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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그림! 세잔의 정물화!

1905 년 한 미술잡지에서 예술가들에게 “세잔이라는 화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물었어요. 그런데 몇몇 사람들이 세잔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신맛이 나는 아름다운 과일….”이라고 대답했다고 해요. 세잔이 그린 여러 가지 과일 그림이 머리에 콕 박혀 있었던 거예요.

 
폴 세잔, <;사과 바구니>;, 1890~1894년, 캔버스에 유채, 62 × 79㎝, 미국 시카고 미술관


화가는 사과를 좋아해?
세잔은 1872년 <;푸른 사과>;(❶)라는 작품을 그린 뒤 부터 사과를 자주 그리기 시작했어요. 유명한 작품으로는 1879년에 그린 <;과일 쟁반과 유리잔, 사과>;(❷) 가 있지요. 1880년대 중반, 온 유럽에 인상파 미술이 유행할 때에도 세잔은 유행을 따르지 않았어요. 대신 한 미술평론가에게 “나는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고 싶다”고 말하며 계속 사과를 그렸지요.
그럼 세잔은 왜 과일, 그 중에서 사과나 양파처럼 둥근 과일을 열심히 그렸을까요? 세잔이 정물화에서 그리려고 한 사과는 오감을 자극하는 먹음직스러운 사과가 아니었어요. ‘머리로 이해하는 사과’였지요. 세잔은 자연을 단순하고 기본적인 형태로 표현하고자 노력했어요. 구나 원통처럼요. 그런데 단단하고 둥근 모양을 하고 있는 과일은 이런 기본적인 형태에 가장 가까웠고, 어떤 물체가 얼마나 입체적인지를 나타내는 ‘양감’을 표현하는 데에도 가장 좋은 소재였답니다.
 
❶ 폴 세잔, <;푸른 사과>;, 1872~1873년, 캔버스에 유채, 36 × 26㎝,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❷ 폴 세잔, <;과일 쟁반과 유리잔, 사과>;, 1879년, 캔버스에 유채, 45.7 × 54.6㎝, 프랑스 파리 르네레콩드콜렉션
❸ 폴 세잔, <;빵과 계란>;, 1865년, 캔버스에 유채, 59 × 76㎝, 미국 신시내티 미술관
❹ 폴 세잔, <;검은 시계>;, 1870년, 캔버스에 유채, 54 × 73㎝, 개인 소장

▲ 세잔이 젊었을 때에는 빵이나 계란(❸), 조개껍데기나 시계(❹) 등을 그렸어요.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물건이기도 했지만, 단순하고 표면이 단단하다는 특징이 있는 물건이에요. 사과와 비슷하지요.


눈이 어질어질~, 그림이 이상하다!
풋풋한 사과를 그린 <;그릇, 바구니와 과일>;을 보세요. 질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아무 생각 없이 손이 가는 대로 붓질을 한 것 같아요.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답니다. 세잔은 정물을 그릴 때 그 사물을 오랫동안 관찰한 뒤 그렸거든요.
정물화는 재료와 도구, 형태, 원근법, 주제, 구도, 색채 및 그림자, 기법 등에 따라 아주 다양해요. 세잔의 작품도 세잔만의 특징이 담겨 있는데, 바로 ‘자유 속의 질서’예요.
자유 속의 질서는 하나의 대상을 여러 곳에서 바라볼 때 생겨나요. 이 그림도 과일 바구니의 윗부분과 항아리는 위에서 본 모습이고, 앞에 놓인 두 개의 물그릇은 밑에서 올려다본 모습이에요. 바구니는 앞에서 본 모습이지만, 손잡이는 옆에서 본 모습이지요. 심지어 맨 앞에 있는 테이블은 흰 천을 사이에 두고 끝이 서로 어긋나 있어요.
정말 이상하지요? 모두 바라보는 시점이 여러 개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미술가들은 이렇게 하나의 그림에 시점이 여러 개 숨어 있는 기법을 ‘세잔이즘’이라고 불렀답니다.
 

 



신비로운 정물화의 세계로~!
세잔은 전체의 구성상 중요도에 따라서 사물의 크기를 다르게 했어요. 예를 들어 <;그릇, 바구니와 과일>;에서 테이블의 오른쪽 가장자리에 놓인 배는 아주 크게 그려져 있어요. 하지만 이 배의 크기는 왼쪽 구석에 있는 다른 물건과 서로 균형을 이루도록 일부러 크게 그린 거예요. 왼쪽 식탁보의 접힌 부분에 숨은 듯 놓여 있는 붉은 배는 과일 바구니 안에 있는 붉은 배와 나란히 그려져 있지요.
어때요? 세잔이 과일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배치하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나요? 하지만 아직 놀라면 안 돼요. 세잔은 색채의 대조까지 염두에 두고 과일을 배열했거든요. 예를 들어 빨간색과 녹색, 푸른색과 노란색 등 *상보색의 과일이 나란히 놓이도록 했어요. 또한 벽에 녹색, 청색, 자주색, 갈색 등의 빛을 뒤섞어 그려서, 대상의 여러 가지 색이 너무 두드러지지 않도록 했답니다.

*상보색 : 서로 섞이면 흰색이 되는 색.



이러한 세잔의 기법은 마티스나 피카소, 브라크 등 다른 화가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어요. 예를 들어, 앙리 마티스는 <;붉은 방>;(❶)에서 방 안은 따뜻한 색으로 그리고 창 밖은 차가운 색으로 그려 대비를 이뤘어요. 또 사물의 형태를 대담하게 단순화시켜 그렸는데, 이것도 세잔의 영향이랍니다.

 
❶ 앙리 마티스, <;붉은 방>;, 1908년, 캔버스에 유채, 180.5 × 221㎝, 러시아 생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❷ 장 시메옹 샤르댕, <;가오리>;, 1727년, 캔버스에 유채, 114 × 146㎝,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❸ 장 시메옹 샤르댕, <;파이프와 단지가 있는 정물>;, 1737년,  캔버스에 유채, 32.5 × 40㎝,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 세잔에게 영향을 미친 18세기 네덜란드 화가 샤르댕의 그림이에요. 당시 네덜란드 화가들은 화려한 그림을 많이 그렸지만 샤르댕은 일상의 수수한 모습을 많이 그렸지요. 가오리, 물병, 청어, 고기덩어리 등 가정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물건들이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답니다.


어때요? 처음 봤을 땐 아무렇게나 그린 것 같은 그림이지만, 사실은 화가가 눈과 머리로 완벽하게 계획을 세워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겠죠? 이제부터는 간단해 보이는 그림을 볼 때도 화가 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연구했을지 꼭 생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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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3호 어린이과학동아 정보

  • 공하린 과학저술가
  • 진행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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