나왔다.


자연수를 나눈다고?

라마누잔은 정수론을 주로 연구했는데, 라마누잔의 연구는 후대에 정수론을 연구하는 수학자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정수론은 수 자체를 다루는 분야다. 수 자체의 특성에 관심이 있는 학문이기 때문에 자연수 사이의 관계나 특성을 찾고 분석하는게 중요하다. 

‘자연수의 분할’에서 라마누잔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다. 자연수의 분할은 한 자연수를 한 개 이상 자연수의 합으로 나타내는 방법을 말한다.

예를 들어, 사과를 바구니에 나누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사과가 하나일 때는, 한 개의 바구니에 사과 하나만 담으면 된다. 사과가 두 개일 때는 한 바구니에 두 개를 모두 담을 수도 있지만, 두 개의 바구니에 하나씩 나눠 담을 수도 있다. 두 개의 사과를 두 가지 방법으로 바구니에 나눠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사과가 세 개면 몇 가지 방법이 나올까? 한바구니에 세 개를 몽땅 담는 방법도 있지만, 세 개의 바구니에 하나씩 담을 수도 있다. 또 있다. 두 개의 바구니를 이용해 한 바구니에는 두 개의 사과를, 다른 한 바구니에는 하나만 담는 방법이다. 이렇게 세 개의 사과를 바구니에 담는 방법은 총 세 가지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먼저 1은 가장 작은 자연수로,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다. 그래서 1의 자연수 분할 가짓수는 1개다. 2는 1+1로 분할할 수 있으므로 자연수 분할 가짓수가 2가 되며, 3은 1+1+1과 2+1로 분할하는 방법까지 총 세 가지이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찾아보면 4와 5는 다음과 같이 분할되고, 각각 5가지, 7가지 방법이 나온다.
영국의 수학자 퍼시 알렉산더 맥마흔은 이렇게 1부터 200까지 모든 값을 찾아내 표로 나타냈다. 2년 뒤 라마누잔은 맥마흔의 표를 보고 일정한 규칙을 찾아내 자연수 분할 함수의 성질에 관한 논문을 냈다. ‘p(0)=1’을 시작으로 분할 함수를 한 줄에 다섯 개씩 나열하면, 가장 오른쪽 줄에 나열된 수가 모두 5의 배수다.

비슷한 방법으로 7의 배수가 되는 수를 찾을 수 있는데, 그 수도 일정한 규칙에 따라 등장한다. 자연수 분할에 관한 이 논문이 중요한 이유는 분할수의 성질을 밝혔기 때문이다. 수학자들은 라마누잔이 논문을 발표하기 전까지 어떤 자연수의 분할 함수값이 홀수인지 짝수인지도 모르고, 더하는 방법이 얼마나 많아지는지 알지 못했었다.

라마누잔이 찾아낸 규칙은 정수론에서 ‘합동★’과 관련이 있다. 정수론에서는 같은 수로 나누었을 때 나머지가 같아지는 두 수를 합동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7과 12는 5로 나누면 나머지가 2로 같다. 정수론의 합동식으로 표현하면 7≡2(mod5), 12≡2(mod5) 이다.★ 그리고 ‘mod 5에 대해 7과 12는 합동이다’라고 읽는다. 라마누잔은 맥마흔의 표의 수 배열에서 합동을 찾아내 일반화하는 식을 만들었는데, p(5k+4)≡0(mod5), p(7k+5)≡0(mod7),그리고 p(11k+4)≡0(mod11) 이다. k에 0이나 어떤 자연수를 넣어도 성립한다. 첫 번째 식의 k에 각각 0, 1, 2를 넣은 경우 p(4), p(9), 그리고 p(14)의 값은 각각 5, 30, 135이므로 p(4)≡p(9)≡p(14)≡0(mod5)이다. 즉, mod5에 대해 합동이다.

 
1729가 무슨 수이기에?1729라는 수를 들었을 때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의미 없는 수라고 생각할 것이다. 혹시 어떤 사람은 라마누잔의 택시수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라마누잔이 몸이 좋지 않아 요양원에 있을 때였다. 병문안을 온 하디가 타고 온 택시 번호 1729를 의미 없는 수라며 언급했는데, 라마누잔은 말했다.

“아주 흥미로운 숫자입니다. 두 가지 방법으로 두 세제곱의 합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작은 숫자거든요."

택시수 1729’는 두 개의 자연수 세제곱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는 수다. 한 쌍의 세제곱 합인 수를 찾는 것은 쉽지만 다른 두 쌍의 세제곱을 합으로 나타낼 수 있는 수를 찾기는 어렵다. 라마누잔은 어떻게 알았을까? 수학 천재라서 바로 알 수 있었을까? 라마누잔의 통찰은 아니었다. 요양원에 입원하기 몇 해 전 앞서 말한 분할수를 연구하던 라마누잔은 이 내용을 알게 됐고 노트에 기록해 뒀다. 그리고 라마누잔은 하디가 언급했을 때 기억해 낸 것이다. 2015년 10월, ‘택시수 1729’에 다시 한 번 수학자들이 주목했다.

정수론에서 쓰인 ‘분할’방법이 기하학에도 이용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 켄 오노 교수는 기하학에서 사용하는 도형인 K3곡면에 택시수 1729 분할법이 이용된다. 는 연구 결과를 수학 학회지 ‘정수론연구회’에 밝혔다. 라마누잔이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라마누잔의 수식이나 연구 결과는 이렇게 종종 다른 분야에서 이용되고 있다.

오노 교수는 이전에도 라마누잔의 식을 연구해 만든 공식이 블랙홀의 엔트로피 계산에 이용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라마누잔의 잃어버린 노트라마누잔의 노트는 거의 비어 있는 노트까지 포함해 총 세 권이었다. 그런데 1976년 미국의 수학자 조지 앤드류스 교수가 우연히 영국의 수학자 왓슨의 자료를 보던 중에 또 다른 라마누잔의 노트를 발견했다. 이전까지 발표되지 않았던 라마누잔의 연구 결과물이었다. 뒤늦게 알려져서 사람들은 ‘라마누잔의 잃어버린 노트’라고 부른다.

고등과학원에서 정수론을 연구하는 최윤서 교수를 통해 미국의 수학자 조지 앤드류스가 라마누잔의 잃어버린 노트를 발견한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976년 미국의 수학자 조지 앤드류스 교수는 독일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해야 했다. 그 당시는 유럽에 체류하는 기간이 짧으면 비행기 값이 몇 배로 비싸졌다고 한다. 앤드류스 교수는 비행기 값을 아끼기 위해 유럽에 며칠 더 머물며 영국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라마누잔을 오랫동안 연구했던 영국의 수학자 왓슨의 자료가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왓슨의 자료를 보던 앤드류스에게 사서가 서류 뭉치를 건네주었다. 그 자료는 공개되지 않았던 라마누잔의 연구 자료였다. 이렇게 라마누잔의 잃어버린 노트가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수학자들에게 라마누잔의 노트는 분명 이상해 보였겠지만 충분히 매력이 있었다. 학계에서 쓰지 않는 기호로 증명 없이 써 놓은 공식이 나중에 의미 있는 정확한 식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마누잔이 세상을 떠난 뒤 여러 수학자들이 라마누잔의 노트를 연구했다. 현재 라마누잔의 노트는 낙서와 같은 의미 없는 숫자 나열을 빼곤 거의 대부분이 증명됐다.

그런데 정말 이 숫자 나열이 의미 없는 낙서일까?

2015년 12월 수학동아 정보

  • 조혜인 기자
  • 일러스트

    허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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