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모여 방과후 활동을 하던 아이들이 ‘수학 동아리’를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도대체 어쩌다 동아리까지 만들게 된 걸까? 탄생한 지 한 학기밖에 안 된 따끈따끈한 수학 동아리, ‘수학사 연구반’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수학에 대한 열정으로 탄생한 동아리!
지난해 12월, 연희중학교에서는 겨울방학을 앞두고 다양한 종류의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2학년 수학 담당인 황유진 선생님도 수학사와 관련된 책을 읽고 다양한 탐구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딱딱한 수학 문제가 아닌 수학의 역사를 배운다는 소식에 솔깃해 신청한 학생들은 모두 14명. 그런데 신청한 학생들을 한 자리에 모아 보니 모두 어디선가 본 얼굴들이었다. 평소 수학에 관심이 많아 ‘수학 영재반’ 등에서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수학’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걸 알게 된 아이들은 이번 기회에 아예 동아리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동아리 활동 주제는 황유진 선생님이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만든 수학사 연구가 되었지만, 동아리원들은 단순히 수학사를 배우는 데 머물지 않기로 했다. 지금껏 동아리 활동을 해 본 적은 없지만, 황 선생님께서 소개해 주신 다른 학교 수학 동아리들의 활동 내용을 참고하면서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지 의견을 나눴다. 그 결과 방학 때는 수학사 연구를 중심으로 수학 신문을 만들고, 탐구 보고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그리고 학기 중에는 다른 친구들에게 수학의 매력을 알리는 수학 체험전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
모두 동아리 활동이 처음이라 아직 동아리 회장은 따로 없어요. 동아리 정식 명칭도 지금은 ‘수학사 연구반’이지만, 앞으로 우리 동아리만의 특징을 담은 이름도 새로 만들 예정이고요. 2학기에는 새로운 동아리원도 뽑아야 하니, 할 일이 정말 많네요! 지수연(3학년)
좌충우돌, 수학자 따라잡기!
지난 겨울방학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수학사 연구반은 방학 동안 매일 학교에 모였다.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학교 컴퓨터실에서 책과 방송, 인터넷을 뒤지면서 숨겨진 수학 이야기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수학 신문을 만들거나 수학 탐구 활동을 했다.
수학 신문은 말 그대로 다양한 수학자들의 연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신문처럼 정리한 것이다. 그리고 수학 탐구 활동은 수학자들의 연구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자신만의 새로운 수학 탐구 활동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예린 양과 이윤진 양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이라는 그림에 수학자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최초의 여성 수학자로 알려진 히파티아를 비롯해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같은 수학자들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흥미롭게 여긴 두 학생은 그림에 등장하는 수학자들의 업적을 공부하고, 가상인터뷰를 하는 형식으로 신문 기사를 만들었다.
저는 콜라병도 황금비에 따라 디자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기했어요. 그래서 혹시 생수병에도 황금비가 있는지 조사해 봤어요. 비록 생수병에서는 황금비를 발견할 수 없었지만, 황금비에 대해서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답니다. 정용현(3학년)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수학 신문 기사를 쓰다가 컴퓨터가 꺼져서 작성하던 기사 파일이 사라져 버리기도 했고, 스스로 계획한 수학 탐구 활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수십 번을 반복하다가 결국 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서로 토론하면서 대안을 찾는 훈련을 할 수 있었다.
이런 활동을 위해 방학 내내 하루에 4시간씩 모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학사 연구반 동아리원들은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그 결과 방학을 마칠 때쯤엔 모두 자신만의 수학 탐구 보고서를 가질 수 있게 됐다.
매일 동아리 활동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써야 했지만 부담스럽지는 않았어요. 학교와 학원에서 배우는 공부만큼 동아리 활동에서 배우는 것도 많았거든요. 직접 신문을 만들고 수학 탐구 활동을 하는 걸 어디에서 배울 수 있겠어요? 안현솔(3학년)
‘수학 게릴라’가 떴다!
수학사 연구반 동아리원들이 활동을 시작한 올 1학기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 활동은 ‘수학 게릴라 체험전’이다. 수학 체험전 이름이 왜 게릴라일까?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르게, 예고 없이, 마치 게릴라처럼 체험전을 열기 때문이다.
수학 체험전을 진행하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우선 학기 초에 모두 모여 매달 진행할 체험전 주제를 정한다.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매달 ‘파이’와 ‘소수’, ‘방정식’ 등을 주제로 정했다. 그런 뒤에는 조별로 각 주제에 맞는 수학 체험을 준비한다. 예를 들면 3.141592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원주율을 외우는 게임을 준비하는 것이다.
간단한 게임 형식이지만 여럿이 함께 놀면서 수학 개념을 배울 수 있어서인지 1학년 후배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체험전이 열릴 때마다 30~50명씩이나 찾아와 동아리원들이 준비한 수학 체험을 즐기고 돌아갔다.
하나씩 힌트를 주면서 마치 놀이하듯 문제를 풀 수 있게 도와주니까, 아이들이 조금씩 이해하더라구요. 그런 모습에서 체험전을 준비한 보람을 느꼈어요. 박건우(3학년)
수학사 연구반 동아리원들은 이번 여름을 누구보다 뜨겁게 보낼 예정이다. 지난 겨울에 이어 수학사에 숨어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것은 물론, 수학과 관련된 전시와 체험관을 방문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어느해보다 무더울 이번 여름, 연희중학교에 시원한 수학 바람이 불어오길 기대해 본다.
지도교사의 한 마디
수학 동아리와 함께 성장하세요!
연희중학교는 ‘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 연구학교입니다. 1학년 학생들은 1학기 중간고사 대신 진로 탐색 활동을 해야 하죠. 그래서 1학년 학생들에게 학습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게 중요한 과제였어요. 그런데 수학사 연구반 아이들이 나서 주어서 그런 고민을 덜게 됐답니다. 특히 동아리원들이 직접 회의를 해서 활동 계획을 세우고, 매달 성실하게 게릴라 체험전을 운영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어요. 학교에 수학 동아리가 있다면 관심을 가져 보세요. 동아리 활동을 하다 보면 수학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서울 연희중 수학교사 황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