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은 한 순간에 넓은 숲을 태워버릴 수 있는 위험한 재해다. 특히 우리나라 산처럼 나무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숲에서는 한 지점에서 시작된 불이 주위로 금세 번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산불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나무를 띄엄띄엄 심어야 할까? 불이 번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실제로 숲속 나무 밀도에 따라 산불의 진행 정도를 예측하는 수학이론이 있다. 바로 ‘침투이론’이다. 침투이론은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각 구성원 사이의 연결 정도가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육각형으로 설명하는 침투이론!
만약 A 나무를 기준으로 B와 C의 위치에 나무가 있다면, 산불은 양쪽 방향으로 모두 번진다. 반면 D 나무처럼 주변 육각형에 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면, 산불은 나무 한 그루만 태우고 꺼진다. 이처럼 기준 나무 주변에 나무가 있을 확률의 평균을 p라고 할 때, p값이 얼마여야 산 전체로 산불이 퍼질까?
확률이 1/2 이상이면, 산불은 산 전체로
1982년 미국 코넬대 수학과 해리 케스텐 교수는 이와 같은 2차원 평면 위에 산불이 난 경우에 불이 산 전체로 퍼지기 시작하는 p값이 1/2임을 증명했다.
산이 무한히 넓다고 가정하고 산불의 진행 방향과 규모를 분석하면, 확률 p값이 클수록 피해를 입는 범위가 컸다. 그런데 p가 1/2 미만일 때는 불이 어느 정도 번지다 꺼졌다. 즉, 불난 곳 주위에 나무가 있는 육각형이 3개 미만이면 불이 숲 전체를 태우지 않는다는 소리다.
반면 p값이 1/2 이상일 때는 불이 산 전체로 퍼져갔다. p값이 1에 가까울수록 불이 더 빨리 번지고, 더 많은 나무가 불타 버린다. 다시 말해 불이 붙은 나무가 있는 육각형 주위의 모든 칸에 나무가 있다면, 산불은 산 전체로 빠르게 퍼지고 산불 진화 후에도 살아남은 나무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산은 대부분 나무가 빽빽이 모여 있어 p값이 1에 가깝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산불로부터 산림을 보호하려면, 애초에 불이 나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산불이 많이 발생한 지역(2013년) (단위 : 건)
우리나라에서는 연평균(2004~2013) 389건의 산불이 발생해 매년 약 여의도 2.6배만큼 숲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기후 변화 때문에 산불의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사례도 많았다.
2013년에는 건조한 날이 늘어났고, 산불이 자주 일어나는 시기에 비도 적게 와 산불에 취약했다. 2013년 연간 강수량은 1163mm로, 2012년 1442mm, 2011년 1479mm에 비해 눈에 띄게 적은 양이다. 또한 건조 특보 발령일이 121일로, 2012년 116일보다 약간 증가했다.
2013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산불은 모두 296건이며, 피해 면적은 여의도의 약 1.9배만 한 크기였다. 각 지역별 발생 건수는 다음과 같다.
수학 백신으로 숲 질병 예방!
숲을 위협하는 또 다른 재해는 질병이다. 최근 춘천, 원주, 정선을 비롯해 전국의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름시름 앓고 있다. 소나무재선충병 때문이다. 소나무재선충병은 한 번 감염되면 치료약이 없어 3개월 내외로 나무가 죽고 만다. 산림청을 중심으로 치료제 개발에 힘쓰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할 해결책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혹시 수학이 도울 수 있을까?
격자모델로 전염병 예측
나무와 같은 식물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동물보다 수학 모델을 만들기 쉽다. 식물의 질병을 재현하는 수학 모델은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예측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무는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위치를 바꾸지 못한다. 따라서 질병이 발생하면, 나무가 자라는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대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나무가 빽빽한 곳에서 어느 나무 한 그루가 병에 걸리면, 이웃 나무에 병을 옮길 확률이 높아진다. 반대로 홀로 떨어져 있는 나무는 다른 나무에게 피해를 줄 확률은 매우 낮지만, 발견되지 못해 죽을 확률이 높다. 이렇듯 나무의 질병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해석하려면, 나무가 자라는 주변 환경과 공간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독일의 환경생태학자 울프 딕크만은 2차원 좌표평면 위에서 각 점에 나무를 배치하고, 이웃한 점끼리만 상호작용한다고 가정하는 ‘격자모델’을 만들었다. 이 격자모델을 활용하면 질병의 전파 속도와 피해 범위를 근삿값으로 예측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전염병 막으려면 번갈아 심어야
넓은 땅에 똑같은 나무만 심으면 숲은 질병에 약해진다. 나무를 위협하는 질병은 주변 나무로 전염되거나, 같은 종 안에서만 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모자이크처럼 여러 종류의 나무를 번갈아 심으면, 병충해가 숲 전체로 퍼져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그 속도도 줄일 수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식물과학과 윌프레드 오텐 교수팀은 벼나 옥수수에서 잎집무늬마름병을 일으키는 곰팡이인 라이족토니아가 퍼지는 패턴을 침투이론으로 설명했다. 연구팀은 곰팡이가 퍼지는 패턴을 구역을 나눠 관찰하고, 한 곰팡이를 기준으로 둘러싼 주변의 60% 이상을 곰팡이가 차지하면 전체로 퍼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결과를 이용하면 숲에 나무를 새로 심을 때 병충해 피해를 최소로 줄이는 계획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는 경우에는 나무를 새로 심을 수 없다. 따라서 병충해의 전파 방향과 범위를 예측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