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거진 숲 속, 작고 아담한 절에 스님과 두 명의 동자스님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스님은 평소 수학에 조예가 깊으셨어요. 수학을 공부하면 부처님의 마음을 더 느낄 수 있다고 말씀하곤 하셨지요. 스님은 부처님이 태어나신 날, 부처님의 뜻을 더 깨닫고 싶다 하시며 홀로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동자들도 수학으로 부처님의 마음을 깨닫기 바라며.
스님이 남긴 첫 번째 편지
너희들과 함께 지낸 지 벌써 5년이 넘었구나. 8살짜리 꼬마였던 너희가 지금까지 건강하게 자라 주어 고맙고 대견하단다. 언젠가 인연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지?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인연을 만나고 다양한 관계를 맺는단다. 친구들과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그리고 그 밖의 셀 수 없는 만남이 앞으로 너희에게 다가올 것이다. 인연은 수학의 함수와도 같지. 좋은 인연은 좋은 결실을 맺는단다. 작은 만남도 가볍게 여기지 말거라.
너희가 좋아하는 보리떡을 만들어 두었으니 사이좋게 먹으면서 함수와 인연이 어떻게 비슷한지 생각해보렴. 함수를 이해하면 부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구나. 두 번째 편지는 마당에 있는 가장 큰 고목나무 가지에 넣어 두었다.
우리가 절에 들어온 지 벌써 5년이 지났구나. 시간이 참 빠른 것 같아.
그러게. 우리 처음엔 참 많이 싸웠는데…. 먹을 것 나눠 먹을 때 말이야. 하하. 그런데 스님께서 말씀하신 인연과 함수는 정말 비슷한 것 같아. 함수는 두 집합 사이의 관계고, 우리가 겪는 많은 인연도 관계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
네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 관계를 맺으면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처럼, 우리도 지난 시간동안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줬겠지. 그런데 함수…. 들어는 봤는데, 그것도 숫자의 한 종류인가? 자연수, 정수, 분수…, 이런 것처럼?
헉! 함수는 수의 종류가 아니야. 자~, 내가 함수를 설명해 줄게.
함수(函數)
함수의 함은 상자를 뜻하는 상자 ‘함’이고, 수는 숫자를 의미하는 숫자 ‘수’야. 즉 함수는 ‘상자의 수’란 뜻이지. 왜 ‘상자의 수’라고 했을까? 그림을 봐~. 상자속에 보리를 넣었더니 보리떡이 나왔어. 상자는 곡식을 넣으면 떡을 만들어 주는 기계지. 보리를 넣으면 보리떡이 나오고, 현미를 넣으면 현미떡이 나와. 함수의 함은 상자를 뜻하는 상자 ‘함’이고, 수는 숫자를 의미하는 숫자 ‘수’야. 즉 함수는 ‘상자의 수’란 뜻이지. 왜 ‘상자의 수’라고 했을까? 그림을 봐~.
아~! 그렇구나. 그렇다면, 스님이 말씀하신 인연과 함수가 비슷하다는 게 뭔지 좀 알 것 같아. 어떤 함수냐에 따라 나오는 값이 나오는 값이 달라지는 것처럼 어떤 인연을 맺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거로군.
그래. 우리가 이렇게 같은 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특별한 인연일 거야. 우리 관계는 어떤 함수일까? 하하.
스님이 남긴 두 번째 편지
스님이 두 번째 편지는 고목나무 가지에 숨겨 뒀다고 하셨어. 얼른 가서 편지를 찾아보자.
一物者 何物
0’古人頌韻
古佛未生前
凝然一相圓
釋迦猶未會
迦葉豈能傳
色卽是空 空卽是色
사랑하는 동자들아.
나는 평소에 0이란 숫자를 참 좋아한단다. 0은 마치 우리가 사는 인생과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0은 없지만 있는 숫자잖니? 인생을 살아 보니 우리 삶에는 없는 것 같지만 있는 것도 있고, 있는 것 같지만 없는 것도 많더구나. 너희들이 언제나 0의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욕심내지 말고…. 마지막 편지는 연못 옆 가장 큰 돌멩이 밑에 두었단다.
찾았다! 앗? 이게 뭐야! 스님이 우리를 괴롭히려고 이런 편지를 쓰고 가셨나 봐.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우리 그냥 밖에 나가서 놀자. 스님도 안 계신데… .
안 돼. 스님이 우리에게 뭔가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하셨잖아. 음사명대사의 스승님인 서산대사님의 ‘선가귀감’이란 책에서 본 글이야. 언젠가 스님이 읽어 보라고 하셔서 읽은 적이 있어. 그리고 두 번째 글은 반야경에 나오는 글귀야. 내가 한 번 읽어 볼게.
一物者 何物 (일물자 하물)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0’古人頌韻 (0’고인송운) 0’ 옛 어른은 이렇게 읊었다.
