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주방에 물이 안 나와. 오빠, 화장실은 어때?
뭐야? 화장실도 물이 안 나오잖아. 변기가 막힌 게 아니었어? 헐. 그럼 물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엄마, 아빠, 당분간 화장실 출입금지야.
지구가 극심한 가뭄에 몸살을 앓고 있다. 28개국이 물 기근 또는 부족 국가로 지정돼있고 2025년에는물 부족 국가가 약 34개국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나와 그 심각성을 모르고 있지만 일찍이 물 부족 국가에 속해있다. 즉 물 부족은 남의 일이 아니다. 특히 20년 뒤엔 아시아 인구의 40%가 심각한 물부족을 겪을 거라는 전망도 있다. 이에 세계는 지금 물을 절약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따라서 한 번에 많은 양의 물을 쓰는 수세식 변기는 물 낭비와 수질오염의 주범으로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체 한 번에 얼마나 많은 물을 쓰기에 문제가 되는 걸까? 가정용 수세식 변기의 경우 물통이 내장돼있기 때문에 변기의 물통 뚜껑을 열고 들어 있는 물의 양을 측정하면 변기의 용량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12L~20L의 물이 들어 있다. 즉 우리가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면 적어도 2L짜리 생수병 6병에 해당하는 물의 양이 한꺼번에 버려진다.
그런데 대부분의 여성은 대변을 볼 때 한 번만 물을 내리지 않는다.‘뿌지직’하는 소리를 다른 사람이 듣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중간에 한 번 더 물을 내리기 때문이다. 깔끔한 것을 선호하는 사람은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물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볼일 한 번으로 적어도 36L의 물을소비한다. 정수기에 꽂아 쓰는 생수통 하나가 18.9L이므로 볼일 한 번 보는데 생수통 2통을 쓰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1인당 하루 평균 63L의 변기물을 사용한다. 이는 하루 평균 7회(대변 1회, 소변 6회) 화장실을 이용한다는 가정 하에 나온 값이다. 즉 한국인은 하루 평균 315만t의 변기물을 사용하고, 1년이면 11억 4975만t에 이르는 물을 변기에 흘려보내는 셈이다. 이 양은 서울과 수도권에 물을 공급하는 팔당댐(저수량 2억 4000만 톤) 5개를 채운다. 가히 어마어마한 양이다.
변기물은 전체 수돗물에서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할까? 놀랍게도 수돗물의 52%가 욕실용수로 쓰이고이 중 약 52%가 변기물로 쓰인다. 전체 수돗물의 27%가 변기물이다. 그런데 2009년 한 해 동안 수돗물을 만드는 데 사용된 돈이 2조 5300억 원이라고 하니 변기물에 드는 돈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변기물을 아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물을 가득 채운 1.5L 페트병을 변기의 물통에 넣는 것이다. 그러면 한 번에 1.5L씩 물을 절약할 수 있다. 1인당 하루 평균10.5L(1.5L×7)의 물을 절약하는 셈이다.
대소변 구분형 변기로 바꾸면 대변 시 9L의 물을, 소변 시 6L의 물을 사용하므로 1인당 39L(3L×1회+6L×6회)의 물을 덜 쓴다. 이 변기는 대변물과 소변물을 누르는 스위치가 따로 있어 대변 스위치를 누르면 사이펀 마개가 9L의 물을 내려보내는 높이까지 올라가고 소변 스위치를 누르면 6L의 물만 나가도록 사이펀 마개의 높이가 덜 올라간다. 사이펀 마개는 서서히 내려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닫혀 변기통으로 물이 흘러 내려가지 못하게 한다.
변기 시트에 자동 물내림 장치를 설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변기에 앉아 있는 시간으로 대소변을 구분하고 사용자가 변기에서 엉덩이를 떼면 10초 뒤 자동으로 물이 내려간다. 이 장치를 이용하면 용변 시 물을 여러 번 내리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물을 가장 많이 절약하려면 절수형 변기로 바꾸면 된다. 12L짜리 구형 변기에서 6L 절수 변기로 바꾸면 하루 평균 42L(6L×7회)의 물을 절약할 수 있다.
현재 최소로 물을 사용하는 초절수형 변기는 중국에서 개발한 2.8L 변기다. 그런데 물의 양이 적어지면 변이 제대로 내려갈까?
서기원 대림대 건축설비소방과 교수는 “변기통에서 배설물이 빠져나갔다 하더라도 기존 배수관에 오물이 흐르면 관의 크기는 큰데 물의 양이 작아 문제” 라며 “물의 속도가 느려져 배설물이 멈춰설 가능성이 크다” 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초절수 변기에 맞는 배수관이 설치되지 않는 한 문제가 생긴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이펀 방식의 변기는 베르누이 정리로 절수한계를 계산할 수 있다” 며 “최소 5.8L의 물을 이용해
야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고 말했다.
수세식 변기의 위기는 물 부족 국가에 사는 우리들의 문제다. 무심코 내리는 변기물이 나중에 큰일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꼭 필요할 때만 변기물을 내리는 작은 실천 하나로 물 절약에 앞장서 보자.
한국인의 변기물 사용량과 용변 배출량
1일 변기물 사용량=1인 평균 63L×5000만 명=315만t
1년 변기물 사용량=하루 평균 315만t×365일=11억 4975만t
1일 대변량=하루 평균 225g×5000만 명=1만 1250t=10t 트럭 1125대
1일 소변량=하루 평균 1.5L×5000만 명=7만 5000t=10t 소방차 7500대
몇 일간 물이 안 나오면 어떻게 될까?
마시는 물도 걱정이지만 가장 시급한 건 용변을 처리하는 일이다. 지난 5월 경북 구미지역은 구미광역취수장의 물막이 벽이 붕괴돼 5일간 물이 공급되지 않았다. 단수가 되고 3일이 지나자 사람들은 아파트 현관, 후미진 거리 등 집 밖에 변을 보기 시작했다. 집 안 화장실에서 변을 보면 물을 내릴 수 없어 악취가 진동하자,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변을 본 것이다. 만약 전국적으로 3일 이상 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한반도 전체가 일명 ‘똥 천국’ 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구미시에서 벌어진이번 사건은 물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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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위기의 수학발명품, 수세식 변기
Part 1. 변기물을 내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Part 2. 수학자의 별난 발명품
Part 3. 물 먹는 변기는 다이어트가 시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