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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지?’
분명히 한 종류의 긴 신호음이 들려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주 짧은 신호음이 들렸다가 몇 초 동안은 정지하고, 다시 짧은 신호음이 들렸다가 몇 초 동안은 잠잠했다.
‘이건 혹시 심장박동 소리?’
우연히 심장에 관심을 갖다
미국의 엔지니어 윌슨 그레이트배치는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었다. 틈틈이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설비와 보수 관련 일을 하며 대학 등록금을 마련했을 정도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미국 코넬대 정신과학과 동물행동 연구실에서 동물의 뇌파나 혈압, 심장박동과 같은 수치를 측정하는 기구를 개발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연구실에 찾아온 외과 의사들과 점심 식사를 같이 하게 됐다. 그들은 식사 자리에서 심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1950년대 당시 심장외과 의사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심장박동을 전달하는 신경’을 잘 찾지 못해, 수술이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다. 수술을 받은 환자의 10%가 심장차단이라는 증상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날 의사들과의 대화 역시, 심장차단에 관한 이야기였다.
심장차단 증상이 생기면, 심장이 자신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뇌에 신호를 열심히 보내도 신경에 문제가 생겨 잘 전달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제때 문제를 발견하지 못해 결국 환자를 잃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옆에서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그레이트배치는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늘 다루던 전기 신호 문제와 닮아 있었다. 전기 신호도 회로에 문제가 생기면 원하는 데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혹시 어떤 장치를 만들 수 있다면…, 심장 문제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뒤로 그는 심장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전기 신호로 찾아낸 심장박동
7년이 지났다. 그동안 그레이트배치는 버팔로대로 자리를 옮겼고, 학생들에게 전기기술을 가르치면서 꾸준히 ‘심장’에 대해서도 연구를 이어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심장박동을 측정하는 장치에 대한 연구였다.
1958년 4월, 그레이트배치는 트랜지스터로 심장박동을 측정할 수 있는 회로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러던 중 이를 이용해 직접 몸 안에 넣어 심장을 자극할 수 있는 장치를 떠올렸다. 심장박동이 비정상일 때, 심장에 규칙적인 전기 자극을 가하면 심장박동을 정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원리는 간단했지만 몸 속에 직접 넣는 장치를 만들려다 보니 연구는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됐다. 하지만 그는 조바심내지 않았다.
회로를 완성한 뒤, 저항기를 가지고 실험을 이어갔다. 저항의 크기에 따라 장치가 어떤 자극을 만들어내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저항의 크기를 1만 옴으로 설정하고 결과를 지켜봤는데 예상과 다른 진동이 나타났다. 이때 실험 결과는 진동에 따라 다르게 울리는 신호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종류의 긴 신호음이 아니었다. 이상하다 싶어 저항기를 쥔 손을 다시 들여다보니, 100만 옴짜리 저항기를 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실수였지만, 운명이었다.
저항기를 잘못 쥔 덕분에 ‘삐-삐-삐-삐-’와 같은 짧은 신호음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결과를 얻었다. 그는 다시 회로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7년 전, 의사들과의 점심식사가 떠올랐다. 그중 ‘심장차단은 전기 신호가 심장근육에 닿지 못할 때 생긴다’는 말이 기억났다.
‘그래! 이 장치라면, 심장차단을 막을 수 있겠어!’
전기로 심장을 뛰게 하다
마침내 그레이트배치는 심장박동을 돕는 소형 회로를 개발했다. 그레이트배치는 이 장치를 들고 보팔로 보훈병원의 외과의사 윌리엄 챠덱을 찾아갔다. 직접 성능을 실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챠덱은 심장차단을 앓다가 막 심장이 정지한 개의 몸에 이 장치를 심어 성능을 확인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장치에서 나오는 전기 신호가 심장박동과 꼭 닮아 있었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이 장치가 몸속에서 작동하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가장 오래 버틴 시간이 4시간이었다. 그레이트배치는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이 장치의 성능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이 장치를 감싸는 덮개가 중요했다. 그는 플라스틱의 한 종류인 에폭시를 덮개로 선택했다. 이를 ‘삽입용 심장박동기’라고 불렀다.
1960년 4월 15일, 챠덱은 부정맥★을 앓고 있는 열 명의 환자에게 심장박동기를 심었다. 첫 번째 환자는 18개월을 더 살았고, 두 번째 환자는 30년을 더 살았다. 생존율은 50% 정도였다. 심장박동기가 고장 나서 멈추는 일은 없었지만, 전지가 문제였다. 그레이트배치는 수년간 이 연구에 매달려 심장박동기에 사용할 리튬전지를 개발했다. 전지를 리튬전지로 교체하자 10년은 끄떡없었다. 30년을 더 산 환자는 첫 수술 이후로 몇 번 재수술을 통해 박동기를 새로 설치했다. 그레이트배치의 작은 실수가 오늘날까지 수천만 명의 심장을 지켜주고 있는 셈이다.
부정맥★ 심장에서 전기 자극이 잘 만들어지지 못하거나 자극이 잘 전달되지 않아서, 심장 박동이 비정상적으로 빨라지거나 느려지거나 또는 불규칙해지는 증상을 말한다.
수학자도 참여하는 심장 연구
심장에 관한 연구는 의사는 물론, 생리학자, 생물학자와 수학자까지 참여하는 분야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주제의 연구가 활발하다. 그중에서 수학 모델로 심장병을 진단하는 연구가 대표적이다. 주로 심장의 움직임을 방정식으로 분석해 심장 안에서 혈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한다.
예를 들어 정은옥 건국대 수학과 교수가 개발한 심장 방정식은 압력, 혈류량, 부피, 저항, 탄성력을 변수로 두고, 각 변수가 달라질 때 혈액의 움직임과 심장 안에서 혈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한다. 혈액이 심장의 좌심실에서 나와 온몸을 돌고 다시 우심방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수학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실제로 심장 방정식을 이용하면 심장병이 있는 사람과 정상적인 사람의 심장 운동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수 있다. 이런 분석 결과를 의료진에게 전달해 환자의 치료를 돕는다.
지난 2013년 1월, 미국생리학저널에는 황소개구리의 심장박동에 관한 연구 논문이 실렸다. 미국 라이스대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랜들 라스무센 교수팀은 심장병을 앓고 있는 황소개구리에게 심장박동기를 이식했다. 그리고 심장박동기에서 발생하는 전기 자극이 어떤 세포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내기 위해 수학 모델을 활용했다. 이 수학 모델을 이용하면 자극에 따라 각 세포가 보이는 변화를 그래프로 나타낼 수 있다. 이는 몸 속에 이식된 심장박동기가 일으키는 부작용을 최소로 줄이기 위한 연구였다.
이처럼 수학은 더 완벽한 심장박동기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다. 무엇보다도 수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심장의 움직임을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나타낼 수 있어,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도구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