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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국제수학자대회 유치의 기적을 일구어 낸 수학자

국제 수학자대회 유치위원장 박형주 교수


국제수학자대회 유치위원장 박형주 교수


지난 4월 19일, 밤늦게 중국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 한국의 수학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바로 우리나라가 2014년 열릴 국제수학자대회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지난 2년간 수학계 최대, 최고의 행사를 우리 땅에서 열기 위해 흘린 땀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그 결실의 의미를 알기 위해 국제수학자대회 유치위원장으로 활약한 박형주 교수를 만나 보았다.

“국제수학자대회는 학문 분야를 통틀어 가장 오래 되고 가장 큰 행사입니다. 국제수학자대회 개최는 한국 수학에 있어 커다란 도약의 계기가 될 겁니다.”
 

현 포스텍 수학과  교수^박형주 교수


우리나라가 국제수학자대회를 유치한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냐는 질문에 박 교수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국제수학자대회는 1897년에 스위스 취리히에서 1회 대회가 열린 이래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을 빼고 4년에 한 번씩, 지금까지 총 25회가 열렸다. 2014년에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는 제27회가 된다. 개막식에서는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때문에 온 세계 수학자들의 눈과 귀가 집중된다.

“국제수학자대회가 열리고 나면 그 나라의 수학 수준이 급격히 높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수학자는 물론 대중들의 관심도 모으고, 잠재력이 있는 젊은 수학자들이 국제 무대에 데뷔해 자신감도 키울 수 있습니다. 또한 연구비를 비롯해 수학을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좋아지기 때문에 해외에서 활동하는 유능한 수학자들이 국내로 돌아오게 될 겁니다. 실제로 지난 2002년에 베이징에서 대회가 열린 뒤 5~6년 사이에 중국 수학자들이 발표한 논문 수가 2배로 늘어났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학 수준은 논문 수로만 따졌을 때 세계 12위다. 일 년에 600~700편의 논문이 나오는 것으로 20년 전에 비해 수십 배나 늘어났다. 그러나 질적인 면에서 수준을 판가름하기는 쉽지 않다. 수학에서는 단순한 논문의 수보다는 얼마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들어 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준 높은 연구를 하면 유명한 학회에서 강연을 해 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옵니다. 그런 요청을 많이 받으면 국제적으로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수학자들도 강연 요청을 받는 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점차 수준을 인정받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수학자대회를 계기로 더 높이 뛰어올라야죠.”

2007년 대회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 이래 마침내 성공하기까지는 여러 가지 난관이 있었다. 게다가 2010년 대회가 인도에서 열리기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2회 연속 같은 대륙에서 개최하지 않는다’라는 관례에 따라 우리나라가 2014년 대회를 유치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박형주 교수가 국제수학자 대회 유치위원회 결성축하연에서 2014년 대회를 유치하는 일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작년에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유럽수학회에 지원을 요청하러 간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회 장소를 결정하는 국제수학연맹의 비공식적인 입장은 ‘absolutely impossible’(절대로 불가능하다)이었죠. 그런 상태에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박 교수는 그런 상황으로 인해 좌절하기는커녕 오히려 투지가 불타올랐다고 회상했다.

“그런 관례를 깨기 위해서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있겠냐는 반응이 었습니다. 의욕이 꺾일 법도 한 상황이었지만 반대로 그게 더 열심히 뛰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특별한 게 없다면 특별한 걸 만들어 주마!’라는 식이었죠.”

2014년 국제수학자대회 유치를 놓고 우리나라와 경쟁한 나라는 캐나다, 브라질, 싱가폴이었다. 이 중 싱가폴이 중도에 포기하면서 경쟁은 우리나라와 캐나다, 브라질의 3파전이 되었다. 가장 가능성이 높았던 것은 브라질이었다. 브라질은 남미에서 국제수학자대회가 개최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내세워 국제수학연맹을 설득했고, 2006년부터 꾸준히 준비를 잘 해온 상태였다.

“어려웠던 상황에서 우리가 역전할 수 있었던 계기는 올해 초에 있었던 국제수학연맹의 실사였습니다. 3명의 실사단이 우리나라를 찾아 국무총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국제수학자대회에 대한 언론이나 대중의 관심을 생생하게 느끼고 돌아갔죠. 그 결과 한국 정부가 가장 우호적이고 의지가 강하며, 대중의 관심도 뜨겁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게다가 개발도상국 수학자 1000여 명을 초청하겠다는 의지도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한승수 국무총리와 만난 국제수학연맹의 실사단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 의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수학 고유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다

국제수학자대회가 진행되는 9일 동안에는 학술 발표는 물론 학생과 일반인을 위한 강연, 수학과 관련된 문화 행사 등이 함께 열릴 계획이다. 박 교수는 청소년들이 세계적인 석학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젊은 학자와 학생들이 자극을 받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박 교수 자신은 어떻게 수학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을까?

“대학교에서는 물리학을 전공했어요. 그런데 물리학을 하려고 수학을 공부하다 보니 수학이 다시 보이더라고요. 물리학의 도구로서가 아닌 수학만의 아름다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대수학에 갈루아 이론이라는 게 있는데, 이 이론을 사용하면 임의의 각을 작도로 3등분하는 게 불가능함을 증명할 수 있어요.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내려오던 문제가 명쾌하게 해결된 거죠. 저는 이런 아름다움에 매료됐던 거예요.”현재 포스텍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박 교수는 대수기하학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지금은 폭을 더 넓혀 공학에 응용되는 수학도 연구하고 있다. 컴퓨터가 세상 곳곳에 도입되면서 생기는 정보 보안과 같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저는 수학이 역사적으로 문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해요. 과학은 물론 기술이나 경제도 수학이 없으면 안 됩니다. 생물학처럼 수학이 필요 없을 것 같은 분야도 방대한 유전자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기 위해 수학을 이용하고 있고, 은행이나 증권사의 금융 상품도 수학이 없으면 만들 수 없어요.”

박 교수는 수학이 이렇게 현대 문명에 기여하고 있는 바를 알려 학생들이 수학을 공부하고, 수학자가 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수학동아의 창간이 반가운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입시 때문에 억지로 수학을 공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수학동아와 같은 잡지가 수학을 부담 없이 즐기는 문화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하.”

수학동아에 당부의 말을 잊지 않은 박 교수의 얼굴은 어느 새 우리나라 수학의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빛나고 있었다. 수학계의 올림픽, 월드컵이라고 하는 국제수학자대회를 통해 온 국민이 수학으로 즐거워지는 그 날이 기다려진다.

2009년 10월 수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 사진

    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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