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같은 월동 장소를 찾아라!
록키산맥을 중심으로 동쪽에 사는 제왕나비는 멕시코에서, 서쪽에 사는 제왕나비는 캘리포니아에서 겨울을 지내요. 멕시코로 간 제왕나비가 선택한 월동 장소는 전나무의 일종인 오야멜나무(오른쪽 위 사진)가 있는 해발 3000m의 화산지역이에요. 겨울철에 이 지역은 눈으로 뒤덮여 세상이 온통 흰색으로 바뀌지요. 우리가 상상했던 따뜻하고, 초목이 푸릇푸릇한 월동 장소와는 거리가 한참 멀어요. 이렇게 냉장고 같이 추운 곳으로 월동 장소를 선택하는 이유는 제왕나비가 ‘외온동물’이기 때문이에요.
외온동물은 주변 온도에 따라 체온이 정해지고, 체내의 모든 대사활동의 속도가 체온에 의해 결정돼요. 주변의 온도가 높으면 체내의 대사활동은 빠르게 일어나고, 온도가 낮으면 대사활동이 느리게 일어나지요. 만약 제왕나비가 멕시코의 따듯한 해안가에서 월동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따뜻한 날씨 때문에 대사활동이 빠르게 일어나, 제왕나비는 대사활동을 지탱하기 위해 끊임없이 먹이를 찾아 먹어야 할 거예요. 그러나 제왕나비의 먹이인 ‘밀크 위드’라는 식물은 멕시코에서 쉽게 찾을 수 없어요. 그럼 제왕나비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지요. 이런 이유로 제왕나비에게 필요한 곳은 따뜻한 해안가가 아니라, 대사활동을 최소화하는 냉장고와 같이 온도가 낮은 곳이랍니다.
제왕나비의 월동 장소는 키가 큰 오야멜나무가 빽빽히 자라는 곳이에요. 그래서 겨울에 차가운 바람이나 우박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아요. 오히려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오야멜나무 윗부분이 눈으로 뒤덮여 마치 눈으로 된 담요를 덮고 있는 것과 같이 돼요. 그 결과 제왕나비가 월동하는 높이에서는 4℃로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제왕나비는 겨울동안 대사활동을 최소화 시킬 수 있어요. 춥긴 하지만 얼어 죽지는 않는 온도인 셈이죠. 덕분에 제왕나비는 축적하고 있는 지방으로 긴 겨울을 보내고, 그 다음해 봄이 찾아오면 다시 이주할 수 있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제왕나비의 월동 장소도 멕시코 월동 장소의 기후와 비슷해요. 해안가 근처라 겨울에 눈은 거의 오지 않고 아주 서늘하지요. 제왕나비가 대사활동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최상의 장소인거예요.
여러 세대에 걸쳐 이주하는 제왕나비
제왕나비의 이주는 조류나 포유류의 이주와는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어요. 조류나 포유류는 가을에 월동 장소로 이주한 개체가 봄에 다시 번식장소로 돌아오지만, 제왕나비는 그렇지 않아요.
가을에 남쪽으로 이주한 제왕나비는 멕시코에서 겨울을 지내며 몰아닥치는 폭풍우나 거센 바람을 견뎌요. 살아남은 제왕나비는 다음 해 봄이 오면 다시 북쪽으로 이주하지요. 그런데 이들은 지난 가을에 처음 출발했던 지역까지 가지 못하고, 텍사스나 오클라호마에서 멈춰요. 여기서 제왕나비는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고 죽지요. 그 다음 세대는 다시 미국의 중서부 지역으로 올라가는데, 여기서 제왕나비는 개체군이 급격하게 증가해요. 그리고 이 세대는 다시 미국 북부지역, 캐나다 남부, 미국의 동부 지역으로 이주해요. 가을에 캐나다에서 남쪽으로 이주했던 제왕나비는 여름에 캐나다에 도착한 제왕나비의 증조부모인 셈이죠.
