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숲에서 정신을 잃은 앨리스는 영문도 모른 채 낯선 공간에서 눈을 떴다.
“착시 미술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당신은 영원히 이 미술관을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깔깔깔. 이제 모든 것은 당신의 손에 달렸습니다. 행운을 빌…(지지직).”
어디선가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착시 미술관? 못 나갈 수도 있다고? 또다시 모험이 시작된 건가…?’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보니, 수상한 두 남자가 굳게 닫힌 전시관 문 앞에서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앨리스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는 그들에게로 달려갔다.
전시관 입구 평행선을 만나게 하라!
평행하는 두 직선이 대체 어떻게 만난다는 거요? 평행선이 만나지 않는다는 성질은 유클리드기하학의 기초란 말이요!
허허, 물론 선생님의 기하학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원…. 서로 만나지 않는 평행선의 성질은 초등학생도 다 안단 말이요!
제가 평행선도 만날 수 있다는 걸 직접 보여 드리면 믿으시겠습니까? 제 작품을 소개 하지요.
만나는 평행선 위에서 유클리드의 산책
▲ 마그리트의 <;유클리드 산책>;. 이젤의 위치 때문에 안과 밖의 구분이 헷갈리는 착시가 일어난다.
이 그림은 <;유클리드의 산책>;이라는 작품입니다. 유리창 너머 산책길 위에 점 두 개가 보이시죠? 두 사람이 산책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건데, 너무 멀어서 사람이 마치 개미처럼 보입니다. 여기 한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이 바로 접니다.
‘평행선은 결코 만날 수 없다’를 주장하신 선생님이 만나는 평행선 위에 서 있는 모습이 재밌지요? 저는 이렇게 원근법을 이용해 ‘수학의 역설’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창 밖에 보이는 원뿔 모양의 탑과 산책길을 한 화면에 그렸지요. 평행선으로 이뤄진 산책길도 원뿔처럼 한 점에서 만날 수 있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예요.
원근법이란 가까운 물체는 크게, 멀리 있는 물체는 작게 그리는 회화 기법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의 공간을, 종이와 같은 2차원 평면 위에 그릴 때 쓰이죠. 원근법이 있기 때문에 거리와 깊이를 평면 위에 표현할 수 있답니다.
수학을 사랑했던, 르네상스의 화가들
원근법의 시작은 르네상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원근법은 수학적인 비례가 정확하게 맞지 않았다. 그러다 1410년, 이탈리아의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리스키가 교회 건물의 밑그림을 그리다 사물의 크기를 거리에 따라 정확히 비례하게 그리는 방법을 알아냈다. 시선과 평행한 모든 직선이 수평선 위의 한 점(소실점)에서 모이도록 하여, 거리에 따른 비례에 맞게 사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눈높이에 소실점이 오도록 하고, 소실점에서 *대각 소실점까지의 거리만큼 작품과 떨어져 감상하면 작품의 입체감을 더욱 살릴 수 있다.
이후 유럽의 화가들은 치밀한 계산을 통해 감상자의 실제 눈높이와 소실점을 일치시켜 원근감의 효과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한편 이탈리아 화가인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원근법의 매력에 빠져, 이에 관련된 수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1474년에 발표한 <;회화의 원근법에 관하여>;를 포함해 수학 논문을 세 편이나 쓰고, 화가이자 수학자로 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논문에는 ‘3차원 공간을 2차원에 담기 위해 표현하는 입체감은 정확한 비례식을 따라야 한다’고 적혀 있다.
*대각 소실점 : 시선(A~G)과 평행한 직선(H~M)을 그리면 여러 개의 사각형이 생긴다. 이때 만들어진 사각형의 대각선을 연장하면 다시 한 점에서 만나는데, 이 점을 대각 소실점이라고 부른다.
돌발퀴즈 “두 선분 l과m의 길이는 같은가? 다른가?”
