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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가 위험하다!
알고 보니, 바나나가 단체로 아픈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래. 예전에 우리 친척인 ‘그로스 미셸’ 바나나가 단체로 아픈 적이 있었다더군. 대체 언제부터 이런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 거지?
위기의 바나나
요즘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거의 ‘캐번디시’라는 품종이에요. 흔히 마트에서 볼 수 있는 노랗고 끝이 뾰족한 바나나이지요. 그런데 1950년대까지는 지금과 다른 맛, 다른 모양을 가진 ‘그로스 미셸’ 바나나를 먹었어요. 요즘 우리가 먹는 캐번디시보다 더 짧고 통통하며, 달달한 맛을 가진 바나나였죠. 하지만 이제는 그로스 미셸 바나나를 먹을 수 없어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1876년 호주에서 그로스 미셸 바나나에 파나마병이 생겼다는 것이 처음으로 보고 됐어요. 파나마병은 곰팡이균인 ‘푸사리움 옥시스포럼(Fusarium Oxysporum)’이 땅을 통해 퍼져나가는 무서운 바나나 전염병이랍니다. 곰팡이균이 바나나의 뿌리에서 흡수되면 물관을 타고 풀 전체로 이동해 줄기 속 물관을 갈색으로, 잎을 누런색으로 바꾸며 바나나 풀을 죽여 버리지요. 파나마병은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결국 1950년대 이후, 바나나 농장에서는 그로스 미셸을 찾아볼 수 없었답니다.
그로스 미셸 바나나가 농장에서 사라지고 나서 바나나 농장 주인들은 파나마병에도 끄떡없이 살아남은 캐번디시 바나나를 키우기 시작했어요. 캐번디시 덕분에 전세계 사람들은 다시 바나나를 즐겨 먹을 수 있게 됐지요. 그런데 그로부터 40년쯤 지난 1994년, 캐번디시 바나나를 공격하는 변종 파나마병이 돌기 시작했어요.
바나나, 넌 누구니?
이럴 수가! 그로스 미셸 바나나가 곰팡이균 때문에 거의 멸종됐다니…. 근데 왜? 대체 우리 바나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닥친 거야? 으악~! 나도 건강하고 행복한 식물로 살아가고 싶단 말이야!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거지?
바나나는 나무가 아니라 풀이다!
키가 3~10m 정도 되는 바나나 나무는 사실 거대한 풀이에요. 우리가 바나나 나무의 줄기라고 생각하는 겉부분은 가짜 줄기로, ‘헛비늘줄기’라고도 불린답니다. 땅 속에 묻힌 부분에 감자처럼 덩어리 모양의 진짜 줄기인 ‘알줄기’를 갖고 있지요. 이 알줄기에서 ‘흡아’라고 하는 새 줄기가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또 다른 바나나 풀이 자란답니다.
보통 알줄기 하나가 주변에 흡아 10개 정도를 만들어내요. 알줄기와 흡아는 유전적으로도 똑같기 때문에 쌍둥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바나나는 열매를 맺기 위해 꽃을 피우지는 않을까요? 사실 바나나도 꽃을 피워요. 풀이 어느 정도 자라면, 땅 속의 알줄기로부터 꽃과 열매가 달린 줄기가 자라나요. 비늘 모양인 가짜 줄기에 둘러싸인 채로 풀의 가장 높은 곳까지 자라지요. 풀마다 커다란 빨간색 꽃을 하나씩 가지기 때문에 ‘바나나의 심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이 거대하고 붉은 꽃이 지면 그 자리에 바나나 열매가 열려요. 보통 꽃이 핀 후 열매가 열리기까지 6개월이 걸리지요.
하지만 우리가 먹는 바나나 열매를 땅에 심어도 바나나는 자라지 않는답니다. 바로 씨가 없기 때문이에요.
알고 보면 모두가 한 가족
우리가 먹는 바나나의 조상인 야생 바나나는 씨가 있기 때문에 수분과 수정 과정을 거쳐야 열매가 열려요. 하지만 단단한 씨를 갖고 있어서 먹기에 불편하지요.
그런데 야생 바나나의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우연히 씨 없는 바나나가 탄생했어요. 사람들은 이 특별한 바나나의 흡아를 잘라서 기르기 시작했죠. 이런 바나나는 야생 바나나와 달리 수분과 수정 과정 없이도 열매가 열려요. 이런 열매를 ‘단위 결실’이라고 하는데, 바나나와 귤이 대표적이랍니다.
