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본캐’는 변호사지만, ‘부캐’는 캣맘이자 동물 변호사예요.”
2월 26일 서울의 법률사무소 ‘백’에서 만난 채수지 변호사가 말했어요. 평소에는 법률사무소에서 이혼 소송 등을 대리하지만, 나머지 시간엔 동네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이자 동물을 옹호하는 변호사로 활동한다는 뜻이지요. 채 변호사는 동변에서 동물 관련 법을 연구하거나 동물 학대 사건을 고발하고, 동물보호단체에 법적 자문을 주는 활동을 해오고 있어요. 최근에는 동물을 방치한 것으로 논란이 된 대구의 모 체험동물원을 고발했지요.
“종종 방문하던 블로그에서 지난해 12월 논란이 된 소식을 접했어요. 제보자는 산속에 미어캣과 라쿤, 일본원숭이, 토끼, 염소, 양 등이 방치돼 있다는 글을 올렸어요. 먹이 그릇도 없고 물그릇도 메말랐다고요. 일본원숭이의 동물사는 보온이 안 돼 고드름이 얼었고, 거위의 동물사는 치우지 않은 분변이 가득하다는 얘기였죠.”
제보자가 직접 물과 먹이를 지고 8~9개월간 매일 산을 올라 동물들을 돌보고 있다는 글을 보고, 채 변호사는 동변을 통해 동물보호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이하 비구협)’에 연락했어요. 비구협이 제보자의 동의를 받아 1월 한 달간 각 종에 맞는 먹이 사료를 챙겨 주면서 동물들의 건강이 좋아졌어요. 2월부터는 환경부와 대구시에 민원을 넣고 언론에도 제보한 덕분에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줘 동물들에게 갈 곳이 생겼지요. 멸종위기종인 일본원숭이는 환경부가 데려가서 보호하고 있어요. 양은 다른 체험동물원에 팔렸지만, 비구협이 다시 사들여 임시로 보호하고 있고요. 지금은 낙타와 거위, 토끼가 남아 있답니다. 동물원 동물들을 구한 영웅들의 이야기, 더 자세히 들어볼까요?
Q동변이 해당 동물원을 고발했다고 들었어요.
동물원및수족관법과 야생생물법, 동물보호법을 해당 동물원이 위반했다는 내용으로 고발장을 써서 검찰에 냈어요. 우선 일본원숭이와 같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등록하지 않은 건 명백한 야생생물법 위반이에요.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보유하려면 적절한 사육시설을 갖춰서 환경부 장관에게 등록해야 하거든요.
이 외에도 일본원숭이를 고드름이 언 방에 위험하게 방치한 것, 동물들에게 먹이와 물을 주지 않은 것, 염소의 목에 밧줄을 매달아 사망에 이르도록 한 것 등이 문제라고 봤지요. 동물원은 먹이와 물을 충분히 줬다고 주장하지만, 제보자가 수개월 동안 블로그에 기록해 온 것을 법원이 인정해줄 거라 생각해요. 항상 사료통이 낙엽이나 눈으로 쌓여 있었거든요.
Q이런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동물원이 동물을 돈을 벌기 위한 도구로 취급해도 문제가 없도록 법적으로 규제하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해요. 적은 비용으로 관람객을 많이 모으기 위해 동물들에게 좋지 않은 환경을 제공하도록 만드니까요. 이를 해결하려면 동물이 고유의 습성을 보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곳만 동물원으로 인정하도록 ‘동물원 허가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환경부는 누구나 동물원을 등록할 수 있는 ‘동물원 등록제’를 허가제로 바꾸려고 추진하고 있어요. 허가 기준을 적절하게 만들고, 공무원과 시민단체가 동물원을 감시하고 감독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Q동물원 허가제에 동변도 영향을 받을까요?
올해 안에 법이 만들어진다면 동변은 동물보호단체들과 협력해서 동물원이 법을 잘 지키는지 감시하게 될 거예요. 작년에 동변은 돌고래를 데리고 있는 수족관을 몇 군데 고발했어요. 돌고래가 작은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정형행동을 보이고 수명만큼 살지 못한다는 이유였지요. 현재의 법으로는 처벌이 어려울 수 있지만, 동물원 허가제로 법이 바뀐다면 이런 동물원을 활발하게 감시할 수 있을 거예요.
Q동변에서 가장 보람찼던 일은 무엇인가요?
식용견 농장에서 강아지들을 전기봉으로 도살한 사건에 법적으로 참여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이 사건은 법원에서 두 차례 무죄 판결이 나서 동변을 포함한 여러 동물보호단체가 의견서를 냈어요. 법적으로 허용된 도살 방법이 아니라는 주장으로요. 결국 대법원이 사건을 ‘파기환송’했어요. 무죄가 아닌 것 같으니 다시 판단하라고 돌려보냈다는 뜻이지요. 이외에도 판사와 변호사들의 동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느낄 때 보람차답니다.
Q어떤 계기로 동물을 변호하게 됐나요?
20대 중반이었던 2015년,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동물도 감정이 있고, 고통을 느끼며, 공감과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반려견 덕분에 동물에 대한 새로운 세계가 열려서 여러 자료를 찾아보고 강의도 들었어요. 2015년 변호사가 된 후 동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동변을 알곤 가입했지요. 지금은 강아지 외에도 닭과 돼지, 동물원 동물 등 다양한 동물에 관심을 갖고 배워가고 있답니다.
Q동물에 관심이 있을 어과동 친구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려요.
저는 어과동에 우동수비대(우리동네 동물원 수비대)가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어요. 대원들이 우동수비대 활동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열악한 환경에 사는 동물을 마주치면 마음이 아픈데, 당장 해결을 못하니까 절망감이 들 수도 있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활동이 동물원이 더욱 나아질 거라고 믿기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