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8일 아침, 평화롭던 동물원에 갑자기 무전이 울렸어요.
두루미 두일이가 피를 흘리고 있다는 다급한 목소리였지요. 이날 두일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두루미사로 달려가 보니 두일이의 부리가 10cm 이상 부러져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어요. 며칠 전 암컷이 알을 낳으면서 아빠가 된 두일이는 한껏 예민해진 상태였습니다. 두루미는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수컷과 암컷이 교대로 둥지에서 알을 품거든요. 그러다 옆 칸에 살고 있는 다른 수컷 두루미와 철망을 두고 싸움이 붙었는데, 도중에 철망에 부리가 끼어 부러진 듯 했지요. 두일이는 많이 아팠을 텐데도 둥지의 알을 품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어요.
황새나 두루미 등 부리가 큰 대형 조류들은 부리 혈관이 크고 잘 발달되어 있어요. 만약 부상으로 부리 혈관을 통해 피를 과도하게 흘리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요. 당장 두일이를 알에서 떼내어 응급 처치를 했습니다. 가장 먼저 지혈을 했고, 혈액을 보충하기 위해 수액 처치를 하였죠.
응급 처치로 위기를 넘기기는 했지만, 부리 치료가 시급했습니다. 부리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면 먹이를 먹지 못해 굶어 죽을 수 있어요. 또 알 속의 새끼가 제대로 발육하려면 부리로 알을 좌우로 굴리면서 품어야 하는데, 이를 못하면 새끼들 또한 생명을 잃을지도 모를 일이었어요. 두일이가 갑자기 자리를 비운 탓에 암컷 두루미는 두일이 대신 혼자 알을 품으며 이따금 수컷을 찾는 듯한 소리를 냈어요.
사육사와 함께 고심한 끝에 서울의 개, 고양이 전문 정형외과 수의사 조규만 선생님과 협진을 시도하기로 했어요. 동물원에는 많은 종의 동물들이 있기 때문에, 동물원 수의사가 모든 진료를 하기엔 어려움이 있어요. 전화로 내용을 들으신 조규만 선생님은 흔쾌히 협진을 수락하셨고, 저녁까지 청주동물원에 도착하겠다고 답하셨답니다.
2016년 4월 28일 오후 7시
두일이의 부리를 붙이다!
조규만 선생님은 동물원에 도착하자마자 두일이의 부리 상태를 확인하고 처치 방법을 계획하셨어요. 본시멘트를 사용해 부러진 부리를 붙이기로 했지요. 본시멘트는 정형외과에서 부러진 뼈를 붙일 때 쓰는 인공뼈 재료로, 굳으면 석고처럼 딱딱해져요. 동물원 수의사들이 두일이를 마취시키고 모니터를 통해 두일이의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했어요. 조규만 선생님은 부리를 깨끗하게 소독한 뒤, 부러진 부위에 거즈를 대고 그 위에 끈적한 본시멘트를 바르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였어요. 호흡을 위한 납막(콧구멍)이 막힐까 봐 조심스럽게 작업했지요. 십분 정도가 지나자 본시멘트가 딱딱하게 굳으며 부리가 단단하게 고정되었어요.
2016년 4월 28일 오후 9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다
수술 도중 동물원에서 암컷의 소식이 전해졌어요. 암컷은 두일이가 나타나지 않자 12시간 동안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알을 품고 있었지요. 두일이를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치료가 끝나고 기관에 넣었던 튜브를 뺀 뒤 마스크로 산소를 공급했어요. 몇 분이 지나자 두일이는 조금씩 정신을 차렸어요. 놀랄까 봐 얼굴을 수건으로 가린 채 암컷이 기다리는 두루미사로 데려갔지요. 두일이와 암컷은 어둠 속에서 여러 번을 같이 울었어요. 왠지 그 울음소리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지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두일이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다시 둥지에 앉아 알을 품었고, 암컷은 그제서야 저린 다리를 펴고 물을 마셨답니다.
2016년 5월 5일 오전 8시
새끼가 태어났어요!
아침에 출근해 보니 두일이와 암컷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알에서 두 마리의 새끼들이 부화하였어요. 두루미 부부는 새끼들이 편안하게 먹을 수 있도록 잡은 미꾸라지를 땅에 내려쳐서 움직임이 없는 것을 확인했지요. 새끼들이 먹는 도중에 꿈틀대는 미꾸라지가 기도에 걸릴 수 있거든요. 부모 두루미의 정성으로 새끼들은 눈에 보일 만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답니다.
※ 필자소개
김정호 수의사. 충북대학교에서 멸종위기종 삵의 마취와 보전에 관한 주제로 수의학 박사를 받았다. 청주동물원과는 학생실습생으로 인연이 되어 일을 시작했고, 현재는 진료사육팀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