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1 XYZ 액체를 쓰며 지구의 ‘물’을 떠올렸다면, 그건 물이다!
여러분이 물을 보았을 때, 마셨을 때, 만졌을 때를 떠올려 봐요. 갈증이 날 때 마시는 투명한 액체를 머릿속으로 ‘물’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이렇게 각자 경험한 ‘물’의 의미를 머릿속에 저장하고, 다음번에 또 물을 경험할 때 그 의미를 떠올리겠지요.
이런 물의 의미를 머릿속에 저장한 상태에서 쌍둥이 지구에 갔다고 상상해 봐요. 만약 그곳에서 여러분이 어떤 액체를 마시고, 씻는 데 쓴다면, 여러분의 머릿속에선 어떤 생각이 들까요?
아마 쌍둥이 지구에서 쓴 이 액체를 ‘물’이라고 생각할거예요. 그 액체를 마시면서 지구에서 마셨던 ‘물’을 떠올릴 테니까요. 사실 두 액체의 분자식이 다르고, 서로 다른 액체라 하더라도 여러분의 머릿속에선 물을 보았을 때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전통적으로 철학자들은 ‘어떤 단어의 뜻은 우리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것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사고방식을 ‘신경생리주의’라고 한답니다. 신경생리주의에 따르면, 여러분이 쌍둥이 지구에서 보고 마신 그 액체는 지구의 물을 떠올리게 하므로 곧 그 액체를 물이라고 불러도 되는 거예요.
가설2 물의 분자식은 H2O! 그러므로 XYZ는 물이 아니다!
신경생리주의에 반대한다면, 물의 의미를 다르게 볼 수도 있어요. 어떤 단어의 뜻은 우리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물질을 무엇이라고 배웠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예요.
18세기 프랑스 화학자 라부아지에는 물 분자가 수소(H) 2개, 산소(O) 1개로 이루어져 있다고 밝혔어요. 이후 우리는 ‘물은 H2O’라고 배웠지요. 라부아지에 이전 시대 사람들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요. 분자식만 몰랐을 뿐 현재 H2O로 알려진 물을 가리켜 ‘물’이라고 배웠으니까요. 결국 우리의 머릿속에 ‘물’의 이미지를 떠올렸기 때문에 ‘물’인 것이 아니라, 어떤 액체를 ‘물’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물’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게 된 거예요.
이 사실은 우리가 쌍둥이 지구에 갔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아요. 그 액체의 성질이 완전히 물과 똑같다고 하더라도 분자식이 XYZ라면 물이 아닌 거죠.
▶이 질문이 왜 중요할까?
이 물음은 20세기 철학자 힐러리 퍼트넘이 처음으로 제안했어요. 퍼트넘은 단어의 뜻이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어 ‘쌍둥이 지구’ 실험을 만들었지요.
이 질문은 세계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한 물음으로도 이어져요. 어떤 단어의 ‘뜻’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가설 1처럼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걸까요? 가설 2처럼 어떤 물질을 무엇이라고 배웠는지에 달린 걸까요? 아니면 아예 머릿속도, 물질도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세계가 물질이나 에너지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기존의 생각이 잘못된 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