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이 휴장 중인 지난 8월 31일 새벽, 동물원에서 집으로 전화가 왔어요. 얼룩말 하니가 새로 만든 말사 울타리 밖에 나와 있다는 거예요. 차를 몰아 동물원에 가 보니, 동물원 사육사들이 하니가 멀리 가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었어요. 하니는 왜 말사 밖으로 나온 걸까요?
하니는 놀란 표정으로 동물원 여기저기를 걷다 뛰다 했어요. 직원들은 하니가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도록 길목을 막고 있었어요. 동물들에게 울타리 밖은 익숙지 않은 공간이어서, 예상치 못한 곳에 부딪히거나, 블록으로 된 바닥에 미끄러져 부상을 입을 수 있거든요. 또한 예민해진 동물의 돌발 행동에 사람이 다칠 수도 있어요.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진정제 주사를 준비하고, 하니의 행동을 지켜보았어요.
하니는 동물원의 또다른 작은 말 동백이와 향미가 있는 얼룩말사에 들어가고 싶은 눈치였어요. 그래서 얼룩말사의 내실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열어두었으나, 입구가 모퉁이를 돌아야 보이는 위치에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았어요. 이대로는 하니가 찾기 힘들어 보였지요.
다행히 하니와 가까운 곳에 평소 쓰지 않던 문이 있었어요. 얼룩말사와 통하는 문이었지요. 사육사들이 망치로 두드려 녹슨 문을 열고, 이 문 쪽으로 하니를 몰았어요. 그제서야 열린 문을 발견한 하니는 껑충 뛰어 얼룩말사로 들어갔습니다. 얼룩말사에 있던 향미와 동백이는 어디 갔다 이제 들어왔냐는 표정으로 하니를 바라보았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하니의 표정도 한결 편안해 보였지요.
며칠 전만 해도 하니는 이 얼룩말사에서 향미, 동백이와 함께 생활했어요. 그러나 공간이 좁고 내실 바닥이 시멘트로 되어 있어, 말들은 발굽 질환에 자주 시달려 왔지요. 이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말들이 뛰어다닐 수 있는 넓은 새로운 말사를 만들어 하니가 먼저 이사를 한 거죠.
새로운 말사의 넓은 바닥에는 뜯어먹기 좋게 풀이 자라 있었어요. 하니는 이사 후 며칠 동안 사육사가 준 건초는 쳐다도 보지 않고, 풀을 열심히 뜯었기에 새로운 말사에 잘 적응하는 듯 했어요.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밖에 나온 거죠.
사실 지금도 하니가 새로운 말사를 왜 나왔는지 궁금해요. 맛있는 풀을 다 뜯어 먹고 바깥에 있는 풀이 간절했을 수도 있고, 마침 그날 주변 풀을 깎던 제초기 소리에 놀랐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니는 향미, 동백이와 함께 할 때 가장 편안해 보인다는 점이에요.
할머니 얼룩말, 제니의 부상
청주동물원에는 할머니 얼룩말 제니가 홀로 지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2014년부터 제니가 왼쪽 앞발을 절룩거렸어요. 말 전문병원에 의뢰하여 진정제를 놓고 방사선 사진을 촬영해 보니, 발굽에 있는 뼈가 염증으로 절반 이상이 녹아 있었지요. 말 수의사는 염증이 잘 치료되지 않으면 나머지 뼈도 녹고, 그러다 발굽이 빠져버리기라도 하면 안락사를 시킬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였어요.
그날부터 저는 한 달 동안 매일 제니의 발굽을 소독하고 속을 세척하였어요. 충격을 줄이기 위해 발바닥에 쿠션감 있는 신발도 신겼지요. 보통 말은 사람에게 길들여진 가축이라 사람이 앞다리를 들어 올린 채 치료하면 돼요. 그러나 얼룩말은 치료하려면 진정제를 놓고 나서도 사육사들 몇 명이서 잡고 있어야만 해요. 아무리 동물원에 있어도 야생성을 지닌 야생동물이기 때문이에요. 치료를 한 달 정도 하자 다행히 제니의 걸음은 이전보다 가벼워졌어요.
하니의 첫 번째 룸메이트 제니
얼룩말은 대부분의 초식동물들처럼 사회적인 동물이에요. 홀로 외로울 제니를 위해 2016년 봄, 어린 하니를 새로 데려왔어요. 하니는 암컷으로 광주동물원에서 태어났고, 당시 1년이 채 안 된 새끼 얼룩말이었어요. 낯선 곳에 온 어린 하니는 제니를 엄마로 여겼는지 제니 뒤만 졸졸 따라다녔지요. 야생동물은 같은 종이라도 새로운 개체가 접근하면 경계하기 마련이지만, 제니는 자신을 따르는 하니를 싫어하지 않았어요. 제니는 그렇게 하니의 첫 번째 룸메이트가 되었지요.
하지만 나이가 많은 제니는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간헐적으로 발굽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먹어야 했어요. 제니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종종 하니를 귀찮아 했지만, 하니는 좀처럼 제니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지요. 그러다 2018년 겨울, 제니는 대퇴골이 부러진 후유증으로 결국 하늘로 갔어요. 엄마처럼 따르던 제니를 찾을 수 없자, 하니는 한동안 계속 울어댔습니다.
포니와 얼룩말, 종을 뛰어넘은 우정
홀로 남겨진 하니는 제니 대신 사육사에게 의존하게 되었어요. 직원들이 퇴근한 후 아무도 없는 시간이면 홀로 우울한 모습을 보였지요. 그사이 2019년 동물원 동물농장에 셔틀랜드 포니 암수 한 쌍이 들어왔어요. 셔틀랜드 포니는 말이 맞나 싶을 정도로 덩치가 매우 작아요. 외로운 하니를 위해서 셔틀랜드 포니 향미와 동백이를 얼룩말사로 데려와 같이 키우기로 했어요.
종과 크기가 달라 걱정도 있었지만, 합사에 성공하면 하니의 정신 건강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동물농장에서 얼룩말사까지 오는 동안 향미와 동백이는 겁을 많이 냈어요. 특히 빗물이 내려가는 수로를 덮은 철재 구조물을 건너는 것을 두려워했는데, 엉덩이를 밀면서 데려와 얼룩말사에 거의 욱여넣다시피 했지요.
한동안 말사 중간에 임시 울타리를 놓아 얼룩말 하니와 포니 두 마리가 물리적인 접촉은 피하면서 서로 얼굴과 체취를 익히게 했어요. 얼마 뒤 막았던 중간 문을 열자 하니와 향미와 동백이는 서로의 공간을 들락거리며 함께 지내게 되었어요. 서로에게 큰 관심은 없어 보였지만, 하니는 사육사가 없는 밤에도 향미와 동백이가 있어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았어요. 새로운 말사를 보수하고 나면 하니, 향미, 동백이는 새집에서 함께 지낼 것입니다.
혼자 있는 하니를 위해서 다른 얼룩말을 데려올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아프리카가 고향인 얼룩말은 우리나라의 추운 겨울에는 좁은 내실에만 갇혀 있어야 해요. 좁은 곳에 움추려 있다 보면 운동을 하지 못해 얼룩말의 건강이 나빠질 수 있어요. 또, 난방을 위해서 전기와 연료를 많이 써, 기후변화의 원인인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문제도 생기죠. 앞으로 청주동물원에서는 외국 동물보다 우리나라 기후에 맞는 토종동물을 보호하고 연구하는 데 집중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