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코스 그리니치 천문대
세상의 중심에서 수학을 만나다
전 런던에 오면 꼭 가 보고 싶은 곳이 있었어요. 바로 세상의 중심, 세계의 시간이 시작되는 곳이라 불리는 ‘그리니치 천문대’예요. 그리니치는 지역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보존돼 있어요. 그리니치 파크를 중심으로 언덕 위로는 그리니치 천문대가, 아래로는 퀸즈 하우스와 해양박물관과 왕립해양대학이 자리 잡고 있지요. 중요성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일 테고, 교과서에서만 접했던 본초 자오선을 직접 볼 수 있다니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그리니치 천문대 안으로 들어가 보니,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어요. 많은 관광객들이 일렬로 줄을 선 채 양 발을 사진 찍고 있더라고요.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한쪽 벽에 “Prime Meridian of the world”라고 쓰여 있었어요. 거기서 시작된 붉은 선이 바닥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이 선이 바로 세상의 중심을 가르는 본초 자오선이에요. 위도 51° 28′ 38″, 경도 0° 0′ 0″의 본초 자오선. 이 평범한 선 하나가 세상을 동과 서로 나누는 중심이라니…!
저도 얼른 본초 자오선을 양 발 사이에 두고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어요. 세상의 동쪽과 서쪽이 내 양 발 아래에 있다니 신기했지요.
그런데 영국은 어떻게 본초 자오선을 갖게 된 걸까요?
그리니치 천문대
안전한 항해를 가능케 한 좌표와 기하학
본초 자오선 뒤편에는 ‘플램스티드 하우스’라는 건물이 있어요. 팔각형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영국 최초의 왕실 천문학자였던 플램스티드가 천문학을 연구하고 거주했던 곳이에요. 이 건물에는 천문 관측과 시간 계산의 역사를 잘 설명한 박물관이 있어요.
인공위성이 없던 시절 바다에서 어떻게 위치를 알아냈을까요? 2차원 평면에서 임의의 점의 위치는 x, y축의 두 좌표만 알면 돼요. 마찬가지로 지구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려면 위도와 경도, 두 좌표만 알면 되죠. 옛 선원들은 위도를 구하기 위해 정오에 육분의란 기구로 해의 높이를 쟀어요. 적도에 가까울수록 태양의 고도는 높아지고 멀수록 낮아지는 원리를 이용했지요.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경도를 구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1707년, 영국 왕립 해군 4척이 경도를 구하지 못해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영국 정부는 당시 유명한 수학자와 과학자들을 동원해 경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요. 이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한 사람은 시계 기술자이자 발명가인 존 해리슨이에요. 그는 정확한 시간만 알 수 있다면 어디서든 경도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구는 24시간을 기준으로 자전해요. $\frac{360°}{24시간}$=$\frac{15°}{1시간}$이므로 1시간 차이는 15°만큼 경도 차이가 나는 거죠. 만약 누군가 본초 자오선과 3시간 차이가 난다면 경도 15°×3=45°에 있다는 뜻이지요.
결국 그가 할 일은 정확한 시계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존 해리슨은 40여 년의 연구 끝에 거센 움직임과 온도, 습도에도 오차가 거의 나지 않는 시계를 만드는 데 성공했어요. 결국 경도 문제도 해결됐지요.
제2코스 퀸즈 하우스
신발 어림측정으로 나선 계단의 비밀을 깨라
많은 사람들이 그리니치에서 천문대만 보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반드시 봐야 할 곳이 또 있어요. 그리니치 파크 오른편에 위치한 ‘퀸즈 하우스’예요. 퀸즈 하우스의 1층(Ground floor)에는 그레이트홀이 있는데, 홀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멈춰서 위를 올려다 보면 나선형의 튤립 계단이 눈에 들어와요. 이 계단은 가운데 지지대 없이 한쪽 벽과 아래 계단만을 의지해 쌓아 올린 영국 최초의 나선형 계단으로 유명해요.
그런데 가만 보니, 이 계단의 나선 구조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네요? 아하! 소라 고둥이나 앵무조개, 은하계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나선 구조와 같아요. 계단을 계속 올려다 보자, 점점 좁아드는 듯한 착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사실 계단은 바닥부터 윗부분까지 일정한 원기둥 모양이래요. 아무리 봐도 거짓말 같아서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지요.
