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천문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계산하는 이론천문학자입니다. 하늘을 직접 바라보는 일보다 컴퓨터와 칠판으로 작업하는 일이 훨씬 많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요즘 제 연구실에는 여러 대의 카메라가 자리 잡았어요.
빛 하나에 무지개 가득
2021년, 제가 다니는 한국천문연구원에서 K-SPE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K-SPEC은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진 다천체분광기입니다. 다천체분광기는 수많은 별과 은하를 관측해서 이 천체들의 스펙트럼을 분석하는 기계예요. 5000개 이상의 천체를 동시에 관측할 수 있죠.
그런데 스펙트럼이 뭘까요? 비가 오고 난 뒤의 하늘 또는 워터파크처럼 물이 많은 곳에서 무지개를 본 적이 있나요? 무지개는 햇빛의 스펙트럼이에요. 햇빛에는 다양한 색이 섞여 있어요. 햇빛이 공기 중에 있는 작은 물방울을 지나가면 물방울은 하나로 섞여 있던 빛을 여러 방향으로 펼치고,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연속적으로 보이는 무지개색이 나타나요. 이처럼 스펙트럼은 빛이 물질을 통과할 때 빛마다 꺾이는 정도가 달라서 펼쳐지는 빛의 띠를 말해요.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은 스펙트럼을 인공적으로 만들었어요. 1666년, 뉴턴은 투명한 삼각기둥인 프리즘을 이용해 햇빛의 스펙트럼을 관찰했습니다. 뉴턴이 본 스펙트럼은 빨간색에서 보라색으로 부드럽게 바뀌는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빛을 펼치는 도구인 분광기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19세기 초반 과학자들은 햇빛 스펙트럼 중간에 이상한 검은 선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검은 선의 정체는 1850년대 독일의 과학자 구스타프 키르히호프와 로베르트 분젠이 밝혀냈습니다. 키르히호프와 분젠은 특정 화학 물질이 불꽃에 들어갔을 때 나타나는 밝은 선과 햇빛 스펙트럼의 검은 선들이 정확히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어요. 태양의 대기에 있는 화학 물질이 햇빛 스펙트럼에 검은 선을 만들었지요. 이처럼 스펙트럼의 선을 관찰하면, 천체에 어떤 화학 성분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스펙트럼은 별의 온도계
스펙트럼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천체의 화학 성분만이 아닙니다. 19세기 말,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빈은 천체의 스펙트럼 속 가장 밝은 파장의 빛이 무엇인지 확인하면 천체의 온도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햇빛을 분석한 빈은 태양의 온도가 대략 6000。일 것이라고 추측했고, 이는 실제 태양 표면의 온도와 비슷했어요. 태양보다 더 빨간색을 띠는 별은 표면 온도가 더 낮고, 반대로 하얗거나 파란색을 띠는 별은 표면 온도가 더 높습니다.
20세기 초가 되자 과학자들은 밤하늘에 보이는 별의 대부분은 온도가 높을수록 더 밝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성질을 띠는 별을 주계열성이라고 해요. 주계열성을 연구한 과학자들은 별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알 수 있었지요.
2022년 7월, 미국항공우주국의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지구에서 1150광년 정도 떨어진 외계행성 WASP-96b의 스펙트럼을 관측했습니다. 과학자들이 스펙트럼 그래프에서 튀어나온 부분을 찾아내고, 그 부분의 파장을 더 자세히 연구한 결과, 이 행성에 물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이처럼 스펙트럼은 천체가 얼마나 오랫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자세히 알려줘요. 천문학자에게는 그 어떤 멋진 우주의 사진보다도 천체 스펙트럼 그래프가 훨씬 귀하답니다.
이런 스펙트럼을 한 번에 많이 관측할 수 있는 K-SPEC 프로젝트는 아직 진행 중이에요. 관측기기 개발이 다 끝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조만간 개발을 잘 끝내고, 우리나라의 힘으로 좋은 과학 성과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필자소개
홍성욱(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우주론과 외계생명 등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로, 우주의 가장 큰 구조물인 우주거대구조를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인공지능을 이용해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천문연구원 이론천문센터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