제왕나비는 성충으로 살 수 있는 기간이 4주 정도에 불과해요. 그래서 1년 동안에 넷 또는 다섯 세대가 나타날 수 있어요. 이 중에 가장 마지막 세대가 월동을 하러 이주해요. 그런데 월동하는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오래 살아요. 보통 8~9월에 성충이 되서 겨울을 나고, 그 다음해 4월까지 살지요.
월동하는 세대가 오래 사는 이유는 생식을 잠정적으로 포기하기 때문이에요. 겨울을 나는 세대는 하루의 해 길이가 짧아지고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생식휴면’에 들어가요. 생식휴면이란, 쉽게 말해 생식기관을 발달시키지 않는다는 걸 뜻해요. 생명체는 특정한 환경조건에서 가지고 있는 자원이 한정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생식은 아주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해요. 그러니 생식에 자원을 적게 투자하면 여유 자원을 다른 곳에 돌릴 수 있겠죠? 월동하는 제왕나비도 이런 이유로 더 오래살 수 있도록 생식에 들어가는 자원을 수명에 투자하는 거예요.
그런데 제왕나비는 이주경로를 어떻게 알까요? 조류나 포유류는 대부분 부모가 새끼들과 같이 이주를 하면서 정확한 이주경로를 가르쳐 줘요. 그러나 제왕나비는 여러 세대에 걸쳐 이주를 하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학습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대부분 본능적으로 이주경로를 찾아간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답니다.
제왕나비는 다른 동물들처럼 태양을 보고 이주방향을 잡아요. 하지만 태양은 시간에 따라 위치가 바뀌지요. 그래서 더듬이 안에 있는 ‘체내 시계’를 함께 이용해요. 태양의 위치를 보고, 낮과 밤 같은 하루의 시각을 인지하는 체내시계로 현재의 시각을 파악해 방향을 찾는 것이랍니다. 신기하게도 제왕나비는 태양이 없는 흐린 날에도 길을 알 수 있어요. 더듬이 안에 자석 역할을 하는 세포가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 결과 제왕나비는 맑은 날이나 흐린 날이나 멕시코를 향해 이주할 수 있답니다.
제왕나비의 이주 경로를 밝혀내는 시민과학의 힘
제왕나비의 이주 경로를 밝히는 일은 과학자들에게 아주 오랫동안 숙제였어요. 과학자들은 새들의 이주경로를 연구하기 위해 주로 고리를 이용하거나, 무선 추적을 해요. 그러나 제왕나비의 몸무게는 평균 0.5g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무게가 많이 나가는 추적 장치를 사용할 수 없어요. 또 제왕나비는 거의 미국 전역과 캐나다 남쪽에 서식하기 때문에 몇 개의 연구팀이 수행하기에도 벅차지요. 그래서 제왕나비의 이주 경로를 파악하는 연구는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참여로 이루어진답니다.
현재 제왕나비의 이주경로와 관련해 여러 개의 시민과학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어요. 제왕나비에 관심이 있는 시민과 학생들은 먼저 포충망을 이용해 제왕나비를 잡아요. 그런 다음 고유번호, 연구자 연락처 정보가 적혀 있는 작은 태그를 나비의 날개에 붙이고 풀어 줘요. 운이 좋으면 이 제왕나비는 다른 곳에 있는 일반 시민이나 멕시코에 있는 연구자들에게 다시 발견돼요. 그러면 태그를 붙인 장소와 발견한 장소를 이용해 이주경로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이렇게 시민과학을 이용하여 제왕나비의 이주경로를 밝히는 일은 거대한 퍼즐을 맞추는 일과 비슷해요. 조각 하나만 가지고는 퍼즐의 그림을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많은 시민이 참여할수록 많은 조각들을 얻을 수 있고, 이 조각들을 맞춰가며 전체적인 윤곽을 읽을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