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끽끽끽~, 끽끽끽~’
6월 27일, 서울 양재천 수변공원에 수상한 소리가 울려퍼졌어요. 알고보니 울산과학기술원 생명과학연구부 류흥진 연구원님이 박쥐 소리 파일을 재생시킨 소리였지요. 그 앞에는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박쥐 탐사, 시작을 알리다!
이들의 정체는 지구사랑탐사대와 재단법인 숲과나눔이 함께하는 시민과학 프로젝트 ‘시민과학풀씨’ 박쥐 탐사 대원들이었어요. 이날 대원들은 저마다 직접 그린 박쥐 날개 그림을 손에 들고 있었어요. 일주일 전 류흥진 연구원이 온라인 강연 중 내 주신 과제였지요. 류흥진 연구원은 대원들의 그림을 보며 사람의 팔과 닮은 박쥐의 날개 구조에 대해 설명했어요.
“박쥐는 어깨뼈가 상완골(위팔)과 척골(아래팔)로 이뤄져 있고, 끝에 손가락 뼈가 다섯 개 있어요. 움켜쥐듯이 손가락 뼈를 움직여 먹이를 사냥해요. 또, 다리와 꼬리 사이의 얇은 피부인 비막을 망처럼 이용해 먹이 벌레를 낚아채기도 하죠.”
이어서 박쥐를 탐사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어요. 탐사를 할 때는 스마트기기에 에코미터 장치를 꽂아야 해요. 이 장치는 박쥐의 소리를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 범위로 보정해 줘요. 주파수란 1초 동안 소리가 진동하는 횟수(Hz, 헤르츠)를 말해요. 사람은 1초에 16~2만Hz를 들을 수 있는데, 박쥐는 이보다 높은 초음파(2만Hz 이상)를 주로 내기 때문에 사람이 들을 수 없거든요. 에코미터는 소리가 한 번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인 ‘주기’를 길게 늘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로 낮춰주는 거예요.
“박쥐들은 특히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다리 밑이나 하수도 주변에 서식할 확률이 높아요. 해가 진 뒤 스마트기기에 에코미터를 꽂아 소리를 찾아보세요. 낮에는 사람이나 차가 많이 다니지 않은 다리 밑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박쥐를 종종 만날 수 있답니다.”
대원들은 류흥진 연구원께 7월 한 달 동안 집 근처 강가나 하천에서 박쥐의 소리를 찾는 미션을 받았어요. 이 데이터는 우리나라의 박쥐 분포와 생태를 연구하는 데 활용될 예정이지요. 원래 박쥐는 습하고 어두운 곳을 좋아해 도심 속 하천의 다리 밑이나, 건물의 처마에서 발견됐어요. 현재는 주로 강원도의 석회암 동굴, 폐광, 제주도의 화산동굴에 사는 관박쥐와 집박쥐가 발견될 뿐, 도심 지역에서는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도심에 사는 박쥐에 대해 연구된 자료도 거의 없는 상태지요. 류흥진 연구원은 “특정 장소에 박쥐가 서식하지 않는다는 정보도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된다”며 “이번 시민과학자 풀씨 활동 중 박쥐를 발견하지 못해도, 탐사 활동 자체만으로 우리나라의 도심 박쥐 연구의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Q&A
“어린이들이 박쥐와 친해져, 박쥐와 더불어 사는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시민과학풀씨 현장 교육에서 만난 류흥진 연구원님은 박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어요. “박쥐는 귀엽다”며 잘 나온 사진을 찾아 보여 주시기도 했죠.
또 많은 사람들이 박쥐에 대해 혐오가 아닌 관심을 갖길 바란다고 말씀하셨어요. 시민과학풀씨 박쥐 탐사단의 대장님, 류흥진 연구원의 이야기를 들어 봤어요.
Q 어떻게 박쥐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저는 원래 보노보와 긴팔원숭이 등 영장류 연구를 했습니다. 아프리카 콩고와 일본에서 공부하며 박사학위까지 땄지요. 그러다 2017년 국립생태원에 온 뒤, 김선숙 박사님을 만나게 되었지요.
