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정복을 위한 새로운 정보를 입수해서 기분이 좋은 닥터 그랜마예요. 드디어 게임으로 키운 집중력과 멀티태스킹 능력을 100% 발휘할 때가 온 거죠! 이번에 입수한 지도에는 그 지역에 뭐가 살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지 확실하게 나와 있어서 공략하기 더욱 쉬울 것 같네요.
기쁜 마음에 바로 달려갔더니 와아, 지도에 있는 식물과 동물이 한 눈에 보이네요. 지구 정복을 위해 일단 자연 정복부터! 어,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리네요? 나뭇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 아니, 말 소리…?
조용히 지구 정복 좀 하겠다는데 누가 자꾸 떠들어? 헉! 나…, 나무?
백두대간 생태지도를 즐겁게 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전체 식물 가운데 33%가 분포하고 멸종위기 동물도 30종이나 살고 있는 자연의 보물창고랍니다. 마침 곧 단풍철이네요. 예쁜 단풍과 여러 가지 열매가 산을 가득 덮어서 정말 멋지니 꼭 한 번 더 와 주세요~. 응? 백두대간 생태탐사를 위해 오신 게 아니라고요?
잠깐, 생태탐사? 이게 그걸 위한 지도야?
지금 손에 들고 계신 건 산림청과 녹색연합이 만든 백두대간 생태지도라고요. 설마 모르고 오신 거예요? 그럼 설명이 좀 더 필요하겠네요.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1400㎞ 넘게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중심 산줄기예요. 남한 쪽에는 강원 향로봉에서 지리산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684㎞ 구간이 있지요. 백두대간 생태지도는 남한에 위치한 백두대간을 10구간으로 나눠 각 구간의 대표 나무와 동식물을 알려 주고 있답니다. 이곳에는 산양, 삵, 하늘다람쥐 같은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이 가득하기 때문에 생태학자들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참, 저는 해발 200~1900m까지 다양한 고도에서 고르게 자라는 신갈나무예요. 백두대간에 가장 많이 자생하는 나무기도 하지요.
우리 동네에서 자라는 나무들과 비슷해 보이는데….
낙엽활엽수에 속하는 참나무 가운데 상수리나무 다음으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라서 그래요. 제 열매가 바로 ‘다람쥐의 점심 도시락’으로 유명한 도토리랍니다.
철쭉, 당단풍나무, 소나무, 분비나무 같은 나무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어요. 1970~80년대 국토 녹화 사업 때 들여온 일본잎갈나무도 흔하게 볼 수 있지요. 전 세계에서 지리산, 덕유산, 한라산 세 곳에만 자생하는 희귀종인 구상나무나 작은 흰 꽃이 무리지어 피는 한국 특산종인 꼬리진달래도 백두대간의 생태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답니다. 이런 나무 사이에 멸종위기종 1급인 반달곰과 산양, 수달 등이 둥지를 짓고 살고 있어요. 태백산의 열목어나 오대산의 꼬리치레도롱뇽 같이 맑은 1급수에서만 사는 수생 동물들도 백두대간의 자랑거리지요.
윽, 그런 소리를 들으니 정복할 마음이 사라졌어…. 난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착한 사람이 아닌데!
적어도 입산이 금지된 구역까지 들어 와 야영이니 밀렵이니 하며 백두대간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사람들 보다는 훨씬 자연을 사랑하시는걸요. 이번 생태지도를 만들기 위해 조사했을 때 자연이 파괴돼 황토색 땅이 그대로 드러난 지역이 꽤 많았거든요. 더욱 자연을 사랑하기 위한 마음이 담긴 지도를 나쁜 의도로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