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학교에서의 수학교육을 대대적으로 수술한다고 발표했다. 실생활 수학을 강조하고 전자계산기 사용을 검토하며 학교 수학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에 수학동아는 수학교육 개선의 의미를 짚어보고, 앞으로 수학교육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봤다.
“수학, 어려워서 잘 안 보게 돼요.”
“수학을 좋아하는 애들도 있지만 싫어하는 애들이 더 많아요.”
서울에 있는 대치중과 서운중에 다니는 2학년 학생들의 답변이다. 수학은 오랜 시간 동안 학습해야 할 정도로 학교 교육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많은 학생은 어렵고 재미없는 과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수학은 머리에 쥐가 나는 과목입니다.”
“중학교까진 어찌어찌 따라갔지만 고등학교 때 포기했어요.”
20~40대가 주로 활동하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 회원이 ‘학교 다닐 때 수학 잘하셨어요?’ 라고 올린 게시물에 대한 답변 중 일부다. 물론 수학이 재밌었고 잘했다는 응답도 있었지만 소수였다. 학업을 마친 성인들도 학교에서 배운 수학에 대해 학생들과 의견이 비슷했다. 어떤 이는“학교는 문제풀이 양성소”라며 학교에서의 수학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강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이처럼 학교 수학교육은 오래전부터 문제점을 가진 채 지속되고 있다. 특히 수학교육은 문제 풀이를반복하는 형태로 획일화돼 학생의 창의성 발달을 막고, 흥미를 잃게 하고 있다. 교과부와 수학교육 전문가는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꾸준하게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사교육 시장에서는 수학이 ‘사교육이 꼭 필요한 과목’ 으로 인식되며 과도한 선행학습이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공교육 강화의 핵심은 수학의 재미
그동안 교육 당국은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을 강화하는 데 영어 과목은 전담팀을 두며 적극적으로 대책을 세우고 노력했지만 수학 과목은 그렇지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최근 교과부가 수학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인식하고, 사교육을 없애려는 노력보다는 공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필요한 방안과 노력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난 2월 23일 교과부는 초중고교 수학 과목을 실생활과 관련 있는 내용으로 쉽고 재미있게 바꾼다고‘공교육 강화-사교육 경감 선순환 방안’ 토론회에서 밝혔다. 수학교육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한 교과부가 수학에 대한 교육내용과 교육방법, 평가제도 등을 재검토하며 학교 수학교육에 대한 전면적인 개선에 나선 것이다. 학교 수학교육에 대한 방향을 새롭게 바꾸고 근본적인 변화를 꾀한 셈이다. 설동근 교과부 제1차관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잘하는 학생은 더 잘하게, 조금 뒤처지는 학생은 수학에 흥미를 느끼며 학습할 수 있도록 할 것” 이라며 “수학을 누구나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바꾸겠다” 고 밝혔다.
교과부가 학교 수학교육을 개선하겠다며 발표한 정책은 크게 ➊ 실생활 연계 교육 강화와 암기식 학습 내용 줄이기 ➋ 재미있는 수학을 위해 수준별ㆍ체험중심 교육 확대 ➌ 수학 평가 방법 개선으로 사교육 줄이기 ➍ 수학교사의 전문성 확보 ➎ 학교 수학교육을 위한 지원체제 구축 5가지다. 교과부는 이를 기초로 5월까지 학부모와 교원,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수학교육 정책을 확정한 뒤,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나갈 방침이다. 그런데 이 정책만으로는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특히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이며, 실질적으로 무엇이 달라지는지 알려면 항목별 세부사항을 살펴봐야 한다. 이 중에서 학생이나 학부모가 실감할 수 있는 큰 변화는 실생활과 관련된 수학교육, 체험학습과 이동수업, 시험에 전자계산기 사용 3가지다.
가장 먼저, 첫 정책과 관련 있는 생활수학이다. 실생활에 쓰이는 수학을 직접 경험하면서 배우도록 해 수학이 쉽고 재밌으며 친근하게 느끼도록 바꾼다는 내용이다. 생활수학은 결국 과학이나 기술, 공학, 예술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 분야들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실생활 수학교육 자료, 수학동아에 풍부”
실생활 수학을 결합한 수업은 어떤 것일까. 2002년 서울사대부여중에 근무할 때 좋은 수학 수업을 하는 교사로 꼽힌 장희원 교사는 다음과 같이 실생활을 활용해 수학 수업을 진행했다.