계단 바닥에 놓인 원이 문제를 푸는 열쇠였어요. 자가 있다면 지름을 잴 수 있겠지만, 여행하면서 자를 갖고 다니진 않잖아요? 이럴 땐 신발을 이용해 어림 측정하면 돼요. 한 발, 두 발 신발로 길이를 재 보니, 바닥원의 지름이 2m 정도 되겠네요. 그럼 튤립 계단의 안쪽 원 둘레는 2m×3.14≒6.28m지요. 같은 방법으로 계단 안쪽의 폭을 재 보니 약 18cm, 1회전에 필요한 계단의 수는 34개더라고요. 그럼 1회전의 둘레는 0.18m×34=6.12m 정도로 거의 비슷해요. 약간의 오차가 있긴 하지만, 튤립 계단이 원기둥 형태임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퀸즈 하우스
검정과 흰색 타일이 만드는 착시
이제 그레이트홀로 들어가 볼까요? 홀 안을 쭉 훑어보니 전체적인 구조가 매우 안정돼 보였어요. 홀은 한 변의 길이가 12.2m 정도 되는 정육면체였어요. 아하! 각 벽면들의 구조가 대칭적이라 안정감이 느껴지는구나!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어요. 천정과 바닥을 보니 큰 정사각형을 9개의 작은 정사각형으로 분할한 뒤, 가운데와 네 모퉁이에 원을 채워 넣었네요. 게다가 천정과 바닥의 분할 지점이 일치해, 안정감을 더했죠. 이 정사각형을 어떤 비율로 분할했는지 알기 위해 바닥의 타일을 세 봤어요. 1:2:1이란 명쾌하고 깔끔한 비가 나오더군요.
건물의 설계자인 이니고 존스는 퀸즈 하우스에 팔라디안 건축양식을 사용했어요. 이는 그리스와 로마의 신전에서 사용된 기하학적인 대칭과 비례, 조화를 강조하는 건축 양식이에요. 이 양식에서는 3:4, 4:5와 같이 간단한 수학적 비를 사용하는데, 1:2:1은 팔라디안 건축양식에 부합하는 아름다운 비였지요.
1층 발코니에서 그레이트홀의 바닥을 내려다보자, 흰색과 검정색의 대리석으로 짜 맞추어진 아름다운 바닥 타일링이 보였어요. 무려 400여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름다움을 손색없이 유지하고 있더라고요. 타일링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는데, 앗! 가운데 있는 큰 원이 움직이는 듯한 착시가 느껴지는 게 아니겠어요?
가운데 검은 원에서 퐁퐁퐁 물길이 솟아올라 밖으로 흘러내리는 듯 느껴지는 착시를 일으키고 있었어요. 검정과 흰색의 대리석이 일정하게 배열돼 나타나는 착시의 아름다움은 수학과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겠죠?
제3코스 왕립해양대학
사영기하의 원리가 담긴 예배당을 찾아라
퀸즈 하우스에서 템즈강 쪽을 바라보면 하얗고 네모난 건물들이 보여요. 이 건물들은 좌우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는 왕립해양대학이에요. 왕립해양대학은 영국 내에서 가장 좋은 전망을 가졌으면서, 건축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건물로 손꼽힌답니다.
왕립해양대학의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앞서 소개한 크리스토퍼 렌이에요. 그는 원래 템즈강을 따라 하나의 이어진 건물로 지을 생각이었대요. 하지만 여왕 메리 2세가 템즈강의 전망을 가리지 않도록 하라는 명을 내렸다고 해요. 하는 수 없이 설계를 바꿔 하나의 건물을 템즈강에서 퀸즈 하우스까지의 직선거리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이 되도록 4개의 건물로 설계했어요. 특히 가운데 위치한 두 건물은 건물 자체도 좌우대칭이지요.
이제 왕립해양대학의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 봐요.예배당은 황금빛으로 빛나 화려해 보였어요. 그리고 원과 타원, 사각형, 팔각형들이 조화롭게 배치돼 실내가 안정적이면서도 세련돼 보였지요. 눈여겨볼 부분은 천정에 3개의 동그라미예요. 아무리 봐도 원 같은데,바로 아래에서 올려다 보니 장축과 단축이 꽤 차이나는 타원이더라고요.
여기에는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동그란 원이 찌그러진 원, 즉 타원처럼 보이기도 하는 사영기하학의 원리가 담겨 있어요. 사영기하학은 평면적인 그림에서 벗어나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한 화가들에 의해 만들어졌어요. 유클리드기하에서는 두 도형이 완전히 포개어질 때 합동이라고 하지만, 사영기하에서는 원과 타원이 합동이 되기도 한답니다.
왕립해양대학에서 나와 유람선을 타고 템즈강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절로 다음 여행 계획이 떠오르더라고요. 바로, ‘위대한 수학자들의 자취를 찾아서!’ 다음 달 영국 매스투어도 기대 많이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