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촌상은 매년 교육, 언론·문화, 과학·기술, 인문·사회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주는 상이에요. 어린이 기자들이 9월 30일, 제39회 인촌상 과학·기술 분야 수상자를 인터뷰했습니다.
전자 스핀의 새로운 상태를 밝히다
1987년,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는 인촌 김성수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인촌상을 만들었어요. 김성수 선생은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보성전문학교를 현재의 고려대학교로 개편했습니다. 인촌상에서는 매년 5개 분야의 상을 수여해요. 올해 과학·기술 분야 상은 포항공과대학교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가 받았어요.
김범준 교수는 빛을 이용해 물질의 새로운 성질을 밝혀내는 물리학자로, 특히 전자의 스핀을 탐구해요.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 중 하나인 전자는 원자핵 주위를 도는 궤도 운동을 해요. 동시에 스스로도 회전하는 성질을 갖는데, 이것을 전자의 스핀이라고 해요.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도는 운동이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라면, 전자의 스핀은 지구의 자전에 비유할 수 있죠. 전자 스핀이 한쪽으로 정렬되면 그 전자는 N극과 S극을 가진 작은 자석처럼 자기적 성질이 생겨요.
그동안 전자 스핀은 시계·반시계 두 방향만 관찰됐어요. 그런데 김범준 교수가 2023년 ‘네마틱’이라는 새로운 스핀 상태를 세계 최초로 발견했습니다. 네마틱 상태는 전자의 스핀 하나하나가 마치 액체 상태의 분자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면서도, 물질 속 수많은 전자 스핀 전체의 관계를 보면 고체 상태의 분자처럼 규칙성과 방향성이 보이는 상태를 뜻해요. 과학자들은 전자의 스핀에 네마틱 상태가 있을 거라고 예측했지만, 실제로 관측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김범준 교수는 X선 산란 분광기라는 장치를 직접 개발해 전자의 스핀 배열을 관찰했어요. 빛이 구름에 부딪혀 흩어지는 산란처럼, X선을 물질에 쏘아서 산란하는 정도를 각도별로 측정해 전자 스핀의 방향을 알아냈죠. 실험에 쓴 물질은 이리듐 원소가 산소와 결합한 이리듐 산화물로,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도는 궤도 운동과 전자 스핀이 서로 강하게 영향을 주어 독특한 스핀 상태를 관찰하기에 적합했어요.
전자의 스핀 방향으로 양자 컴퓨터가 정보를 저장하는 단위인 큐비트도 표현할 수 있어요. 새로운 스핀 상태를 이해하면 양자 컴퓨터의 큐비트를 더욱 정밀히 제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요. 김범준 교수는 “가속기의 성능을 높여 전자 스핀의 모습을 더욱 자세히 보고 싶다”고 밝혔어요.
“과학을 공부할 땐 원리부터 이해하세요”
시상식을 약 2시간 앞두고 김범준 교수가 어린이 기자단의 특별 취재에 응했어요. 어린이들과 인터뷰가 처음이라는 김범준 교수에게 거침없는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Q.스핀 네마틱 상태를 쉽게 설명해 주세요.
운동장에 모인 1000명의 학생을 떠올려 보세요. 학생들이 질서 있게 줄을 서 있으면 분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고체 상태예요. 제각기 뛰어다니면 분자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액체 상태죠. 이 학생들이 물질 속 무수한 전자의 스핀이라고 한다면, 스핀의 네마틱 상태는 학생들이 줄을 서 있진 않지만, 모두 같은 방향을 보며 뛰어다니는 것처럼 돌아다니는 모습 속에 규칙이 보이는 상태라 할 수 있어요.
Q.새로운 발견을 한 소감이 궁금해요.
처음에 이런저런 상상을 했어요. 스핀이 액체 같은 상태일 땐 어떨까, 고체 같을 땐 어떨까, 두 성질이 섞이면 어떤 모습일까….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번쩍하고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죠. 그때부터 가설을 세우고, 실험으로 하나씩 확인하면서 결과가 맞아떨어지면 가슴이 두근두근해요. 연구를 세상에 발표한 후에도 오래도록 여러 사람에 의해 제 가설이 맞았는지 검증이 이어져요. 그래서 새로운 발견을 하면 잠깐 기쁜 게 아니라 오랫동안 두근거림이 계속되죠. 제겐 이것이 과학의 가장 큰 재미예요.
Q.연구하면서 실패를 겪은 적은 없었나요?
10가지를 연구하면 7, 8개는 실패하죠. 그런데 과학자들에게 진짜 어려운 건, 지금 풀고 있는 문제가 풀 수 있는 문제인지, 애초에 풀리지 않는 문제인지 알 수 없다는 거예요. 과학엔 정답이 없으니까요. 실패했단 걸 알면 포기하고 다른 걸 시작하면 되지만, 실패인지 아닌지조차 모를 땐 정말 막막해요. 실패했을 때보다 그럴 때 더 힘들답니다.
Q.교수님의 발견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까요?
제일 어려운 질문이에요! 기초과학자들은 연구 결과를 어디에 쓸지 미리 생각하지 않고 순수한 호기심 때문에 연구하거든요.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처음 반도체를 발견한 물리학자들도 그걸로 컴퓨터를 만들 거라곤 상상 못 했어요. 원자의 구조를 알게 된 것이 원자폭탄 발명으로 이어질 줄도 몰랐죠. 스핀 네마틱 현상도 갓 태어난 아기처럼 많은 가능성을 가진 발견으로 생각해 주세요.
Q.훌륭한 과학자는 어떻게 될 수 있나요?
많은 학생이 시험 성적을 잘 받으려고 공부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뛰어난 과학자가 되려면, 남들이 먼저 연구해서 다 알려진 지식을 이해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아무도 가지 않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게 더 중요하답니다. 평소 과학을 공부할 때 문제만 잘 맞히려고 하지 말고, 그 안에 숨은 원리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