정답
같다. 원근법을 이용한 착시로 ‘폰조 착시’라고 부른다. 주로 사다리꼴 모양 위에 같은 길이의 선을 수평으로 올려놓으면, 위쪽에 있는 선이 더 길어 보이는 착시 현상이 일어난다. 멀어질수록 좁아지는 빨간 선 덕분에 사람은 같은 길이의 두 선을 보고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경험에 의해 위쪽에 있는 선을 더 멀리 있는 선이라 생각해 상대적으로 더 길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1 전시관 숨어 있는 진짜 그림을 찾아라!
너는 수학에 푹 빠진 아이로구나! 나는 모자에, 너는 수학에! 호호호호호.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어려운 미션들이 주어질 거야!
왠지 작품 속에 답이 있을 것 같은데…. 이건 젊은 두 대사들의 초상화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어떤 미션을 수행해야 하죠?
진짜 그림을 찾아 줘, 진실을 밝혀 줘! 진짜 그림을 찾아줘, 진실을 밝혀 줘! 진실을…!
진실을 숨기는 왜상 화법
이 작품은 1533년 독일의 화가 한스 홀바인이 그린 <;대사들>;이다. 초상화가로서 재능이 뛰어났던 홀바인은 어느 날, 장 드 댕트빌 대사로부터 자신의 저택에 걸어둘 초상화를 그려 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몇 주 뒤 홀바인은 댕트빌 대사와 그의 친구인 조르부 드 셀브 주교의 모습을 실제 크기로 그려 초상화를 완성한다. 이 초상화에는 두 주인공들이 수학적인 도구와 수학책, 악기들이 널린 가구에 기댄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정치와 종교는 지식을 기초로 운영해야 한다는 뜻을 담기 위해서다.
한편, 그림 아래쪽 한가운데에는 분위기를 깨는 정체불명의 얼룩이 있다. 그 정체는 바로 해골! 하지만 이를 쉽게 알아보기 힘들다. 왜 그런 걸까?
해골을 왜상 화법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해골은 평소 댕트빌의 좌우명인 ‘죽음을 기억하라!’를 상징한다. 댕트빌의 좌우명을 알고 있던 홀바인이 왜상 화법으로 초상화에 해골을 그려 넣어 작품에 의미를 더한 것이다. <;대사들>;에 그려진 해골을 보려면 그림의 오른쪽 끝을 앞으로 당겨 비스듬히 보면 된다.
사영기하학에서 탄생한 왜상 화법
왜상 화법이란 화가가 의도적으로 그림을 왜곡되게 그려, 특별한 각도로 그림을 봐야만 숨어 있는 진실을 찾을 수 있는 재미난 기법으로 원근법 중 하나다. 이런 왜상 화법은 사영기하학을 기초로 한다. 어떤 사물에 적당한 빛을 비추면 각도에 따라 그 그림자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다양한 모양으로 변형된 그림자를 관찰하는 학문이 바로 사영기하학이다. 사영기하학에서는 원래의 모양과 변형된 그림자 사이에서 변하는 도형의 성질을 연구한다.
빛을 비추는 각도에 따라 그림자의 모양이 달라지는 것처럼, 사물이 눈에 비춰지는 모습은 시선의 각도에 따라 그 모양이 변한다. 예를 들어 같은 컵이라도 시선의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양으로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위의 그림처럼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화가들은 사영기하학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물을 일부러 왜곡하여 표현하기 시작했다. 한 사물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다양한 그림자의 모습을 상상해, 왜곡된 모습을 작품에 담아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16세기에 활동하던 유럽의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 실력을 입증하기 위해, 왜상 화법으로 그림 그리기를 즐겼다.
2 전시관 무한계단을 탈출하라!
휴우~. 모자장수의 조언이 아니었더라면 영원히 첫 번째 전시관에 갇힐 뻔했어! 오~, 이번 전시관은 ‘에셔 관’인가 보다!
듣던 대로 수학에 관심이 많은 아이로군. 하지만 여길 빠져나가진 못할 거야. 이건 끝없이 올라가는 무한계단이거든.
편지요~, 편지~!
무한계단? 근데 나한테 편지가 왔다고?