古佛未生前 (고불미생전) 옛 부처님이 나시기 전에
凝然一相圓 (응연일상원) 의젓한 동그라미
釋迦猶未會 (석가유미회) 석가가 몰랐거니
迦葉豈能傳 (가섭개능전) 어찌 가섭이 전하랴.
色卽是空 (색즉시공)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없어지는 것이다.
空卽是色 (공즉시색) ‘없는 것은 곧 있는 것’
집착에서 벗어나면 없는 것이 곧 있는 것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와~! 대단해.
‘선가귀감’은 최초로 문헌에 숫자 0이 등장한 책이야. 스님은 수학을 좋아하셔서 평소에도 서산대사님의 ‘선가귀감’을 자주 읽으셨지. 어쩌면 인도에서 숫자 0을 쓰기 훨씬 전에 부처님은 0을 깨달으셨던 것 같아. 숫자 0은 없지만 있는 수…. 0의 마음으로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을 말하는 걸까?
수학에서 0은 양수와 음수를 구분하는 기준 역할을 하는 수야. 없지만 부족하지 않은 수…. 0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중심을 지키는 숫자지.
수학에서 0의 성질
0은 계속 더하거나 빼도 0이다.
0에 어떤 수를 곱해도 그 값은 0이다.
음수와 양수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에서 0의 가르침
불교의 본질은 마음이다.
‘마음이 곧 부처’ 라는 돈오 정신.
치우치지 않은 중도의 정신.
공(空)사상 , 무소유.
숫자 0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많지 않더라도 부족하지 않은 것을 감사하여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 어제 보리떡을 나눠 먹을 때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욕심냈던 것이 부끄러워.
괜찮아~. 나도 그랬는걸. 앞으로 0처럼 마음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노력할래.
스님이 남긴 세 번째 편지
벌써 스님이 떠나신 지 3일째야. 마지막 편지를 찾아보자. 연못 옆 가장 큰 돌멩이 아래에 두셨다고 했어. 빨리 가 보자.
와~! 연못에 핀 연꽃이 정말 예쁘다. 그런데 연못 옆 가장 큰 돌멩이라면 여긴데…. 앗! 찾았어. 스님이 두고 가신 편지야.
마지막 편지구나.
오늘은 너희에게 과제를 주려고 한다. 6개 단어의 뜻을 조사하고 크기가 작은 것부터 큰 순서대로 나열해 보거라.
刹那, 無量數, 不可思議, 瞬息, 模湖, 恒河沙
너희가 서로를 아끼는 마음은 無量數와 같고, 刹那를 소중히 여기기를 바란다.
이번에도 한자를 읽는 것은 내 몫인가? 하하. 6개의 단어를 읽으면 다음과 같아. 평소에 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도 많은데?
刹那(찰나), 無量數(무량수), 不可思議(불가사의), 瞬息(순식), 模湖(모호), 恒河沙(항하사)
모두 수와 관련된 단어야. 불경에서 본 적이 있어.
이번엔 네 덕을 보겠구나. 그런데 저 단어가 각각 의미하는 수는 얼마야?
우선 큰 수와 작은 수로 나눌 수 있어. ‘무량수’, ‘불가사의’, ‘항하사’는 큰 수에 속하고, ‘찰나’, ‘순식’, ‘모호’는 작은 수야. 무량수는 10의 68제곱. 무량대수라고도 해. 부처님의 헤아릴 수 없는 덕을 무량공덕이 라고도 하잖아. 불가사의는 많이 들어 봤지? 10의 64제곱이야. 말로 표현하거나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경이로운 상태를 뜻해. 세계 7대 불가사의란 말도 이런 의미에서 나온 거야. 항하사는 10의 52제곱. 갠지스 강의 모래란 뜻이야. 모래알처럼 많다는 뜻이지. 그 밖에도 불경에는 큰 수를 나타내는 단어가 많이 있어. 이걸 한번 봐.
그럼 6개의 단어를 작은 것부터 큰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겠구나.
찰나, 순식, 모호, 항하사, 불가사의, 무량수
무량수와 찰나의 실제 크기를 알고 보니 스님의 말씀이 더 와 닿는 것 같아. 정말 서로 많이 사랑하고, 아주 짧은 시간도 소중히 여기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겠어.
그러게. 나도 앞으로 항하사만큼 넓은 마음을 갖고, 모호만큼도 누구를 미워하지 않을래.
아흠~. 이제 좀 졸려. 우리 순식간에 씻고 자자. 내일은 스님이 오시니까. 하하.
다음 날, 스님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 오셨습니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동자들이 며칠 안 본 사이 마음이 부쩍 커진 것 같았지요. 스님은 동자들과 절 마당에 핀 목련을 보며 봄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먼 곳에 있지 않다고…. 봄에 마음껏 자태를 뽐내는 꽃처럼 아름답게 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