김선숙 박사님은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박쥐 생태를 연구하는 분이신데, 함께 연구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셨죠. 마침 저는 박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지도 교수님이셨던 일본 교토대학교 영장류연구소 데이비드 힐 교수님이 박쥐를 연구하셨거든요. 덕분에 옆에서 박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익숙했던 터라,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죠.
현재는 관박쥐의 짝짓기 습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어요. 포유류인 관박쥐는 일부일처제가 아니며, 암컷 중심의 모계사회를 이루며 살고 있거든요. 어떻게 이렇게 진화하게 됐는지 연구하고 있답니다.
Q 관박쥐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신 건가요?
관박쥐는 번식 방법이 조금 특이해요. 10월 즈음 수컷과 교미를 한 암컷은 겨울 동안 수컷의 정자를 몸에 저장해 둬요. 그러다 4월 무렵 날이 따뜻해지면 그제서야 배란을 해서 저장했던 정자와 수정을 하죠. 이렇게 정자를 따로 보관하는 건 새나 곤충이 주로 쓰는 전략으로, 포유류 중 이런 전략을 쓰는 대부분이 박쥐예요.
이후 공부해 보니 번식과 생존을 위한 선택이란 걸 알 수 있었어요. 박쥐는 포유류 중 유일하게 날 수 있는 동물로, 개체들이 다 멀리 날아가 버리면 짝을 찾기가 어려워져요. 특히 날이 춥고 먹이가 부족한 겨울에는 더더욱 어려워지지요. 이를 막기 위해 겨울잠을 자기 전에 짝을 찾아서 교미하고, 수정에 필요한 정자를 미리 준비해 놓는 거예요.
Q 박쥐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아요.
아마도 박쥐를 잘 몰라서라고 생각해요. 눈과 코, 귀 부분을 자세히 보면 박쥐도 꽤 귀여운 외모를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 중에서도 전 긴가락박쥐, 큰발윗수염박쥐가 가장 좋아요.
우리는 접촉했을 때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에 혐오를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똥을 보면 ‘지저분하고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이 많다’는 걸 알고 ‘위험하다’으로 인식해 피하는 것처럼요. 코로나19바이러스의 원인 동물이라는 추측이 이어지며, 박쥐가 건강을 위협하는 동물이라는 인식이 강해진 것 같아요. 또 어둡고 축축한 데에 살고, 검은색 박쥐들이 떼를 지어 사는 모습이 사람들의 공포감을 키운다고 생각해요.
Q 박쥐를 연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든 생물은 존재하는 이유가 있어요. 지구 생태계에서 번식하고 생존해온 생물들은 저마다의 기능과 전략이 있지요. 과학자들은 그저 그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알기 위해 연구할 뿐이에요.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지요.
이러한 연구들은 나중에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되기도 해요.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은 또 생길 수 있잖아요. 연구 결과가 있어야 전염병에 대한 대책을 빠르고 정확하게 마련할 수 있답니다.
Q 박쥐 연구가 특별한 점이 있을까요?
박쥐는 야행성 동물이라 해가 져야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할 수 있어요. 주 서식지인 동굴을 찾아서 연구하기도 하는데, 그럴 땐 박쥐의 배설물이 눈으로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지요. 외국에 서식하는 박쥐들은 광견병 바이러스 같이 위험한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어서 방역 복장을 갖춰 입기도 해요. 하지만 국내 박쥐들은 그 정도로 위험하지 않아 방역복까진 필요 없죠. 다만 맨손으로 만지거나 채집하는 건 위험할 수 있느니 눈으로만 관찰하고 소리 데이터만 수집해 주세요. 그리고 박쥐가 나오는 동굴이나 폐광에 갈 땐 마스크를 꼭 쓰세요.
Q 어떻게 하면 박쥐 과학자가 될 수 있을까요?
박쥐를 좋아하는 마음이 필요해요. 과학자가 되기 위해선 박쥐를 오랜 기간 관찰하고 공부해야 하거든요. 또 틈틈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아요. 저는 제 지식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줄 때에 보람을 느껴요. 이를 통해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다독여주고, 더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질 수 있거든요. 친구들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