① 함수 단원 첫 시간에 ‘유럽 배낭여행’ 사진과 사연을 보여주며 수업을 시작한다. 얇은 옷차림이 알프스 정상에서는 두꺼운 겨울옷으로 바뀌는 점을 사진으로 보여주며, 여름에 만년설이 가능한 이유를 학생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도록 한다. 이때 학생이 높이에 따라 기온이 변한다는 사실을 말하면 이런 관계가 곧 함수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② 수학과 미술을 연계해 수학 수업을 진행한다. 세계적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과 이를 전시하는 미술관 입장권을 보여주며 입장료 문제를 제시한다. 아빠와 아들, 아들 친구 2명이 미술관에서 나누는 다음의 얘기를 들려준다. 아들: 아빠 입장료가 얼마예요? 아빠: 다 합친 입장료가 2700원이다.아들: 지난번에 엄마와 아빠랑 왔을 때는 2900원 냈는데, 오늘은 4명이 왔는데 왜 더 싸요? 아빠: 이미술관은 어른과 어린이의 입장료가 다르단다. 그리곤 학생에게 왜 4명일 때가 3명일 때보다 더 싼지 아들의 의문점을 풀어달라고 요청한다.
‘PD수첩’에 소개된 경기 광주 남한산초등학교에서는 학생이 직접 문제를 만들고 다른 학생이 풀도록 했다. 이때 학생들은 주로 실생활 사례를 활용했다. 4학년 학생이 낸 한 문제를 보면 ‘3000원을 들고 시장에 가서 오이를 사는 데 5분의 3을 썼다. 얼마가 남았을까?’ 한 학생은 ‘600원이 5개 모이면 3000원이 되므로 5분의 3은 이 중 3개를 쓰고 2개가 남은 것을 뜻하므로, 1200원이다’ 라고 답변했다. 시장에서 채소를 살 때 돈을 사용하는데, 이것을 분수에 적용한 생활수학의 예인 셈이다.
그런데 많은 학생은 학교에서 배운 수학이 실생활에 쓰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성인도 실생활에서 초중고교에서 배운 수학을 쓰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반면 수학 전문가들은 실생활이 곧 수학이라고 말한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칠 때 실생활과 관련한 수업을 거의 진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종수 서울교대 수학과 교수는 “학생이 수학을 생활에 접목할 수 있도록 하는 생활수학이 의미있는 수학” 이라며 “하지만 생활수학 전문가가 드물어 초기에는 고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하 창의재단)에서 수학교육을 연구하며 이번 발표에 관련된 김동원 박사는 “실생활을 이용한 수학교육 사례는 아직 드문 편”이라며“월간 수학동아가 소개한 다양한 실생활 속 수학 내용이 현재수준에서는 아주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추천한 수학동아에는 생활수학 예가 많이 소개돼 있다. 16줄의 김밥과 20개의 음료수를 남김없이 나눠줄 때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나눠주는 방법, 시계의 초침ㆍ분침ㆍ시침이 돌면서 만날 때마다 드러나는 약수와 배수의 관계, 크기가 달라 3000원에 4개와 7개인 복숭아 중 어느 것이 더 경제적인지, 음료수를 담는 용기가 원기둥인 이유, 우리나라에 2000원짜리 화폐가 없는 이유 등이다.