수학과 착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저는 수학을 지독히 사랑하는 네덜란드의 판화가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라고 합니다. 오늘은 제 작품 <;폭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지요.
이 건축물은 이탈리아 남부의 계단식 풍경을 모델로 삼은 것 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원근법을 정확히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풍경은 존재할 수 없는 모습이지요. 올바른 원근법과 잘못된 원근법을 교대로 사용해 그려 착시 현상이 일어납니다.
물레바퀴를 움직이는 폭포는 두 탑을 연결하는 물고랑을 따라 지그재그 모양으로 흘러갑니다. 흘러간 물은 다시 물이 폭포로 떨어지는 지점과 만나죠. 아마 물이 증발하지만 않는다면, 이 물레바퀴는 영원히 돌 것입니다.
또한 그려진 두 개의 탑은 높이가 같지만, 왼쪽 탑이 오른쪽 탑보다 한층 더 높습니다. 사실 탑 위에 그린 다면체들은 단지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해 그려 넣었습니다. 왼쪽에는 서로 교차하는 정육면체 세 개를, 오른쪽에는 정팔면체 세 개가 결합된 모습을 그렸습니다.
이 작품은 수학자 로저 펜로즈가 고안한 특별한 삼각형을 기초로 그린 것입니다.
이쯤에서 그의 논문을 직접 소개하지요.
‘펜로즈 삼각형은 원근법적인 그림이다. 각각의 부분은 3차원 직사각형 구조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선들은 서로 연결 돼 있으면서 불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
11월 어느 날, 에셔
*이 편지글은 실제 에셔의 미공개 강의록에서 발췌한 내용을 각색한 것이다.
수학을 사랑한 판화가 에셔
에셔는 판화의 본 고장인 이탈리아로의 여행을 즐겼다. 남부 이탈리아의 풍경에 푹 빠진 에셔는 초반부터 계단이나 벽처럼 집을 이루는 구조물에 대해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이탈리아 여행 후 본격적으로 기하학을 연구하기 시작한 에셔는, 자신의 작품 속에 현실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의 작품에서는 원근법에 따른 신기한 착시 효과를 볼 수 있다.
에셔가 수학적인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가장 가까이에서 영향을 준 사람은 바로 영국의 수학자 로저 펜로즈다. 펜로즈는 ‘불가능한 도형 : 시각적 착시의 특별한 형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사실 펜로즈 삼각형은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삼각형 구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삼각형의 내각을 집중해서 살펴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펜로즈 삼각형은 언뜻 보기엔 약 60°정도의 내각을 가진 일반 삼각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때 펜로즈 삼각형이 입체도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 개의 각기둥이 합쳐져 그려진 펜로즈 삼각형은, 구조상 각기둥과 각기둥이 만나는 부분이 모두 90°를 이뤄야 한다. 따라서 펜로즈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은 270°(=90°+90°+90°)로, ‘모든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라는 기본 성질을 어기는 착시 도형이다.
3 전시관 불가능한 도형을 찾아라!
꼬마 아가씨가 착시를 좀 아는구만. 하지만 이번 문제는 쉽지 않을 거야. 아직까지 진짜를 찾아낸 사람이 없었거든. 진짜와 진짜가 만나 가짜를 만들어 냈지. 다음 중 진짜 같은 가짜를 찾아보라고~!
진짜면 진짜고 가짜면 가짜지, 대체 진짜 같은 가짜가 뭐예요?
진짜 + 진짜 = 가짜?!
불가능한 도형은 항상 올바른 도형으로부터 출발한다. 올바른 도형의 일부를 변형하면 진짜인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❶번 그림은 올바른 도형이다. 이 그림에서 수직으로 뻗어 있는 각기둥 a의 앞으로 각기둥 c를 가져온다는 생각으로 그림을 살짝 바꿔 그려 보자. 그러면 왼쪽 그림과 같은 불가능한 도형이 탄생한다. 즉, 각기둥 a를 기준으로 각기둥 c가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도형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둘, 좌우를 서로 바꿔라!
