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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의 나라

제11화 연월기를 완성하다

공주의 말이 맞았다. 도성 안에 나돌던 나쁜 소문은 열흘도 못 되어 바람처럼 사라졌다. 전쟁과 가뭄 걱정으로 흉흉하던 도성 안은 오히려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활기가 넘쳐났다.

“연월기라는 것이 정말 성공했으면 좋겠어.”

“나도 그거 한번 타 봤으면 좋겠구먼.”

백성 사이에선 연월기의 성공을 기원하는 바람이 늘어났다.

그 무렵 천지관에선 거북의 등껍질 모양을 한 연월기 뚜껑 위로 거대한 쇠침이 꽂혔다. 연월기가 완성된 것이다.

“드디어 내일이군.”

황산사의 짧은 말 속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내일이면 일식이 일어나고, 때를 맞춰 연월기는 작동하게 될 것이다. 연월치인의 오랜 노력이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큰일을 벌일 땐 먼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중요하지. 오늘 밤은 목욕재계하고 마음을 오롯이 하세.”

천지관 마당엔 커다란 목욕통이 마련되었다. 황산사를 시작으로 장도사와 천복, 그리고 지오의 순으로 목욕했다. 휘영청 달빛이 유난히 고운 밤이었다. 목욕통으로 발을 담그자, 통 속에 비친 달님이 먼저 반겼다. 출렁이는 물결에 놀란 듯 노르스름한 달님도 찰랑거렸다. 지오는 달 속에 빠진 기분마저 들었다. 달과 노닌 탓일까, 몸은 물론 마음까지도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창포물에 머리까지 감은 후엔 모두 방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오늘밤은 푹 자둬야 혀. 내일이면 먼 여행을 떠날 테니.”

천복이 이불깃을 목까지 끌어당기며 말했다. 하지만 매일 밤 지오를 괴롭히던 장도사와 천복이 코 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바스락! 바스락!’ 이불 뒤척이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한참을 뒤척이던 지오는 문득 노란빛을 본 듯했다. 빛은 등 뒤에서 비쳐오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던 지오의 입술로 빙그레 미소가 번졌다. 달님이었다. 꽃살문 사이로 달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잘 될 거야.’ 달님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다. 지오도 달님을 향해 속삭였다.

“달님만 믿어요. 내일이면 누나를 만나게 되는 거죠, 그렇죠?”

지오의 속삭임을 들은 걸까, 달빛이 노랗게 웃었다.

다음 날, 연월기는 천지관 마당에 우뚝 세워졌다. 황산사와 장도사, 천복은 연월기를 살피느라 새벽부터 분주했다.

지오는 꽃문양이 곱게 수놓인 비단 보따리부터 챙겼다.

“누나를 만나면 함께 나눠 먹으렴.”

아침 일찍 공주가 보내온 인절미 보따리였다. 조그만 보따리를 허리춤에 질끈 묶자, 가슴이 콩콩 뛰었다. 누나를 만나러 간다고 생각하니 연월기를 타는 일이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신이 났다.

연월기를 살피는 일이 끝나고, 모든 준비가 끝날 무렵, 천지관 마당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참관이 허락된 대신들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황산사, 고생하였네. 꼭 성공할 걸세.”

“그럼, 그럼. 성공하고말고.”

겉으로는 축하의 인사말을 건넸지만, 대신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정대섭 대감의 표정은 마치 쓴 약초를 씹는 듯했다. 완성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던 연월기가 완성되고 보니, 몹시 당혹스러운 눈치였다.

“상감마마 납시오!”

임금님과 공주가 천지관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대신들과는 달리 임금님과 공주의 표정은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공주는 지오를 향해 눈을 찡긋해 보였다. 잘 하고 돌아오라는 뜻이었다. 지오도 눈을 찡긋거리며 웃었다. 문득 지오의 눈에 공주의 얼굴이 누나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누나, 기다려. 곧 만나게 될 거야.”

기도를 하듯 지오는 중얼거렸다.

임금님과 공주가 미리 준비된 의자에 앉는 순간,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짐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연월기가 완성되었도다. 부디 성공하여 이 나라의 미래를 밝혀주길 바라노라.”

임금님의 목소리가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로 쩌렁쩌렁 울렸다. 그 순간, 서서히 몰려온 어둠이 순식간에 세상을 뒤덮으며 주위가 컴컴해졌다. 일식이 시작된 것이다.

“지오야, 지금이야. 연월기에 올라라.”

횃불을 등지고 황산사가 연월기의 문을 열며 소리쳤다. 문은 연월기 몸통에 그려진 그림 중, 십이지의 첫 동물인 쥐의 그림이 그려진 곳에 있었다.

“끼이익!”

굉음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연월기의 내부가 드러났다. 십이지 그림과 십간으로 꾸며진 내부는 마치 거대한 시계 같았다.

“우와!”

“세상에!”

연월기 밖에서 대신들의 탄성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연월기 문이 닫히자 탄성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연월기 안에는 네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의자는 어떤 진동에도 움직이지 않도록 밑판에 단단히 고정된 상태였다.