수학은 한 번 잘못 알거나 막히는 부분이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것이 반복되면서 이어져, 결국 수학은 열심히 해도 실력이 늘지않는 어려운 과목으로 인식된다. 이런 관점에서 실생활과 연관된 수학은 잘못 알 가능성도 적고, 막히는 부분도 쉽게 풀어낼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그만큼 생활 상식도 중요해진다. 실생활과 수학의 연관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적절하게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해지는 셈이다. 수학교육에서 실생활 사례를 활용하거나 과학이나 예술 등과 연관된 다양한 생활수학 사례를 잘 이해하며, 이를 응용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전자계산기 도입은 뜨거운 감자
그다음으로 두 번째 정책과 관련 있는 체험학습과 이동수업이다. 수학 관련 체험학습이 강조되고, 수준별 수학 수업이나 효과적인 수학 수업을 하기 위해 수학교육 전용 교실에서 수업하는 이동 수업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정책이 확정되지 않아 어느 정도 규모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과학실험실처럼 수학교육을 위한 전용 교실을 만들어 효과적인 수학수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학교 교육환경이 바뀔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점차 학생의 수학 지식과 이해 수준에 따라 수준별 수업도 시도될 것으로 보인다. 수학동아리나 창의력캠프, 수학체험전처럼 대외적인 활동도 강조된다. 특히 수학교육 전용 교실이 만들어지면 과학실험도구처럼 수학을 체험할 수 있는 ‘수학체험도구’ 가 갖춰질 예정이다.이렇게 되면 수학체험도구를 활용하는 활동도 자연스럽게 많아질 것이다.
마지막으론 세 번째 정책인 수학 평가 개선과 관련해 시험 볼 때 전자계산기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7차 교육과정에서 전자계산기 사용을 권고해 교과서에 전자계산기 문제가 일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시험에서는 사용되고 있지 않다. 물론 전자계산기는 고등학교 수학 평가에서 사용 여부를 검토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는 수준인데다 파급 효과가 엄청나서 최종적인 결론까지 변수가 많다. 특히 수학교육 전문가 사이에서도 전자계산기 도입에 대한 찬반이 엇갈린다.
하지만 전자계산기 도입을 검토한다는 것은 도입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전자계산기가 도입되면 수학교육, 특히 평가방법에서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계산기로 풀 수 있는 문제는 기존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전자계산기가 도입되면 암기나 계산보다 문제의 맥락을 이해하고 결과를 얻는 과정을 찾아내는 능력이 중요시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단순한 문제 풀이식 수학 평가는 생각하는 과정을 중시하는 형태로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배종수 교수는 “전자계산기 도입은 수학교육에서 평가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논의” 라며 “전자계산기가 도입되면 과도하게 강조된 단순 계산과 암산이 사라질 것” 이라고 설명했다.
교과부는 이번에 새로운 수학교육 정책을 발표한 뒤 2월 25일 조직개편을 단행해 과기인재양성과에 수학교육정책팀을 신설했다. 또 김도한 서울대 수학과 교수, 강옥기 성균관대 수학교육과 교수 등 대학교수 4명과 초중고 교사 4명, 언론ㆍ연구기관ㆍ학부모 6명 총 14명으로 수학교육개선위원회를 구성해 3월 18일 첫 회의를 열었다. 교과부는 위원회에서 초중고와 대학,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받아 수학교육 선진화 방안과 개선ㆍ논의사항을 이끌어내고, 이를 토대로 4월 말에 공청회를 열어 종합적인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그리고 5월까지 수학교육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다.수학교육연구센터도 5월까지 창의재단에 설치된다.
한편 이번 발표에는 창의재단이 박경미 홍익대 수학과 교수팀과 함께 우리나라 초중고교 수학교육 발전방향에 대해 연구해 지난해 5월에 발표한 보고서의 내용이 주요하게 언급됐다. 이 보고서에서 박경미 교수팀은 크게 수학수업 개선 방안, 수학 수업 전용교실 도입, 수학교육에 컴퓨터나 계산기 같은 공학적 도구 활용, 수학 평가 개선 사례, 수학교사 연수프로그램 개선 방안 5가지를 제시했는데, 이번 정책에서 이들 내용이 모두 언급됐다.
교과부의 이번 발표에 대해 김도한 교수는 “실생활이 활용된 수학, 과학을 바탕으로 배우는 수학을강조하는 기본 방향은 좋다” 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어 수학계 의견을 모아 바람직한 방향으로 결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며 신중하게 접근해 달라고당부했다. 배종수 교수는 “교과부의 수학교육 개선 방향 자체에 대해서 전문가 대부분이 찬성할 것” 이라며 “이번 정책으로 수학교육이 크게 개선될 것” 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