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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또는 반시계? 노인 또는 젊은 여인? 아리까리한 그림의 비밀


 
최근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그림으로 사람의 성격을 알아보는 심리테스트가 유행했다. 그 중 하나가 한 발로 서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소녀의 그림이었다. 시계방향으로 도는 것처럼 보인다면 우뇌가 발달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소녀가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좌뇌가 더 발달했다고 해석했다. 기자가 직접 그림을 보니, 처음에는 시계방향으로 도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몇 초가 지나자, 소녀는 곧 반시계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기자는 다른 사람에 비해 양쪽 뇌가 모두 발달한 걸까?

빙글빙글 도는 소녀 외에도 세상에는 중의적인 그림이 많다. 심지어 움직이지 않는 그림인데도 두 가지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15년 영국 삽화가인 윌리엄 힐이 문학잡지 <;펄>;에 실은 그림 ‘아내와 장모’다. 힐은 그림 하나에 젊은 아내의 모습과 나이든 장모의 모습을 동시에 담았다.

1930년 미국 하버드대의 실험 심리학자 에드윈 보링 박사는 힐의 그림이 ‘지각성 모호성’을 띠고 있다고 정의했다. 그는 중의적인 그림에서 스스로 두 가지 모습을 찾아내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그림을 보는 방법을 알려주면 두 번째 모습을 곧 찾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빙글빙글 도는 소녀의 모습에서도 왼발로 서서 돌고 있다고 생각하면 시계방향으로 보이지만, 오른발로 서서 돌고 있다고 생각하면 반시계방향으로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소녀의 모습이 검게 실루엣으로만 그려져 어떤 다리가 오른쪽인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의적인 그림 알아채는 데 약 0.34초

지난 2012년 3월 독일의 정신건강의학프론티어영역기관의 위르겐 코른마이어와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의과대학 안과전문의인 미하엘 바흐 박사 공동연구팀은 중의적인 그림을 볼 때 사람의 뇌가 어떻게 인지하는지 관찰하고, 그 결과를 국제 신경과학학술지인 ‘인간신경과학 프론티어스저널’에 실었다.

뇌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인지할 때 ‘탑다운(top down)’과 ‘바텀업(bottom up)’ 두 가지 과정을 거친다. 탑다운은 경험이나 교육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인지하는 과정이다. 이때는 감마파가 활발하다. 반대로 바텀업은 새로운 것을 감각적으로 느껴서 인지하는 과정이다. 이때는 알파파가 활발하다.

연구팀은 실험참가자에게 ‘아내와 장모’를 보여 준 뒤 밀리초(ms, 1000분의 1초) 단위로 뇌파가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처음에는 알파파가 증가했지만, 약 250~500ms가 지나자 알파파가 감소하고 감마파가 증가했다. 실험을 반복한 결과, 연구팀은 아무리 잘 알려진 중의적인 그림이라도 일단 첫눈에는 감각적으로 첫 번째 모습을 인지하고, 약 340ms 뒤에 두 번째 그림을 의식적으로 인지한다고 결론내렸다. 그리고 시각적으로 한계가 있어서 중의적인 그림임을 알더라도 두 모습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아주 작은 변화가 큰 변화로~

그렇다면 왜 그림 하나가 두 가지로 보이는 걸까? 수학자들은 중의적인 그림을 볼 때 지각에 ‘카타스트로피(파국)’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물이나 현상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변화)을 흡수해 웬만하면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힘을 가하면 결국 평형이 깨지고 크나큰 변화를 불러오는 파국에 이른다는 이론이다. 내리막길에서 쏟아질듯 말듯 불안하던 모래더미가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현상과 같다.
 

수학자들은 카타스트로피 이론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세상이 W자 모양의 롤러코스터 궤도처럼 생긴 곡선이라고 가정했다. 그리고 사물이나 현상이 이 궤도에 놓인 둥근 공이라고 가정했다. 공은 둥글기 때문에 A나 C, F에 놓으면 좀 더 안정적인 B나 E로 굴러떨어질 것이다. 만약 D에 놓는다면 공은 처음에는 균형을 잡고 가만히 있겠지만, 주변에서 힘을 준다면 결국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이다. 이 W자처럼 생긴 이 곡선궤도는 4차 함수로 표현할 수 있다.

$y=\frac{1}{4}x⁴+\frac{1}{2}ax²+bx$

만약 외부에서 힘을 가하면 어떻게 될까? 수학자들은 a 또는 b를 조금씩 바꿔 카타스트로피가 일어나는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 W자형이었던 곡선이 때에 따라 V자형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물과 현상이 외부에서 영향을 받으면 카타스트로피가 일어나 급격하게 바뀐다.
 

영국의 심리학자 제럴드 피셔가 1967년에 그린 그림은 보는 사람이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에 따라 남자의 얼굴 또는 벌거벗은 채 앉아 있는 여인으로 보인다. 영국의 수학자 에릭 크리스토퍼 지먼 박사는 남자의 얼굴에서 여인의 모습으로 바뀌는 중간 단계를 넣어 이 그림을 여덟 가지로 그렸다.

그리고 이 그림을 대학생 57명에게 보여 줬다. 학생들은 첫 번째 실험에서는 1~8번 순으로, 두 번째는 8~1번 순으로, 마지막은 다시 1~8번 순으로 보면서 언제 이 그림의 모습이 다르게 보이는지 체크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7번 그림에서 남자 얼굴이 여인으로 바뀐다는 대답이(25명), 두 번째 실험에서는 5번 그림에서 여인이 아저씨 얼굴로 바뀐다는 대답이(29명) 가장 많았다. 마지막 실험에서는 4~5번에서 여인의 얼굴로 바뀐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19명). 첫 번째와 세 번째 실험을 비교하면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보다 두 번째 봤을 때 훨씬 빨리 또 다른 모습을 인식한 셈이다. 지먼 박사는 실험 결과를 그래프로 나타냈다.

아주 작은 변화가 큰 변화로~

지먼 박사는 그림 1, 2, 3과 7, 8처럼 그림이 남자 얼굴 또는 여인의 모습 한 가지로만 보이는 곳은 수학적으로 다른 그림에 비해 안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림 4, 5, 6처럼 시각과 생각에 따라 남자 얼굴 또는 여인의 모습으로 보이는 곳은 카타스트로피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내리막길에서 평형을 유지하려던 모래더미가 어느 순간 작은 힘에도 와르르 무너지는 것처럼, 계속 남자 얼굴로 보이던 그림도 어느 순간 아주 작은 차이로 여인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다.

지각성 모호성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있다. 우스꽝스러운 콧수염으로 유명한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나, 채소로 초상화를 나타낸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다. 그림에서 파국이 일어날 때 더욱 재미있고 신선해지니 정말 얄궂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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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수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 이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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