황산사는 지오부터 의자에 앉게 했다. 그리고 짐승의 가죽으로 엮은 끈으로 지오의 몸을 의자에 고정했다. 천복과 장도사도 끈으로 서로 묶어주었다. 마지막으로 황산사가 제 몸을 의자에 묶는 것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드디어 떠나는구먼.”

천복이 헤벌쭉 웃었다. 장도사도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이왕이면 절세미인들이 많이 있는 곳으로 갔으면 좋겠어. 안 그래요, 황산사?”

장도사의 말에 황산사도 빙그레 웃었다.

“지오야, 연월기의 시간은 다섯 곳에 맞추어져 있어. 2년 전 과거의 한 시간이 맞추어졌고, 100년 후, 200년 후, 그리고 300년, 400년 후의 시간으로 맞추어져 있지. 성공한다면 가장 먼저 2년 전으로 가게 될 거야.”

황산사는 크고 깊은 숨을 몰아쉬더니, 지그시 눈을 감았다. 지오도 따라 눈을 감았다. 천복과 장도사도 기도하듯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꽈광! 쾅!”
란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번뜩이듯 스쳐 갔다. 연월기는 마치 몸서리 라도 치듯 부르르 떨었다. 지오의 몸도 풍랑 속의 배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오는 이를 악물며 두 손으로 의자를 바투 쥐었다. 연월기의 몸통이 돌아가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한 몸통은 차츰 속력이 빨라졌다.

지오는 두 눈을 살그미 떠보았다. 십이지 시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제 눈으로 보고 싶었던 것이다. 십이지 그림들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시계의 회전은 점점 빨라지더니, 어느 순간 지오의 눈동자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속력이 되었다. 쥐, 소, 범, 토끼,용, 뱀, 말 등 열두 마리의 짐승들이 눈앞에서 엉키기 시작했다. 눈앞이 가물가물해지며, 정신이 자꾸 아득해졌다. 지오의 손이 문득 허리춤에 묶인 보따리를 잡았다. 채 식지 않은 인절미의 온기가 손으로 전해졌다. 누나의 향기 같은 콩고물 냄새가 스멀스멀 퍼졌다. ‘지오야!’ 금세라도 누나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꽝! 콰광!”

벼락이라도 치는 듯한 소리가 다시 한 번 연월기를 내리친 건 그때였다. 순간 연월기는 요동치듯 흔들렸고, 지오와 황산사, 천복과 장도사의 몸도 요동을 쳤다. 지오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누나…… 누나…….”

지오는 누나를 부르며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여긴 대체 어딜까? 부시게 쏟아지는 빛에 지오는 눈을떴다.

“지오야! 지오야!”

빛 사이로 낯익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누나?”

지오는 손등으로 제 눈을 두어 번 세차게 비볐다. 빛 속으로 누나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성공이야! 과거로 온 거야! 누나가 나를 부르고 있어. 누나가!’

누나를 잡으려 막 손을 뻗치는 순간이었다.

“지오야, 괜찮아?”

덥석 지오의 손을 잡는 따뜻한 손!

그러나 가까이 다가온 누나를 본 순간, 지오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공주님!”

눈앞에 선 사람은 누나가 아닌 혜명 공주가 아닌가. 공주의 뒤로 뛰어들어오는 병사들과 대신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제야 지오는 모든 걸 깨달았다.

‘실패했어!’

연월기의 실패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해괴망측한 도구로 임금과 백성을 능멸한 연월치인 무리에게 엄벌을 내리소서.”

“하늘을 기만한 이들입니다. 당장 처형하소서.”

연월치인을 처형하라는 대신들의 상소가 이어졌다. 천지관은 부서졌고, 연월기는 어딘가로 버려졌다.
연월치인에게도 큰 벌이 내려졌다. 황산사는 강화도로 유배되었고, 천복과 장도사는 곤장을 맞은 후, 궁궐에서 쫓겨났다.

“지오는 어린아이입니다. 곤장을 이겨내지 못할 것입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공주의 간청으로 지오는 간신히 곤장은 면할 수 있었지만, 바로 궁궐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지오가 궁궐 문을 나서는 참이었다. 공주를 모시는 상궁이 달려오더니, 봉투 하나를 지오의 품에 찔러주며 말했다.

“공주님의 서신이야.”

지오는 궁궐을 나오자마자, 품에서 봉투를 꺼냈다. 봉투 속엔 하얀 한지에 적힌 공주의 글씨가 보였다.

[지오야, 천복과 장도사는 지난번 저잣거리에서 보았던 대장간에 있을 거야. 곤장을 맞고 기절한 두 사람을 그리로 옮기도록 병사들에게 부탁했어. 그리고 이 지도에는 연월기가 버려진 곳이 표시돼 있어. 이리로 가서 연월기를 찾도록 하여라.]

글씨 아래엔 연월기가 버려졌다는 산이 지도에 그려져 있었다.

지오는 두 주먹을 다부지게 쥐었다. 그리고 지도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2011년 03월 수학동아 정보

  • 이향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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