왼쪽 그림에서 A, B, C는 올바른 도형이다. 올바른 도형을 반으로 자른 다음, 나뉘어진 조각을 각각 a+b', b+c', c+a'와 같이 이어 붙여 보자.
서로 다른 종류의 올바른 도형 두 개를 이어 붙였을 뿐인데, 불가능한 도형이 완성됐다. 즉, ❷번 그림은 A와 B가 만나 생긴 불가능한 도형이다.
셋, 위아래를 바꿔라!
시점이 다른 두 도형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은 실제 에셔의 작품인 <;폭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른쪽 A와 B는 같은 도형이다. 단지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시점을 달리해 그려 놓았을 뿐이다. 두 도형을 각각 반으로 잘라, 엇갈리게 연결하면 불가능한 도형이 완성된다. 사실 ❸번 그림은 오른쪽 그림에서 표시한 부분이 만나지 않는 불가능한 도형이다.
넷, 막대를 관통하라!
먼저 오른쪽 A와 같이 사각틀을 통과하는 막대를 그린다. ❹번 그림은 이같은 올바른 도형이다. 여기서 막대와 사각틀이 만나는 두 부분의 위치관계(앞↔뒤)를 반대로 바꾸면, B와 같은 불가능한 도형이 만들어진다.
다섯, 네커의 육면체 착시를 이용하라!
스위스의 수학자 루이스 네커는 보는 관점에 따라 두 가지로 보이는 육면체(A)를 고안했다. A는 꼭짓점 a와 b를 기준으로 두 가지 육면체로 보인다. 이것이 네커의 육면체 착시다.
문제에서 주어진 도형은 네커의 육면체를 이용해 그렸다. B에서 표시한 두 부분의 위치관계(앞↔뒤)를 바꾸면, 두 종류의 불가능한 도형을 그릴 수 있다. 따라서 ❺번 그림은 불가능한 도형이다.
4 전시관 반듯한 곡선을 그려라!
깔깔깔. 용케도 여기까지 찾아 왔구나. 어서오너라~. 여긴 착시 미술관의 꽃인 ‘마녀의 방’이란다. 호호호.
꺅! 다…, 당신은 그 유명한 얼큰 마녀? 맨 처음 착시 미술관을 소개한 사람도 당신이로군요!
이 방에서 빠져 나갈 유일한 방법인, 아~주 간단한 미션을 주지. 반듯한 곡선을 그려 보거라!
구면기하학이 만드는 착시
둥근 구슬에 비춰지는 모습은 현실과 다르게 휘어져 보인다. 둥근 구슬은 이렇게 왜곡된 모습을 보여 주지만, 대신 현실보다 훨씬 넓고 긴 시야를 갖게 한다. 이런 특성은 구면기하학에서 비롯된다.
구면기하학의 대표적인 특징은 구면 위에서는 모든 직선과 평행선이 만난다는 사실이다. 평면 위에 그린 직선은 영원히 만나지 않지만, 왼쪽 그림에서처럼 구면 위의 직선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 또한 구면 위에 그려진 삼각형 세 내각의 합은 반드시 180°를 넘는다. 구 표면의 둥근 정도를 따라 직선이었던 변이 왜곡 되기 때문이다.
사람 눈의 표면은 곡면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구면기하학의 특징을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어 방문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 문의 모양이 직사각형으로 보이지만, 점점 다가갈수록 순간적으로 문의 양끝이 둥글게 휘는 볼록 사각형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반응 속도가 매우 짧아, 사람이 이를 정확하게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실제로 왼쪽 그림처럼 한 쌍의 평행선을 사방으로 퍼지는 방사선 위에 놓으면, 이 선은 마치 곡선처럼 보인다. 방사선은 사람이 전진 운동을 할 때 망막에 생기는 시각 패턴과 닮았다. 이 때문에 그 위에 놓인 평행선을 보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착각이 일어난다. 이처럼 방사선 패턴에 의해 직선이 곡선처럼 보이는 착시를 ‘헤링의 착시’라고 부른다.