게다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바나나는 흡아를 잘라 다시 심거나 꺾꽂이 방식으로 바나나의 수를 쉽게 늘릴 수 있어요. 실제로 농장에서도 이 방식을 이용해 바나나를 재배한답니다. 또 식물의 작은 조각만을 이용해 새로운 식물을 자라게 하는 ‘조직 배양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 손쉽게 바나나를 복제할 수 있게 됐어요. 새순이 자라 나오는 생장점 부분을 잘라 실험실에서 키우는 거예요. 이것이 작은 묘목으로 자라면 밭에 심어 큰 바나나 풀로 키운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제된 농장의 바나나들은 야생 바나나에 비해 유전자 다양성이 떨어져요. 즉, 모두 똑같은 유전자만 갖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질병이 돌았을 때 모두 같이 걸릴 수밖에 없지요. 맨처음 파나마병에 약한 바나나를 키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 바나나와 유전적으로 똑같은 바나나들은 다 같이 병에 걸렸던 거예요. 게다가 농장에서는 바나나를 많이 얻기 위해 촘촘하게 심어요. 그 결과 야생에서보다 전염병이 더 빨리 퍼진답니다.
유전공학으로 바나나를 살려라!
우리들의 유전자가 똑같은 게 문제였군! 그런데 내가 듣기론 요즘 기술이 워낙 좋아져서 유전자도 막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던데…. 그렇게 하면 우리 바나나도 멸종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거야?
튼튼이 유전자를 넣어라~!
2012년 프랑스 농업연구센터가 주도한 국제 공동 연구팀이 야생 바나나인 무사 아쿠미나타의 유전체를 모두 분석했어요. 당시 연구자들은 이 연구를 통해 야생 바나나가 파나마병을 이겨낼 수 있는 특별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 알아내고자 했어요. 그러면 그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집어넣어 새로운 종의 식용 바나나를 개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 뒤, 호주 퀸즐랜드 공대의 제임스 데일 교수는 실제로 바나나의 유전자를 이용해 파나마병을 이겨낼 수 있는지 연구했어요. 야생 바나나에서 발견한 곰팡이균 저항 유전자를 캐번디시 바나나의 유전자에 끼워 넣은 거지요. 그리고 파나마병을 일으키는 곰팡이균이 퍼져 있는 오염된 땅에 저항 유전자를 넣은 캐번디시를 길렀어요. 그 결과, 유전자를 조작한 캐번디시는 오염된 땅에서도 18개월 동안 건강하게 자랐답니다.
이처럼 유전자를 이용해 바나나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실제로 이 기술을 현장에 곧바로 적용하기는 어려워요. 유전자를 조작해서 만든 ‘유전자재조합 식품’이 세상에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전자 조작 바나나를 먹고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거든요.
Q 유전자 재조합 식품 표시가 된 과자, 안전한가요?
튼튼이 유전자를 캐번디시의 유전자에 넣은 것과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콩이나 옥수수 중 안정성 테스트를 통과한 것들도 있어요. 그 중에서 제초제에 저항성을 갖는 것이 59%로 가장 많답니다.
튼튼이 유전자를 넣는 과정
➊ 튼튼이 유전자 자름 효소를 이용해 야생 바나나의 튼튼이 유전자를 잘라낸다.
➋ 튼튼이 유전자를 끼워 넣음 잘라낸 튼튼이 유전자를 캐번디시 바나나의 유전자에 끼워 넣는다.
➌ 세포 배양 유전자를 조작한 캐번디시 바나나 세포를 실험실에서 키운다.
➍ 농장에서 키움싹이 나고 묘목으로 자라나면 농장으로 옮겨 심고, 키운다.
약골 유전자를 없애는 과정
➊ 약골 유전자 찾기 유전자 가위와 손을 잡고 있는 물질이 유전자 가위에게 목표 유전자의 위치를 알려 준다.
➋ 약골 유전자 자름 목표 유전자 근처에 도착한 유전자 가위가 유전자를 정교하게 자른다.
➌, ➍ 위와 동일.
약골 유전자를 없애라~!
최근 국내 기업 ‘툴젠’에서 곰팡이균에 약한 약골 유전자를 정교하게 없애는 ‘바나나 세이브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라고 밝혔어요. 이 프로젝트에서는 유전자를 쉽게 자르고 이어붙이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사용할 계획이에요. 유전자 가위란, 원하는 유전자만 골라 잘라낼 수 있는 효소예요. 이 효소에는 목표로 하는 유전자에만 달라붙는 특정 물질이 붙어 있어요. 이 물질이 특정 유전자를 찾아내면 효소가 유전자를 잘라내지요.
이 기술은 유전자의 아주 작은 부분만 정교하게 없애기 때문에 야생에서 생기는 돌연변이만큼이나 자연스럽다는 장점이 있어요. 튼튼이 유전자를 집어넣는 방법보다 더 안전하다는 거죠. 김석중 툴젠 연구소장은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보통의 바나나와 거의 차이가 없도록 자연스럽게 약골 유전자를 없앨 수 있다면, 안전하면서도 튼튼한 바나나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아직 이 기술을 이용해서 어떤 약골 유전자를 없앨지는 정해지지 않았어요. 앞으로 전세계 바나나 연구자들을 모아 함께 찾아나갈 계획이랍니다.
다행이야! 희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몸이 갑자기 나아진 느낌이 들어! 우리가 멸종 한다면 <;어린이과학동아>; 친구들도 더 이상 맛있는 바나나를 먹지 못하게 되겠지? 그런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과학을 이용해서 꼭 우릴 지켜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