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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는 왜 수컷만 노래할까요?

동물행동학자가 들려주는 동물은 왜?


 
해가 질 무렵 밖에 한번 나가보세요. 아파트의 화단도 좋고, 근처 공원이나 야산도 좋아요. 어디를 가나 귀뚜라미 노래를 들을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귀뚜라미 노래를 들을 수 있어요. 특히 매미 노래가 점점 사라지는 늦여름부터 귀뚜라미들이 많이 활동하지요. 귀뚜라미는 주로 소리를 이용하여 의사소통합니다. 특히 짝짓기를 할 때 수컷이 노래를 불러서 암컷을 유인해요. 암컷은 수컷의 노래를 듣고 수컷에게 다가갈 수 있답니다. 그래서 짝짓기할 때 수컷이 부르는 노래를 ‘유인노래’라고 해요.

귀뚜라미는 어떻게 노래할까?


귀뚜라미가 소리를 만드는 방법은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의 연주와 비슷해요. 활을 현에 비빌 때 만들어진 소리가 바이올린 본체에 전달되면 본체가 울림통이 되어, 진동하면서 더 크게 소리를 내요. 귀뚜라미도 활, 현, 울림통 역할을 하는 기관이 있어요. 귀뚜라미 수컷의 앞날개의 윗부분에는 가로로 난 줄이 있는데, 이 줄이 바이올린의 현 역할을 해요. 줄을 따라 날개의 끝 쪽에는 바이올린의 활 역할을 하는 딱딱한 ‘긁개’가 있어요. 귀뚜라미가 양쪽 앞날개를 비비면, 바이올린을 켜듯 한 쪽 날개의 긁개(활)가 다른 쪽 날개의 줄(현)을 켜게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귀뚜라미의 울림통은 어디에 있을까요? 귀뚜라미는 노래를 할 때 즉석에서 울림통을 만든답니다. 귀뚜라미 수컷은 노래를 할 때 앞날개를 위로 들어 올린 다음 서로 비벼요. 이렇게 날개를 들어 올린 부분과 귀뚜라미 등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바로 울림통이 되어 그 안의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가 크게 울리게 되지요.

수컷이 짝짓기할 때 부르는 유인노래는 크고 반복적이에요. 만약 여러분이 술래의 눈을 가리고 다른 사람을 잡는 ‘까막잡기’ 놀이를 한다고 생각해 봐요. 친구들이 박수를 한번만 치면 술래가 잡기 어려워요. 하지만 한 자리에서 반복적으로 박수를 크게 치면 술래는 친구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 잡기 훨씬 쉬울 거예요. 귀뚜라미의 의사소통도 마찬가지랍니다. 술래인 수컷이 크게 반복적으로 노래를 하면 암컷이 쉽게 찾을 수 있지요.
 

귀뚜라미의 노래는 위험해

귀뚜라미는 수컷만 노래를 해요. 암컷과 수컷의 앞날개를 비교하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지요. 수컷의 앞날개는 노래를 만들기 위한 줄과 긁개가 있지만 암컷의 앞날개는 이런 구조가 전혀 없어요. 그래서 암컷은 노래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더 중요한 점은 암컷은 노래를 부를 이유가 전혀 없답니다. 노래를 하는 행동은 위험하거든요.

수컷 귀뚜라미는 노래를 불러서 암컷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줘요. 그런데 암컷 귀뚜라미뿐만 아니라 귀뚜라미를 잡아먹는 포식자나, 기생충도 귀뚜라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지요. 자신을 잡아먹는 동물들에게도 ‘나 여기 있어요~’하고 알려 주는 셈이에요.

귀뚜라미의 노래는 ‘기생파리’를 유인해요. 기생파리는 파리의 일종으로 노래를 듣고 날아와서 귀뚜라미 근처에 알을 낳아요. 그러면 구더기가 알에서 나와 귀뚜라미 몸 안으로 들어가 몸을 파먹는답니다. 노래를 부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겠죠?

벙어리가 된 오세아니아 들귀뚜라미

노래가 너무 위험해서 벙어리가 된 귀뚜라미도 있어요. 바로 ‘오세아니아 들귀뚜라미’랍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학교의 말린 젹 교수는 1991년부터 하와이섬 중의 하나인 카우아이에서 오세아니아 들귀뚜라미를 조사했어요. 그런데 수컷 귀뚜라미가 기생파리에 감염되어 매년 그 수가 줄어드는 것을 관찰했지요. 2001년에는 섬 전체에서 귀뚜라미 노래를 거의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해졌답니다. 젹 교수팀이 2003년에 다시 카우아이에 돌아갔을 때도 섬이 조용한 것은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오세아니아 들귀뚜라미는 아주 많은 수가 살고 있었어요. 재밌는 점은 이들이 모두 벙어리가 되었다는 거예요. 벙어리 수컷을 잡아 앞날개를 조사했더니 줄이 거의 없어서 노래를 할 수 없었어요. 1990년대 초부터 2003년까지 불과 20세대 정도의 짧은 기간에 노래를 부르지 않는 수컷으로 빠르게 진화가 일어난 거예요.

보통 귀뚜라미들은 수컷이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암컷은 수컷에게 다가가지 않고 짝짓기도 하지 않지요. 그러면 카우아이 섬에 있는 오세아니아 들귀뚜라미는 어떻게 짝짓기를 할 수 있었을까요? 실험을 한 결과 카우아이 섬에 있는 암컷 귀뚜라미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 수컷이라도 쉽게 짝짓기 상대자로 받아들였답니다. 덕분에 오세아니아 들귀뚜라미는 기생파리가 들끓는 하와이 섬에서도 잘 살게 되었지요.
 

왜 수컷만 노래할까요?

동물행동학에서 짝짓기는 경제에서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과 비슷해요. 물건을 사려고 하는 사람(수요)은 많은데 물건의 양이 적으면(공급) 가격이 올라가고, 반대로 물건을 사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물건이 많이 있으면 가격이 떨어진답니다.

마찬가지로 노래로 짝을 찾는 동물들은 한 번에 여러 수컷이 경쟁적으로 암컷에게 구애를 하므로 암컷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높아요. 수컷은 여러 번 짝짓기가 가능하지만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암컷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에요. 몸값이 비싼 암컷은 위험한 행동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답니다.

하지만 짝짓기에 실패한 수컷은 자식을 남기지 못하면 죽은 수컷과 다름이 없어요. 그래서 위험해도 매력적인 노래로 많은 암컷을 유인해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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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9호 어린이과학동아 정보

  • 장이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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