▲ 바자렐리의 <;노라-델>;의 일부(좌)와 미국의 추상화가 브리짓 라일리의 <;사각형의 운동>;(우).
직선만으로 표현한 곡면
헝가리의 추상화가 빅토르 바자렐리는 수학과 과학, 예술이 만난 ‘옵아트’라는 새로운 추상미술의 영역을 탄생시켰다. 옵아트란, 기하학적 형태나 색의 보색대비를 이용하여 시각적 착각을 표현한 추상미술을 말한다. 옵아트 작품들은 빛이나 색깔에 따라 그림이 움직이거나,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현상이 보이기도 한다.
바자렐리는 평행선이나 바둑판무늬 같은 단순한 기하학적 모양이 반복되도록 화면을 설계했는데, 이때 무늬의 위치를 수학적으로 치밀하게 계산해 배치했다. 그 결과 위에 보이는 두 작품처럼 직선만을 이용해 곡면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이를 위해 바자렐리는 좌우 가장자리에 세로 길이가 더 긴 직사각형을, 위아래 가장자리에는 가로 길이가 더 긴 직사각형을 그렸다. 중심에는 직사각형이 아닌 정사각형을 그려 격자무늬를 완성했다.
그 결과 격자를 이루는 선들이 분명 모두 직선임에도 불구하고, 화면이 불룩한 곡면처럼 보이는 착시가 만들어졌다. 직선의 배치 간격과 도형의 크기를 달리해 작품의 입체감과 깊이감을 살린 것이다.
보너스 전시관 신비한 착시의 세계로
휴~, 다행히 반듯한 곡선을 성공적으로 그렸어! 그럼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
무슨 소리! 아직 끝나지 않았어. 마지막 관문이 남았지. 저 그림에는 대체 몇 명의 사람이 숨어 있는 걸까? 시간이 없어! 서두르지 않으면 또 다른 착시 미술관으로 들어가게 될 거야. 아참, 문제를 풀기 전에 전시된 작품을 꼼꼼히 감상하는 게 착시 미술관의 관람 수칙인 걸 잊지 마!
뭐어? 저 나무에 사람이 숨어 있다고?
과일+채소+꽃=사람?!
아름다운 꽃과 채소로 사람을 표현한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가 그린 초상화이다. 그는 여러 재료를 모아 그리는 ‘꼴라주’ 기법을 이용해, 초상화와 정물화를 혼합한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특히 이 작품은 점이 모여 선을 이루고 선이 모여 면을 이루듯 과일과 채소, 꽃을 모아 사람처럼 보이게 한 것이 특징이다. 작품을 구성하는 재료가 빈틈없이 공간을 매울 수 있도록, 수학적으로 공간을 분할하는 작업을 거쳤다.
허공을 달리는 소녀
독일의 화가 에드가 뮐러의 작품으로, 실제 거리에 크레바스가 생긴 듯한 착각이 든다.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한 뮐러는 몇 년 전부터 유럽 거리를 거대한 착시 공간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뮐러는 수백 제곱미터의 면적을 착시 공간으로 채우기 위해 거리에 따라 사물의 크기를 반드시 계산해 그린다. 극대화된 원근법을 이용한 것이다.
3차원을 2차원으로 분리하라!
르네상스 시대의 대가들이 착시를 일으켰던 방법과는 정반대로,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으로 바꾸는 방법도 있다. 이 작업은 ‘사진의 합성'으로 완성된다.
프랑스의 건축 사진작가 조르주 루스는 미술과 건축의 경계를 허물고, 3차원 공간 위에 2차원이 공존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루스는 해당 장소에 대물렌즈와 주름상자, 반투명 렌즈가 장착된 사진기를 설치한 다음 유리 위에 장소의 일부를 그대로 본떠 그린다. 완성된 유리그림을 다시 공간에 설치한 뒤 사진으로 찍으면 작품이 완성된다. 현실에서는 공존할 수 없는 서로 다른 차원을 포개어 가상의 공간으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그림에는 일부러 원색을 이용한다. 확실한 분리감을 주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